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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Apr 22. 2024

흔적은 ‘스러움’을 만든다

베트남 고등학교의 운동장을 마주한 카페테라스에서 남편과 마주 앉아 커피를 즐기는 오후다. 학생들의 활력 있는 소리와 움직임이 화창하고 기분 좋은 날씨에 참 잘 어울린다.


“음 그런데 체육복이 원래 군복색이었던가? 오늘따라 쟤네들 옷이 왜 더 베트남 스러워 보이지? “

남편이 자세히 보다가

 “군복 맞는 거 같은데, 교련 수업받는 거 아닐까?”한다.

정말 그랬다.


전쟁터에 나가는 베트남 여군의 포스터에서 빠져나온 듯, 강인하고 꼿꼿한 아우라를 발산하는 여자 선생님이 비장한 표정으로 총을 쥐고 있다.

“저기 들고 있는 게 설마 총이야? 진짜?”

 “헛!!” 놀라움의 추임새가 자동으로 새어 나온다.

“아니 뭐야, 학교에서 총 쏘는 법을 가리킨다고?”

열여덟 해를 살면서도 이건 몰랐다.

살면 살수록 새로운 게 늘 생겨나니 신선하다 해야 할까.


베트남 스러움을 대변하는 딱 그 여성상이 저기에서 총을 들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장면 자체가 신기하다. 자유 경제체제이기에 평소에는 잘 못 느끼고 살다가도 이럴 때면 한 번씩 ‘아 내가 사회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구나 ‘ 체감되곤 한다.


눈을 크게 뜨고 학교 담장에 달라붙어 열심히 구경을 해본다.

“무릎을 낮추고 총을 허리춤에 얹혀!

숨죽이고 45도 각도로 3미터 전진 후 정지한다!

적을 만나면 방아쇠를 당긴다! “

비장한 꽃게 걸음을 어린 녀석들이 참 잘도 한다.

리얼 상황 모드에 방아쇠가 당겨질까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다.


전쟁의 흔적이다!
그 흔적은
홍강처럼 흐르고 흘러
베트남 ‘스러움’을 만들어낸다.


그 흔적이 전쟁도 겪어보지 않은 MZ 세대의 고등학교 수업 시간까지 흘러왔다.

우격스런 총질을 하며 도망 다니는 발로란트 게임이 훨씬 익숙할 어린 친구들에게서

‘베트콩 워킹’에 간지가 난다.

베트남에서는 여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비록 한 달 간이지만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련 시간부터 모두가 ‘베트콩 워킹 연습’을 받고 있는 줄이야…


총기 소지 논란 가운데 학교와 총만 연결돼도 소름이 끼치는 미국에 비해보면

방어와 공격태세를 갖추고 총 쏘는 법을 공식적으로교육받고 있는 베트남의 현재가 놀랍기도 안쓰럽기도 이질적이기도 하게 다가온다.

내가 너무 신기해하며 철조망 작은 구멍에 렌즈를 맞추고 확대하느라 애를 쓰며 사진 찍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남편이 갑자기 코너를 돌아가서는 저벅저벅 학교 안으로 들어간다. 수업 후 잠시 휴식 중인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근접 거리에서 아이들의 뒷모습과 총사진을 담아서 나온다.

남편도 참 대단해서 웃음과 박수가 동시에 나온다. 나와는 다른 사교성에 아내를 위한 마음이

더해지니 용감 그 자체다.

진짠가?

베트남의 어느 학교나

이 나라의 지도자이자 본보기이자 국민 영웅인

호찌민 주석의 사진 또는 초상화가 걸려있다.

회사에도 가정에도 호찌민 주석의 액자 하나는 꼭 걸려있다.

누구보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한 그의 가치와 사상은 베트남 전역에 고루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번영하고 자주독립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호찌민. 그리하여 한국의 교육열을 비할 데가 아닌 이 나라에 스며있는 그의 흔적은 모든 학교의 아니 베트남의 동맥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렇게
영웅의 흔적도
흐르고 흘러
민족의 정신을 지배하는
‘스러움’이 되었다






저녁때가 되어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

새로운 과일 진열대가 생겨 났는데 그 모양이

무려 탱크.

와~하하하…

베트남 스럽네 참…

총 쥐고 꽃게 걸음 배워 자라난 어느 기획자의 작품이렸다.


탱크 위에 진열된 용과를 집어 담는데 내 맘이 이토록 비장해질 일인가 말이다.

슈퍼마켓에서 탱크 모양 과일 진열대를 베트남 말고 어디서 보겠는가 말이다.

이것이 베트남 장보기 클래스!


이 비장한 와중에 탱크 옆 매대에는 한복을 입은 여성이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한국산 딸기를

팔고 있다. 딸기 케이스 위에는 박항서 감독님의

얼굴 스티커가 딱 붙어있다.

데일리 라이프에서 총과 칼과 탱크를 가진 민족이

한복을 입고서 한국 딸기를 광고한다.

탱크와 한복의 묘상한 어울림이 웃음을 제조한다.

이곳에서 한복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의상은 마주한적이 없는 걸 보면 한국은 이들에게 특별함이 분명하다.


베트남스러움을 베이스 삼은

오늘의 키워드

‘총과 탱크와 과일과 한복‘


참 재미난

베트남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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