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간택일지 2>
꿀밤이가 중성화 수술을 한 뒤, 심경의 변화를 겪으며 경계하는 대상이 생겼다.
바로 내 남편이다.
일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꿀밤이는 남편을 피해 다닌다.
남편은 매일같이 꿀밤이에게 서운함을 토로한다.
"야! 꿀밤아, 내가 너 데려왔어. 길에 있던 거 내가 같이 가자고 제안했잖아. 나한테 왜 이래."
이 말을 하루에 한두 번은 하는 것 같다.
고양이들은 청각이 매우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소리가 나면 사람이 온다는 패턴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택배든 배달기사든 누군가 문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구분도 하며, 집사가 돌아오고 있다는 것도 예측하고 준비한다.
특히 꿀복이는 강아지처럼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즉각 현관문 앞에서 마중을 나가기도 한다.
꿀밤이는 반기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엄마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꿀밤이는 남편이 들어오건 나가건 반기는 편은 아니라 그런지 내심 그 부분이 서운한 것 같다.
고양이랑 살면 어느 정도 내려놓고 살 건 살아야 하는데, 남편은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아 하는 것 같다.
"꿀밤이는 엄마 껌딱지야. 얘는 당신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근데 당연한 수순이다.
꿀밤이가 나를 더 신뢰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일단 주 양육자가 나이기 때문에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더 가깝게 생각하고 엄마라고 인지할 수밖에 없다.
아빠는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고,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애들과 놀아주는 편도 아니고,
털 빗질부터 시작해서 스스로 아이들을 심층적으로 케어한 적은 없다.
꿀밤이 입장에서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면 정말 싫어하는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는 꿀밤이의 행동에 더 공감하는 쪽이다.
일단 남편은 목소리가 매우 큰 편이다. 목소리가 크기도 하지만 하이톤을 가지고 있어 조용조용 I 성향 같은 고양이 입장에서는 그 소리가 매우 위협적인 소음으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남편이 매우 큰 키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큰 움직임이 꿀밤이의 두려움을 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장난기가 많은 타입이라 자꾸 고양이들에게 장난을 걸기 시작한다.
마치 아주 큰 대형견이 놀자고 고양이 두 마리를 괴롭히는 느낌이 강하다.
개는 놀고 싶어서 꼬리도 흔들고, 격한 표현을 하는데 고양이는 그게 위협적이고 불안하게 만든다.
비유하자면 둘의 관계는 마치 서로 앙숙인 개와 고양이 같다.
꿀복이는 남편이 격한 장난을 쳐도 받아주는 편이고, 여기저기 스킨십하고 만져도 저항 없이 가만히 있는 편이었다.
귀찮으면 하지 말라고 소리를 냈고, 한두 번의 경고를 하는 매너 있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이 꿀복이를 안기만 해도 경고하는 것 없이 바로 냥냥펀치를 날린다.
정말 웬만하면 고양이들은 1, 2차 하지 말라고 온몸으로 시그널을 보내는데, 남편은 그런 면에서 매우 무디다.
안 보려고 하는 건지, 고양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고양이에 대해서 심도 있게 생각은 못 하는 것 같다.
고양이의 예민한 모습을 캐치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그 선을 넘나들려고 하니
꿀밤이가 불편한 기색을 바로 표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은 몸으로 자꾸 놀아주려는 경향이 있다. 고양이들은 그냥 낚싯대나 오뎅꼬치로 놀아주면 되는데, 손과 발을 이용해서 고양이들 사냥 본능을 자극시킨다.
그게 얼마나 좋지 않은 놀이 습관인데 자꾸 뭐라고 해도 알아듣질 않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다 결국 꿀밤이에게 미운털이 박혀서 이제는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 한다.
또 다른 비유는 아들 둘 있는 집에 술 먹고 들어온 아버지가 자고 있는 애들을 다 깨워서
자식 방에 들어가 뽀뽀하고,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며 주사 부리는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남편은 고양이들에 대한 애정을 자기 식대로, 자기 뜻대로 고집을 피우며 고수하려고 한다.
