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개월 만에 엄마를 만났다. 저번에도 이번에도 엄마가 서울로 올라왔다. 항상 짐이 없다면서 막상 오면 나에게 줄 반찬, 화장품 그리고 생필품으로 양손이 가득하다. 이번에도 한 손에는 김치 한 봉지와 깻잎 반찬이 든 보냉 가방,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엄마 본인의 짐은 반 밖에 없고 나머지 공간은 나에게 줄 것들로 가득히 채운 여행가방을 끌고 오셨다.
엄마와 나는 2박 3일 동안 서울의 한 호텔에서 묵었다. 우리 집에서 20분 밖에 걸리지 않는 곳. 나의 자취방은 심각하게 좁지는 않아 두 명은 잘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호텔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쾌적하게 쉴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호텔을 예약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까칠함'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의 생활 루틴은 확고하다 못해 강력히 고정되어 있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해서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쓴 후 1시간 30분가량의 운동. 그리고 밤 10시 전에 잠드는 삶. 일주일에 7일을 빼곡히 루틴을 고수한다. 이번 연도에 이 루틴을 깬 것은 딱 두 번. 한 번은 스트레스로 인해 하루 종일 구토를 한 다음 날, 그리고 하루는 그 얼마 후 건강이 걱정되어 건강검진을 위해 단식을 해야 했기에 운동을 할 수 없었던 하루. 그렇다. 내 마음에는 이렇게 뾰족한 알람의 가시가 여러 개 박혀있다. 요란스럽게 울리는 이 알람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날의 내가 어떤 상태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반복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가는 일이 나에게는 두려움이 따른다. 그 사람이 엄마일지라도. 상대를 배려한다면 하루쯤은 그 루틴을 깨야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한다고 갑자기 몸이 붓거나 못생겨진다는 등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도 안다. 오히려 내 몸은 오랜만에 쉰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게 나에게는 참 어렵더라.
이번에도 나의 루틴을 고수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가 있는 호텔을 예약했고, 운동복과 운동화를 들고 갔다. 하지만 엄마랑 있다가 보니 어떤 새로운 생각 하나가 내 마음속에서 피어났다.
'오늘 하루쯤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까칠하다 못해 선인장처럼 뾰족한 가시가 난 것 같은 나의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난 처음으로 그 어떠한 불안도 없이 아침 루틴을 깰 수 있었다.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운동을 건너뛰고 고요히 명상을 하고, 엄마와 함께 호텔방 안에서 투박한 아침 식사를 하였다. 마음이 부들부들했다. 마치 핸드크림을 바른 것 마냥.
요즘 내가 지하철을 탈 때면 항상 챙기는 책이 있다. 권성민 작가님의 <서울의 내 방 하나>라는 에세이이다. 지금은 멋지게 취직을 하여 사회에 나갔지만, 내가 가장 믿고 좋아했던 대학원 선배인 환숙 언니가 편지와 함께 나에게 선물한 책이다. 언니 본인도 상경을 하고 힘들 때 보던 책인데, 집 청소를 하면서 오랜만에 발견하고는 내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줬다. 정말 그렇다. 요즘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건 조금 귀찮은 만큼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귀찮은 게 싫어 부드러움을 잊게 될 때가 많다.
- 서울에 내 방 하나 p.32 -
내가 본가에 방문할 때면, 잠들기 전에 엄마는 나의 손과 발에 핸드크림을 발라준다. 정다운 한마디와 함께.
"가시나 손이랑 발이 와이래 까칠하노!"
평소에는 귀찮아서 보습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나의 손과 발은 엄마 덕분에 호강을 한다. 시어버터가 어찌나 가득 들었는지, 다음 날 아침이면 내 손과 발은 아주 보드라워진다.
엄마는 나의 손과 발에만 핸드크림을 발라준 것이 아니었다. 나의 마음에도 그 좋은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주셨다. 혼자 지내며 고슴도치가 명함도 못 내밀만큼 까칠해진 나의 마음은 그렇게 부드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