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감자 들깨탕과 무 감자조림
이번 여름, 내 인생 처음으로 전문적인 요리 강좌를 들었다. 채식 지향인인 내가 선택한 것은 <한국사찰음식 문화 체험관>에서 여는 사찰음식 강좌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일일강좌를 들었지만, 9월에 들어서는 사찰음식 전문가 자격증을 위한 정규 강좌를 선택했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 3달 동안 매주 한 번, 사찰음식 강좌를 듣게 되었다.
매 강좌는 “오관게"라는 다섯 구의 게송을 다 함께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관게 (五觀偈)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약으로 알며
진리를 실천하고자 이 음식을 받습니다.
길지 않은 이 다섯 구를 읽고 나면 매번 신기할 정도로 마음속과 머릿속이 달라진다. 이번 글에서는 첫 줄,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구절을 처음 읽는 순간 내 눈앞에 놓인 재료들이 다르게 보였다. 쌀 한 톨을 만들기 위해서는 농부가 일곱 근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의미의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이 있다. 가지, 감자, 버섯 그리고 쌀 등의 귀한 재료들을 정성껏 키워주신 농부님들께 다시 한번 참 감사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생명을 품고 아낌없이 영양을 준 자연에게, 그리고 이것들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며 거친 수많은 손들에게 참 감사했다. 더불어 이 소중한 재료들을 이용해 오늘 요리를 할 수 있음에 큰 감사함이 느껴졌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전에는 내 눈앞의 오색빛깔의 재료들을 직접 손으로 만지며 손질하고, 지글지글 또는 보글보글 소리를 들으며, 또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조리를 하고, 마침내 그 맛을 보며 기쁨을 누릴 수 있었기에, 즉, 정말이지 풍부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오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요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에만 집중한 나머지, 요리의 과정 속에 알알히 박혀있는 “감사함"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동안의 나의 모습에 반성했고, 이제라도 이 감사함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이 한 구절은 내 마음속뿐만이 아니라 나의 식사의 하나부터 열 가지를 바꾸어 놓았다.
우선, 나의 장보기의 모습이 꽤 달라졌다. 갖가지의 야채를 다양하게 먹는 것이 무조건 최고라 여겼던 이전과 달리 "재료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요리를 하자."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장바구니가 가벼워질 뿐만이 아니라 절약도 덤으로 따라왔다.
사찰음식 강좌 다음 날, 나는 어김없이 장을 보아야 했다. 이번 강좌에서 배웠던 감자전과 두부감자탕이 무척이나 맛있었기에 복습도 할 겸, 감자, 표고버섯 그리고 두부를 샀다. 그리고 계획에는 없었지만 좋은 가격으로 할인하는 무를 보자마자 내 장바구니 속의 재료들과 무척이나 어울리겠구나 싶어서 이것도 담아버렸다. (계획에 없던 것을 사는 것, 장보기 미니멀리즘 초보의 작은 애교라고 생각해야겠다.) 이렇게 사온 재료들로 며칠 동안 참 다양하게 잘해 먹었다. 그중, 아주 유사한 레시피의 두 요리인 무 감자 들깨탕과 무 감자조림을 소개한다.
<무 감자 들깨탕>
1. 무 1/3 (약 5cm 정도)을 0.2~0.3mm 정도의 두께로 가로로 썬 후, 4등분 혹은 6등분을 내어준다.
2. 표고버섯 두 개도 4등분 혹은 6등분으로 자른다. (건 표고버섯을 사용하면 더 깊은 맛이 우러난다.)
3. 다시마 두 조각, 썰어둔 무, 그리고 표고버섯을 냄비에 넣고, 재료 위로 대략 3cm가 올라올 정도의 물을 부어준 후 뚜껑을 닫고 끓인다.
4. 무가 익어서 투명한 듯 노르스름한 색을 띠면 썰어둔 감자를 넣는다.
5. 간장 한 스푼으로 간을 하고 뚜껑을 닫는다.
6. 감자가 익었을 때, 물에 곱게 풀어준 들깨를 넣고 다시 한번 센 불에 끓이면 완성이다.
<무 감자조림>
1, 2 과정은 위와 동일하다.
3. 물을 무가 잠길 만큼만 넣고 위와 같이 표고버섯을 넣어준다.
4, 5 과정도 동일하지만, 이번에는 뚜껑을 열고 끓이면서 졸여준다.
6. 물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졸여지면 완성이다.
노트: 나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다시마를 건져내지 않았다. 하지만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채수를 만들기 위해 넣은 건표고버섯과 다시마는 꼭 건져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칠맛이 없어져버린다.
상경 후 3년 가까이를 혼자 살면서 국을 끓인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에, 오랜만에 맛보는 뜨끈한 국물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무와 감자, 그리고 감칠맛을 한껏 불어넣어 주는 표고버섯까지. 이 세 가지를 한 숟가락에 담아 한입에 넣을 때, 마치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입 안이 따스한 것들로 가득 차는 그 풍족함을 만끽하고파서 일부러 크게 듬성듬성 잘랐다. 더불어 은은한 들깨의 고소함이 이 야채들의 향을 더욱 아름답게 빛내주었다. 사찰음식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두 번째로, 요리를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눈앞의 재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됨으로써 자연스레 더 신중하게 요리하게 되었다. 그저 나에게 좋은 영양 공급원으로서만 재료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맛과 향을 소중히 품고 있는 한 주체로 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뽐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진한 갈색의 노릇한 맛이 좋다고 지나치게 굽는 등 재료에 좋지 않은 상처를 주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의 밥상은 조림이나 국이 항상 함께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음식 앞에서의 나도 완전히 바뀌었다. 요리를 끝내고 접시에 담아 드디어 먹을 순간이 오면, 난 항상 마음이 급해지고는 했다. 음식이 식기 전, 가장 맛있을 때 먹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고, 식사를 할 때 볼 유튜브 영상을 얼른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는 이유도 있다. 그러다 보니 왼손으로는 화면 스크롤을 내리고, 오른손으로는 소중한 첫 입을 다급히 먹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밥상 앞에 앉는 그 감사한 순간, 작은 소리로라도, 혹은 마음속으로라도 '감사합니다'라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그리고 최대한 느리게 한 술을 떠 음미를 한다. 기분도 음식의 맛도 참 좋아지는 변화이다.
우연히 만난 한 구절 덕분에 나는 마트와 시장에서 쉽게 살 수 있었던 재료들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식재료, 요리과정, 완성된 음식, 그리고 푸짐함 밥상 앞에 앉는 순간까지도 무척이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 되었다.
더불어 음식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것들 어느 하나도 결코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모든 것에는 누군가의 노력과 시간이 담겨있다.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보는 것, 내가 만지는 것, 내가 맛보는 것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이 시간과 공간을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