그때마다 내가 정말 화도 내보고 좋게 좋게 이야길 해도 듣지 않아서 본인이 만든 결과라고 생각한다.
남 집사가 싫은 이유가 너무도 명백한데, 본인만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스스로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고양이를 사랑하고 있는 본인에게 취해 있지 말고,
정말 꿀복이와 꿀밤이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싫어하는 것만 안 해도 중간 이상은 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냥 내가 볼 때는 우리 집은 말 안 듣는 고양이 형제와 말 더 안 듣는 대형견 한 마리가 공존하는 것 같다.
요즘 둘 다 잘 받아주지 않는 것 같으니 궁디팡팡으로 마음 사기를 해보고 있는 것 같다.
두 형제 모두 궁디팡팡을 좋아하는데, 특히 꿀밤이는 남편을 좋아하진 않지만 손길은 또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번 두들겨 주기 시작하면 10분이고 그 자리에서 계속 엉덩이를 치켜들며 무아지경에 빠져버린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남편은 꿀밤이 얼굴을 쓰다듬고, 평소 스킨십을 못 하니깐 그때 어떻게든 해보려는 수작이 강한데,
‘어림없지!’
꿀밤이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궁디팡팡 타임이 끝나면 바로 남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총총총’ 자취를 감춘다.
그때 그 허탈한 남편의 눈동자를 나만 보는데 너무 웃기다. 시련당한 사람 같은 허탈함이다.
꿀밤이와 친해질 수 있도록 저녁 간식을 줄 때 남편을 통해 주도록 하는데
꿀밤이는 남편이 간식을 들고 있어도 경계를 한다. 아무리 불러도 잘 오진 않는다.
내가 고양이를 2년간 키우면서 느끼는 생각들이 있는데,
처음에 고양이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존재라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라는 점과,
고양이는 동거하는 사람을 집사 내지는
동료로 생각한다는 이 두 가지 점에 대한 큰 오해가 있었다.
언뜻 보면 고양이는 흔히 말해 ‘싹수가 없다’라는 표현도 하는데,
지속적으로 이들과 교감하면서 느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랑 참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바운더리를 정해두고 있어서 그 선을 넘어오는 것을
상당히 싫어하는 타입이다. 뭘 하든 어느 정도의 선과 규칙이 존재하는 게 편한 사람이다.
자유로운 것 같지만 생각이 많고 복잡한 사람인데, 그러한 점이 고양이랑 닮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보다 고양이 입장에서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하려고 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남편보단 내 배려를 좋아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도 목소리가 큰 편이지만 고양이 앞에선 작게, 조용하게, 나긋하게 얘기하려고 하고
청각이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너무 큰소리를 지향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잘 걸러낸다고 한다.
남편의 일방적인 사랑이 꿀밤이에게는 부담스러운 것 같다.
일주일간 꿀밤이와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밀당을 선언한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꿀밤이만 보면 만지고 싶고 뽀뽀하고 싶어서 밀당하는 법을 까먹는 것 같다.
꿀복이 같이 인싸 관종 고양이가 아니고서야, 대체적인 고양이들은 예열이 좀 필요한 듯하다.
남편이 5일간 집을 비운 적 있었는데, 돌아왔을 때 생각보다 꿀밤이가 남 집사를 반가워했다.
꼬리를 치켜들고 환영해 주는 걸로 봐서는 남처럼 생각하는 것 같진 않다.
꿀밤이는 모르는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매우 크기 때문에 5일 만에 만난 남편에게 반가움을 표현하는 걸 보니 싫어하는 쪽보단 애증 관계가 맞는 것 같다.
고양이는 한 번 안 좋게 인식이 박혀 있으면 바꾸기가 쉽지 않지만, 그건 남편이 하기 나름인 것 같다.
오늘도 우리 꿀밤이가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