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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Feb 08. 2024

베트남에 설이 오면 (뗏 마켓 Têt Market)

올해는 베트남 전통모자 논라 (Nón lá)를 이용한 입구 장식이 첫 마음을 사로잡는다


베트남의 구정 연휴가 다가오면 막내의 학교에는 연중 가장 큰 행사인 설 시장 뗏 마켓 (Têt Market)이 열린다.


이 날이 오면 선생님들은 분필을 내려 놓고 베트남 설 명절의 대표음식 바잉쯩을 만든다
학부모와 아이들은 베트남에 들이 닥친 한파 속에서도 뗏 마켓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모양이다. 정말 추운데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귀여운 베트남 소년이 입은 꽃무늬 아오자이가 유독 눈에 띄었다. 참 곱다


아오자이를 입은 선생님들은 아이들보다 더 신나 보이고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알록달록 예쁜 아오자이를 뽐내는 이 날에 볼거리는 항상 넘쳐흐른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발이 시린 날씨 때문에 따듯하고 평화로운 뗏 마켓을 즐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추워서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사람은 나 홀로 인 듯했다.


일본이 세운 이온몰 쇼핑센터의 뗏 풍경


학교뿐 아니라 쇼핑몰에도 슈퍼마켓에도 화려한 설 명절 장식으로 포토존 경쟁을 하느라 바쁘다.

멈춰서 사진 한 장 아니 찍고는 못 배기게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발목을 잡는다.

나의 어린 시절 설이 다가오면 부모님이 내 작은 손을 잡고 데리고 나가서는 가장 예쁜 원피스 한 벌 고르고 골라 사주시던 추억이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요즘의 한국 설은 설레며 설빔을 준비하던 그 시절 까치까치설날이 더 이상 아니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떠나는 것이 더 설레는 시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공항이 북적이는 만큼 마음은 왠지 더 허전해져 오는 것 같다.


한국과는 또 다른 베트남의 북적임 속에 진정한 명절의 낭만이 스며있다. 베트남이 그래서 참 좋다.

새 옷을 채비하느라 신난 베트남 가족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나의 옛 추억이 소환되어 푸근한 미소가 번져 나온다. 설빔을 준비하며 설레던 한국의 예전 모습이 오버랩되는 걸 보면 참 비슷한 문화를 가진 민족임을 다시 깨닫는다.


친구들과 지인들끼리는 꽃과 신선한 과일 등 고심 끝에 준비한 선물을 서로 주고받으며 사랑과 감사를 나누고 새해에 받을 최고의 복을 기원한다. 달력 속 빨간 휴일 날짜는 한국과 비슷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구정 명절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해 연휴가 끝나고도 또 이후의 한 달은 더 마음을 잡기가 힘들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짧게는 5-6일에서 길게는 열흘 이상의 휴가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연중 딱 한 번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사람들도 많으며 두둑한 보너스 봉투가 기다리고 있으니 정말 이때만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베트남의 구정 설 뗏(Têt)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일 년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한 해의 남은 불행을 없애고 행운과 풍요가 가득한 새해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대청소를 하는 전통도 있다. 오래된 물건은 버리고,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보다 더 크게 구정 명절 노래를 틀고, 다양한 장식으로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물씬 연출한다. 연중 가장 큰 축제의 기간이다. 18년을 지켜보는 동안 여전히 변함없는 베트남 사람들의 정감 있는 설날과 열정적인 명절의 분위기가 때로는 너무 부럽다.


 매화꽃 파는 상인들의 물결에 떠이 호 입구가 막혀 다른 길로 빙 돌아가야 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매화꽃 도로 시장의 오픈을 격렬하게 환영하고 있다.
거리에도 시장에도 설 대목 꽃과 과일을 파느라 고향에 내려 가는 일도 기꺼이 미루는 상인들

매년 뗏 명절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 인양 상인들의 얼굴은 의지에 가득 차 있다.


꽃이 만개하는 매화나무와 열매가 가득 달린 귤나무를 집에 들여놓아야 새해의 복을 가득 누린다 믿는 민족에게 구정 명절은 기원으로부터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재래 시장으로부터이다.


날이 축축한 우기지만 시장은 날씨 따윈 상관도 없이 북적인다.

우리 가족도 구정 연휴 동안 먹을거리들을 채비하러 시장에서 장을 보고는

유독 쌀쌀해진 날씨에 몸을 녹이려 길가 쌀국숫집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아삭하고 새콤한 죽순 절임을 곁들여 주는 쌀국수 맛에 아들과 함께 감탄사를 연발하며 호로록 뜨끈한 국물을 들이켜는 맛이란... 세상 행복을 잠시 내게 다 안겨 주는 듯하다.



베트남 설 명절에 먹는 찹쌀밥 바잉쯩과 소시지


90세가 넘으신 옆집 할머니께서 올해도 어김없이 챙겨주시는 바잉쯩과 소시지 덕분에 든든하고 행복한 뗏이 된다. 진 초록 바나나잎의 향기가 끈끈한 찹쌀밥에 스며들어 있어 한 입 깨어물 때 번져드는 그 오묘한 향기와 부드러운 돼지고기와 녹두의 풍미는 베트남 살이를 행복하고 풍성하게 해주는 매개체임에 분명하다. 이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 바잉쯩 한 덩이 지인에게 나누어 주니, 그들도 그리 행복해 할 수가 없어서 나는 몇 배가 더 큰 즐거움으로 채워졌다.


작은 것에 온전히 행복해지는 땅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베트남임에 감사해진다.


구정이면 베트남 친구가 한결같이 선물해 주는 이름모를 나뭇가지


화병에 나뭇가지를 꽂아두었을 뿐이던 첫날에도 참 운치 있다 생각했는데

몇 밤이 지나면서 작고 귀여운 하얀 꽃들이 소복이 피어나고 있다.

너무 귀엽고 예쁜 꽃들 때문에

계단에 걸터앉아 이 녀석들을 넋 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오른다.

평화롭고 풍성한 뗏이

2024년의 우리 집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도 복이 넘치고 따듯한 명절이 되기를 기원하며...

하노이에서

마법의 귀여운 꽃가루를 흩뿌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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