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갓난아기 때부터 먹는 것을 참 좋아했다.
내가 너무나도 어렸을 때라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얘기해 준 재미난 일화가 하나 있다. '눈'이라는 단어가 꽤나 낯선 부산이라는 도시에, 몇 년 만에 바깥이 새하얗게 된 겨울날이었다. 먹성이 아주 좋았던 아기였던 나는 배가 아팠다고 한다. 그 이유는, 먹는 것을 다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 용기를 가지고 엄마가 말한 대로 말하면 '똥이 찬'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해서 병원에 가야 했나 보다. 그래서 엄마는 펑펑 눈이 오는 그날, 나를 업고 미끄러지지 않게 온 신경을 다해 '똥을 빼러' 병원에 갔다고 한다. 몇 년 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철이 든 지금이 되니 그 겨울날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싶다. '우리 아가 얼마나 아플꼬. 내가 넘어지면 우리 아가 다치니까 정신 잘 차려서 가야지.' 이 일화는 어쩌면 이제는 나에게 재미나기보다 감동적인 엄마의 사랑이 가득했던 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여하튼, 엄마 덕분에 나는 똥도 잘 빼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그 아이는 언제나 먹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는 '수능'이라는 좋은 핑계로 아주 마음껏,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먹었다. 살에 대한 스트레스 따위는 없었다. 수능치고 대학 가면 저절로 살이 빠진다고 하니까.
그리고 난 대학에 왔다. 살이 빠지기는 무슨. 대학교 1학년 1학기에 나는 새내기 라이프를 마음껏 즐겼다. 즉, 술을 많이도 마셨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안주도 참 맛있게 먹었다. 살이 "얼씨구나 좋다"하며 내 몸에 착착 붙기 시작했다. 그 해 여름방학,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과는 대성공. 약 두 달 만에 10kg 정도를 빼고 아주 여리여리한 몸이 되었다. 하지만, 이 성공의 대가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낙을 앗아가 버렸다.
난 그 뒤로 먹는 것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했다. 모든 것의 칼로리를 계산하고, 매일매일 공복 시간을 확인하고 운동을 했다. 먹는 게 무서웠다. 이 무서움은 꽤나 오래갔다.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시작해서 4년 후 졸업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음식에 대한 두려움은 사그라들고 다시 커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두려움 속에는 음식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그 사랑이 지나치게 커서 내가 절제를 못할까 봐 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그렇다. 나는 먹고 싶었다. 음식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그 사랑을 더 키웠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음식에 대한 두려움보다 애정이 더 커지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오랜만에 달달한 케이크가 먹고 싶거나 기름기가 촉촉한 튀김이 생각날 때 망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 어쩌지.. 먹어 말아?" 하지만 이제는 칼로리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걱정이다. 그리고 그 음식이 주는 행복이 더 클 정도로 먹고 싶다면 더 이상 고민은 하지 않기로 한다. 괜히 참아서 받는 스트레스로 나의 건강을 해칠 것 같기 때문에. 그리고 그 행복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크기에.
이러한 나의 음식에 대한 애정은 자연스레 요리로 이어졌다. 신나게 장을 봐와서 혼자 부엌에서 지지고 볶고 쿵짝쿵짝을 하고는 내가 차린, 나를 위한 밥상 앞에 앉는다.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크,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
외롭고 우울한 날도, 마음이 복잡한 날도, 인생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날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일 아침에 맛있는 오트밀 죽을 먹기 위해서 얼른 자야지!"
"지금 하는 운동은 힘들지만 운동을 완벽히 끝낸 후 먹는 밥은 세상 최고란 말이지! 그러니 끝까지 해보자!"
"(꼬르륵 소리가 들리면,) 나 열심히 했구나! 크 점심이 더 맛있겠는걸~ 무엇을 해 먹어보지~"
"오늘 저녁 반찬은 무엇으로 해볼까~ 뭘 해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나려나~"
그렇다. 그 어떤 날에도 나에게는 매일 3번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아침 식사, 점심 식사, 저녁 식사. (가끔은 간식까지 하면 4번이나 있다!) 이 행복을 알 수 있음에, 만끽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제는 음식에 대한 이 사랑이 새로운 소망을 만들어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맛있는 것이 주는 이 따스한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꼭 세번이 아니더라도, 그 기쁨을 만나고 누릴 수 있기를. 그리고 내가 거기에 한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