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
얽힌 전선의 엉킴과 이어짐
과연 풀릴 수 있을까의 그 모호함을
예술로 끌어들인 한 사람
그는 복잡한 엉킴 속에서 사람과 사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살짝 눈을 치켜올리면 베트남 거리거리마다 잔뜩 엉킨 전깃줄 뭉치가 시선 안으로 들어옵니다.
‘줄’보다 ‘뭉치’라는 표현이 정확할 겁니다.
그것들을 올려다보고 있노라면 답 안 나오는 한숨이 푹 새어 나옵니다.
이성적 논리를 끌어낼 새도 없이
전깃줄의 혼돈과 혼란
그 무질서의 카오스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되죠.
허나 반전입니다.
그 카오스는
문명의 신호를 우렁차게 낳고 있습니다.
복잡한 혼돈 속에서도 집집마다 골목마다 전기가 이어지고 전화가 터지고 인터넷이 연결되는
기적을 목도합니다.
응우옌 응옥 잔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잡한 것은 결국 고난이며, 이것은 모든 사회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며, 이는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전선의 복잡함을 그리며, 전선을 의인화된 원천으로 보고, 그것을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일시적인 단면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삶의 복잡함이 해소되고, 그 복잡한 전선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에 전선에 대한 기억은 오직 그림 속에만 남을 것입니다.”
이 전선이 깔끔히 정리되는 날
정말로 베트남인의 삶에는 복잡함이 해소되나요?
정말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전선도 잔뜩 꼬으러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전봇대, 신호등, 구역 방송 스피커, 전선은 저마다의 사회적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공간 속에 녹아든 그것들의 색깔과 구성이 슬픔과 기쁨, 사랑과 미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요.
Art Street
Art Street이라는 표지판을 따라 길은 이어지고 전선은 뻗어나갑니다.
엉켜있는 전선들. 그중 어딘가
제 삶의 회로 속에도 빨간불이 들어옵니다. 베트남에서의 지난 18년을 성찰하게 해주는 불빛이련가요.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기쁨과 슬픔, 성취와 좌절, 성공과 실패가 전류를 타고 이어집니다.
'왜 나만', '왜 자꾸' ‘왜 그랬는데’라는 덫에 걸려
‘어떻게'라는 소자는 자주 작동하지 않았던 안탑깝고 어리석었던 저의 회로를 마주합니다. 병렬인지 직렬인지 방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류가 난 소자가 문제였습니다.
“Why는 이제 좀, 쫌, 그만 묻자!”
“How만 집중해 보자고! “
저의 내면에게 단단히 일러둡니다.
연결되고 꼬이고 끝없이 순환하는 듯해도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
이 복잡한 회로 속에도 시작과 끝이 있을 것은 분명하기에 엉킴을 마주하고 매듭을 풀어가며 찬찬히 연결점을 찾아봅니다. 그러다보면 전깃줄 뭉치로 그려질 저의 인생도 훗날 아티스틱한 액자 속에 든 '작품 하나'로 남지 않을까요…
오랜 외국 생활을 하며 사람에게, 그것도 사랑하던 이웃들에게 치이고 배신당하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들이 무서워졌습니다.
복잡한 일들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이 한낱 쓸데없어서 단순한 생각하기를 추구했습니다. 그것이 삶의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인 줄 알았습니다. 조용히 홀로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살아보니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오 년쯤 시간이 흐르고 친하게 지내던 가족을 재회하여 함께 먹고 마시며 깨달았습니다.
괜찮은 줄 알았던 제가
홀로 조용한 시간을 즐기는 게 오히려 좋은 줄 알았던 제가
무척이나 외로웠었단 사실을요.
아기 때부터 함께 자란 아이들끼리도 서먹하고 신기하면서도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부모 어른은 한 없이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경험과 변화, 그리고 내면의 치열한 고뇌와 탐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야 비로소 더 수준 높게 아름다운 삶의 회로가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 알아갑니다. 너무 단순하고 세련되게 정돈된 인생을 만들려 애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에 깔끔하고 단순한 시스템은 사람 살아가는 냄새마저 무미건조하게 만드니까요.
답 안 나오는 거리의 전선들을 볼 때마다 한숨 내뱉으며 혀를 차곤 했습니다. '베트남 대체 언제쯤 도시정리 깨끗이 할래?' 하면서요. 헌데 이 복잡함 속에서 삶의 회로를 발견한 작가의 눈을 잠시 빌리고 나니 은근한 무시가 묵직한 사유로 변환되다니요...
시선이 깊은 사람 되고 싶다는 다짐
어떤 상황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어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
관계를 귀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
이 멋진 다짐의 선물을 건네준 응우옌 응옥 잔 작가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정돈됐던 제 인생도 다시
복합적인 아트 스트릿 위에 살포시
올려두어 보며….
https://ktds.vn/nguyen-ngoc-dan-va-nhi-nhang-day-dien
https://cand.com.vn/Nhan-vat/Nguyen-Ngoc-dan-Bien-day-dien-va-tam-truyen-i373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