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거의 매일같이 가는 산책길은 오르막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는 것. 하지만 경사가 그리 심하지는 않아서 오르고 내려가는 것이 무릎에 무리가 가지는 않는 정도이다. 그래서 난 집으로 돌아올 때는 냅다 뛰고는 한다.
사실, 처음에는 마음이 급해서 뛰었다. 얼른 집에 가서 책상 앞에 앉아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책상 앞에 앉아서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시간에 대한 나의 강박이 나를 뛰게 만들었다.
그런데 거 참 신기하게도 매번 뛰기 시작함과 동시에 몸 깊은 곳에서 힘이 샘솟는 것만 같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나의 속도가 만들어내는 바람을 가르며 당차게 뛰어가는 기분이 꽤나 좋다. 요즘처럼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면 더더욱 좋고 말고. 마치 내가 <달려라 하니>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다. 귀에서 <달려라 하니>의 주제곡이 들려온다. 아 참, '하니' 자리에 '류지'를 넣은 가사로.
<달려라 하니>
이선희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땅만큼 엄마가 보고 싶음 달릴 거야 두 손 꼭 쥐고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 약해지니까
외로워 눈물 나면 달릴 거야 바람처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내 별명 악바리가 맘에 들어
그래야 이기지 모두모두 재치고 달릴 거야 엄마품으로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나도 하니처럼 슬퍼지고 약해지는 것이 무지 두렵다. 그래서일까,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일기 쓰기, 책 읽기, 운동 등이 있는 나만의 '모닝 수련'을 한다. 달리기도 언제가부터 그 일부가 되었다. 모닝 수련을 끝내면 대략 오전 9시가 된다. 그때 말차 한 잔을 타서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면, 잠시라도 '나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들며 수련을 하는 동안에 떠올랐던, 오늘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하니처럼 '악바리'라는 말을 종종 들었던 때가 있었다. 학부생 시절의 나의 머릿속에는 '과탑'이 항상 자리해 있었다. 한 학기 동안 그것만을 위해 달리고 달렸다. 정말 이 세상 끝까지 달린다는 마음으로. 더이상 악바리 정신으로 공부를 하지 않은 이후로, 난 때때로 그때의 '악바리' 류지가 그리웠다. 하지만 다시 그렇게 힘차게 달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 그런데 자신감을 잃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 깨닫는다. 난 이미 힘차게 달리고 있었구나. 이전과 다른 점은 오직 달리는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에 난 오늘 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멋있어 나. 대단해!"
그리고 나는 방긋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
1. https://blog.naver.com/hanjs0605/222987062113
2. https://namu.wiki/w/%EB%8B%AC%EB%A0%A4%EB%9D%BC%20%ED%95%98%EB%8B%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