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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류지 Sep 27. 2024

나 홀로 노릇노릇 추석의 추억 속으로

무 감자 부침개와 팽이버섯 전

    

    2024년의 추석, 나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본가에 가지 못해 난생처음 홀로 추석을 맞이했다. 추석 연휴가 되기 전에는 '그냥 여느 주말처럼 지내자'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연휴가 시작되고, 나는 혼자 카페에 가기 위해 백팩 하나를 매고 지하철을 탄 반면, 누가 봐도 집으로 가는 것 같은 편안한 차림에 여행가방을 끌고 서울역 행 열차에 몸을 실은 또래들을 보니 마음 한편이 울적해졌다.

  

    그렇지만 서울살이 3년 차인 나는, 이제 나의 울적함을 달래주는 데에는 선수가 되었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중에 최고는 단연코 부엌에서 '뽀짝'거리는 시간, 그리고 그로부터 탄생한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일 터. 그래서 이번 명절, 나는 여느 대가족의 추석 한상이 부럽지 않도록 나만의 추석 밥상을 차리기로 했다.


    내가 어릴 적, 명절날 아침에 우리 집에서 차례를 지내고 아빠와 친가 어른들이 절로 가시면, 언니와 나 그리고 엄마가 뒤늦게 점심 식사를 했다. 그때의 메뉴는 매번 거의 같았다. 슴슴한 나물을 넣고 고소한 참기름을 쪼르륵 부어 슥슥 비빈 비빔밥과, 노릇노릇한 고구마 전, 새우튀김, 동그랑땡 그리고 두부구이 등, 일명 ‘기름 샤워’를 한 반찬들로 구성되었다. 평소에는 이런 반찬을 잘 먹지 않아서였는지 이것들이 나에게는 추석의 별식처럼 느껴졌다. 특히, 튀기지 않고 아주 얇은 전분 옷만 입고 노릇하게 구워진 엄마표 고구마 전을 참 좋아했다. 바삭한 옷 속에서 소심하게 '쪽' 나오는 고소한 기름, 그리고 이어지는 따스하고 달큰한 고구마의 등장.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의 따스함에 푹 안겨 한 입 가득 고구마 전을 넣고 천천히 그 순간을 만끽할 때, 난 참 행복했었다. 입 속에서 느끼는 포근함이 마음까지 전해졌다. 그렇게 이 맛은 나에게 추석의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명절, 그렇게나 행복한 기억이 담긴 고구마 전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본가에서의 추억이 담긴 음식을 이곳에서 나 홀로 먹기는 싫기 때문이다. 완전히 같은 맛을 느끼면 그 그리움이 너무나 커지니까. 그래서 나는 추억의 향 만을 빌리고, 나만의 맛을 내는 요리를 했다. 이렇게 탄생한 나의 추석 요리 두 가지는 무 감자 부침개팽이버섯 전이다.





 무 감자 부침개

주재료(1인분): 감자 반 개(약 80g), 무 한토막(약 80g), 표고버섯 1개(팽이버섯 한 봉지로 대체 가능), 두부 약 70g(데치기 전)

양념 재료: 간장 1t, 발사믹 식초 1t, 올리브유 1t, 들기름 1t, 후추


1. 감자와 무를 강판에 갈아준다.
2. 용기에 담아 10분 정도 기울여 두어 물기를 빼준다.
    이때, 고인 물아래 가라앉는 전분은 버리지 않는다.
3. 표고버섯 하나를 얇게 썬다.
4. 두부를 데치고 물기를 빼준다. (데치는 과정을 전자레인지에 1분간 데우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5. 큰 믹싱볼에 양념 재료, 과정 2, 3, 4의 무, 감자, 표고버섯, 두부를 넣어준다.
5. 모든 재료가 잘 섞이도록 위생장갑을 끼고 강하게 조몰락조몰락한다.
6. 120~130도로 3~5분 정도 예열한 에어프라이어 같은 온도로 약 25분간 조리하면 완성이다.

    (단, 기종에 따라 적정 온도가 다를 것이니, 타지 않도록 중간중간 확인하는 것을 권장한다. )
6-1. 프라이팬에 굽는 경우, 과정 5에서 나오는 올리브유과 들기름을 반죽에 넣지 않고 프라이팬에 두른 후 굽는다.

무 감자 부침개의 반죽, 그리고 완성 모습

   이것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나의 자취방에서는 며칠 동안 매일 '슥슥', 무와 감자를 강판에 가는 소리가 났다. 무, 감자 그리고 표고버섯의 환상적인 만남은 조림이나 국뿐만이 아니라 부침개에서도 빛을 발했다. 신기하게도 다 살아있던 각각의 맛이 참 조화로웠고, 겉은 바삭 속은 촉촉, 그리고 버섯의 쫄깃함까지 갖추어서 식감까지 완벽했다. 또한,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할 시에는 프라이팬에서 할 때보다 기름이 덜 들어가서 더 담백하게 되었다. 단, 온도를 130도 이상 올리면 쉽게 타버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팽이버섯 전


주재료: 팽이버섯 1 봉지(150g), 감자 전분 약 4T(60g)
양념 재료: 간장 2t, 발사믹 식초 2t, 다진 마늘 1t, 후추


1. 팽이버섯 밑동은 제거하고,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누어 떼어낸다.

2. 양념 재료를 섞어 양념을 만든다.

3. 팽이버섯에 양념을 골고루 묻힌다.

4. 넓은 쟁반에 전분가루를 깔고 3의 팽이버섯 위에 골고루 묻혀준다.

5.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구워주면 완성이다.

    핵심은 센 불에서 짧게 조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팽이버섯이 그저 기름만 먹어 눅눅하고 느끼해지기 십상이다.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서 빠르게 구워져 말 그래도 겉바 속쫄(겉은 바삭 속은 쫄깃!)인 노릇노릇한 팽이버섯 전 하나를 한 입에 쏙 넣었을 때, 기억 속에 있던 추석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음식이란, 추억이다. 그리고 추억이라는 것 안에는 맛과 향이 가득하다.


    최근에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어릴 적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줬더니 생긴 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여기서는 식품 기업인 네슬레(Nestlé)에서 주최한 캠페인에 대해 다루었다. 그 캠페인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그들이 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추억의 음식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그들이 잃어버렸던 과거의 추억을 조금씩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참 많은 선물을 한다.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기뻐하고, 또 요리하는 사람은 그 탄생의 과정을 누리는 영광을 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순간들에서 맛과 향이 입혀진 추억을 선물 받는 동시에,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며 또 다른 종류의 행복을 얻기도 한다.


    우와, 나는 매일 3번씩 선물 종합세트를 받는 사람이구나!


너무나 맛있어서 며칠 동안 부침개를 매일매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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