달달 구수 사과 당근 밥
약 반년 전만 해도 나에게 쌀밥은 그저 탄수화물 덩어리였다. 물론, 탄수화물은 우리의 필수 에너지원의 하나이지만 나는 이것을 밥이라는 단순한 것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맛있는 맛을 가지고 있는' 고구마 감자, 때로는 빵, 케이크 등의 디저트로 이 에너지를 채우고 싶었다. 이랬던 내가, 요즘은 밥상에 이 밥 한 공기가 없으면 꽤나 큰 허전함을 느낀다.
밥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의 시작은 분명 사찰음식 강좌 덕분이었다. 이 수업을 통해서 나는 인생 처음 냄비밥을 지어보았다. 솔직히 밥은 전기밥솥이나 무거운 압력밥솥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작은 냄비로 밥을 할 수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나 고슬고슬하니 구수한 밥이 지어진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렇다. 갓 지은 밥은 그 어느 반찬도 필요 없이 맛이 좋았다.
나를 바꾼 건 좋은 밥맛뿐만이 아니었다. 밥 한 숟가락에 담긴 이 작은 쌀 한 톨 한 톨이 참 감사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그 한 톨을 위해 힘들어도 꾹 참고 밤낮으로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이 한 톨을 만나고 싶어도 오랜 기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내 생애 처음으로 나의 머릿속에 들여왔다. 더구나, 이 한 톨에는 해, 바람, 땅 그리고 물 등의 위대한 자연이 가득 담겨있다. 그간 내가 밥을 대한 태도를 생각해 보았을 때, 참으로 부끄럽고 반성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사찰음식 수업 내용을 복습할 겸, 자취방에서 밥을 짓기 위해 처음으로 전기밥솥이 아닌 냄비를 꺼냈다. 과정도 시간도 전기밥솥으로 할 때와 거의 비슷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중간중간 밥이 잘 되고 있는지, 타지는 않는지 들여다보고 불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 귀찮은 과정처럼 보일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에게 더 맛있는 밥을 내어주었다. 전기밥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신경을 끄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밥이 잘 되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나의 정성과 애정이라는 최고 맛있는 조미료를 추가해 준 것이다.
처음으로 나 혼자 지은 냄비밥의 뚜껑을 여는 순간, 그 따스한 김이 나의 안경을 뽀얗게 만들어 나의 시야를 가림으로써 나의 설렘을 증폭시킨다. 마치 냄비 속에 감춘 보물을 개봉하기 전 카운트다운을 하는 것 마냥. 그리고 몇 초 후, 드디어 개봉박두. 구수한 향을 마구 내뿜는 밥을 이리저리 잘 저어 본다. 그러고는 '갓 지은 밥 시식 시간'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한 입 크게 '하아암' 먹어본다. 서울 한복판의 조용한 자취방에서는 또 '으으음~' 탄성이 나온다! 그렇게 난 이제 맛있는 냄비밥 하나는 거뜬히 만들 수 있다고 자부한다. (저번 주에 불을 착각해서 좀 태우기는 했지만..)
냄비밥에 자신감이 생긴 뒤로, 여러 가지 호기심이 나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밥에 이것저것을 넣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와중, 요즘 나의 고정 아침식사인 '당근 사과 오트밀 죽'을 먹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트밀이랑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그냥 밥이랑도 조합이 괜찮겠는걸?' 그렇게 탄생한 나의 야심작, 당근 사과 밥을 소개한다.
재료 : 재료 : 잡곡 2/3C, 렌틸콩 1/2C, 사과 180g, 당근 150g, 생강 20g, 코코넛오일 1t, 물 2C
참고) 재료의 비율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조정해 주세요 :)
방법 :
1. 잡곡류는 5시간 이상 불린다.
2. 사과와 당근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생강은 얇게 채 썬다.
3. 코코넛오일을 냄비에 넣고 그 위에 모든 재료를 넣는다.
4. 강불에 올리고, 보글보글 끓으면 약불로 낮춰 약 25~30분간 둔다.
5. 20~30분간 뜸을 들이면 완성이다.
갓 지은 사과 당근 밥을 처음 먹어봤을 때의 놀라움이 잊히지 않는다. 사과와 당근이 불어넣은 은은하 단 맛, 생강의 알싸한 풍미와 잡곡의 구수함이 쿵짝쿵짝 참 잘 어울린다.
그 주에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불러 두 차례의 집들이를 했다. 그 밥상에는 나의 야심작인 사과 당근 밥이 있었다. 친구들이 첫 입을 뜰 때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그 맛에 놀라 눈이 커진 친구들을 보면서 또 얼마나 안도했고 기뻤는지. 며칠이 지난 후, "그때 그 밥이 진짜 맛있었는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찌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