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와 회화사이 그 어딘가
국가 상징 디자이너
Sơn khắc, 1962, 115.3 x 153.2 cm낯선데 매력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Bùi Trang Chước(부이 짱 추옥)의
Khu gang thép Thái Nguyên, 타이응웬 철강 구역,
2022년 그의 사후에 호찌민 문학 및 예술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로부터 2급 노동훈장, 3급 노동훈장, 미국 침략전쟁 저항훈장 1급 및 라오스 인민 민주 공화국의 고귀한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이 회화의 기법은 'Sơn khắc'(썬 칵)입니다. 베트남어로 "조각된 나무" 혹은 "조각"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목재에 조각을 하여 그 위에 그림이나 문양을 새기는 예술 형태를 지칭합니다.
이 작품은 판화와 회화를 결합시킨 느낌이라 할까요.
판화면 그저 판화여야 하는데 회화 같기도 하고 이게 참 묘합니다.
철광석 자원이 풍부하여 철강 생산에 이상적인 타이응우옌은 베트남 북부 Thái Nguyên 성에 위치한 산업의 요지입니다. 이 공장은 베트남의 주요 철강 생산 기지 중 하나로, 베트남의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 속 철강 공장이 1940년대 후반 설립된 이래로, 수십 년간 베트남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에 기여해 왔습니다. 현재 삼성의 공장들도 대부분 베트남 북부 지역에 몰려 있는데, 이 타이응우옌 지역에도 삼성 전자 공장이 있습니다.
베트남 국립 미술관에 처음 간 날
많고 많은 작품 중 저는 이 작품 앞에 가장 오래 서 있었습니다.
"이게 대체 뭐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요.
반짝이는 라커회화들 사이로 무광의 디테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거든요.
이 판에 잉크를 도르륵 묻혀 종이에 찍어내는 건가 하기엔 회화 같은 느낌으로 골고루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이 판을 찍어낸 그림이 따로 걸려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림을 찍어내기 전 이 판화의 판 자체가 그저 작품이었던 것이죠.
와... 디테일 좀 보세요.
약 1m*1.5m 정도 되는 작품 안에
거대한 공장 건물들과 구조물 형태, 산업 단지를 이루는 모든 것과 수많은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조각 파임으로 섬세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제된 선들이 때로는 반듯하고 때로는 거칠고, 유연한 곡선을 타고 그려진 자동차들은 귀엽기도 합니다.
1962년의 작품이니 그 시대의 철강 산업 단지의 모든 것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겠지요.
작가의 조각칼 터치를 따라 60년대 풍경을 꼼꼼히 구경해 봅니다.
붓터치 보다 더 힘 있게 더 조심스럽게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표현해 낸 요소들이니
행여 조각칼이 비껴 나갈랴 숨죽여 주먹에 힘을 주고 눈매에 힘을 주며 감상해 봅니다.
제가 확대해서 찍은 부분들은 전체 작품에서 숨은 그림 찾듯 찾아 매칭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게 이렇게 작은 거였어?" 하시게 될 거예요.
정말 특이한 이 작가의 화법에 매력을 느껴
집에 돌아와 부이 짱 추옥에대해 더 탐구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나…
미술관에서 빠져든 작품 하나의 낯선 매력에 왜 그리 이끌리었나 했더니
이 분 알고 보니 정말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베트남 최초의 우표 디자이너이자
국가의 계보와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적 표시인
베트남의 국장(國章), '나라문장'을 만든 디자이너였습니다
누가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저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랜덤으로 베트남의 예술 작품들을 만나다 보니
이렇게 순서가 뒤바뀌어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분을 우표와, 지폐, 국가 휘장 디자이너로 익히 먼저 알고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거꾸로 길을 돌아 낯선 모습으로 만날 때 더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Bùi Trang Chước(부이 짱 추옥)은 1915년 5월 21일 하노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회화 작가이기도 했지만 '국가 상징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메인으로 달아주는 것이 당연히 맞을 것 같습니다. 그는 1945년 이전부터 베트남 최초의 우표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습니다. 8월 혁명 이후, 그는 우표뿐 아니라 지폐 디자인, 훈장 디자인, 국가 휘장, 상장 및 로고등의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을 계속해서 제작했습니다. 프랑스와의 초기 저항 기간에는 푸토성 정보부에서 근무했고 평화가 회복된 1954년 이후 베트남 국가은행 지폐발행부에서 근무했습니다. 베트남 미술협회의 창립 회원이기도 합니다. 1941년 인도차이나 미술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그는 달랏 건축 학교에 초청강사로 가기도 했고, 하노이 미술대학에서 지폐와 우표 디자인을 가르쳤으며, 1959년부터 1964년까지 산업미술학교에서 그래픽을 가르친 다재다능한 예술가입니다. 1960년대에 그래픽 교육자라... 상당히 앞서가신 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주요 그래픽 디자인 작품으로는 호찌민 주석 생일 61주년 기념우표 세트(1951), 디엔비엔푸 승리 기념우표(1954), 베트남 국장(2021년, 그의 베트남 국장 112개 초안이 국가 보물로 인정됨), 베트남 총 노동조합 로고; 골드 스타 메달, 호찌민 메달, 독립 메달, 노동 메달 디자인이 있습니다.
최초의 우표 디자인
그가 디자인한 우표입니다.
너무 느낌 있죠?
"Hung King's Memorial" 베트남의 고대 훙왕의 서거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베트남 최초의 우표입니다.
아… 우표 수집의 열정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네요…
아래는 디엔비엔푸 전쟁의 승리 기념우표 시리즈입니다. 구경해 보세요.
1954년에 출시된 첫 번째 디엔비엔푸 승리 기념우표 세트
디엔비엔푸 승리 40주년 기념우표 세트
우표러버라 우표만 계속 구경하고 싶지만, 여기서 그만 침을 꿀꺽 삼키고 멈추겠습니다.
나라문장 디자인
1951년 6월 8일 외무부가 국장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고, 1952년 부이 짱 추옥이 총리실에 의해 선택받으며 국장 디자인 작업을 맡게 되었습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그는 100여 개의 다양한 스케치와 구상도를 만들었는데, 이 중 최종적으로 채택된 디자인은 원형 모양에 황금 별, 쌀 이삭, 기어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55년 9월 국회 제1기 제6차 회의에서 이 디자인이 승인되었고, 호찌민 주석이 1956년 1월 14일 이를 공포했습니다. 1976년 통일 이후에는 국호를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변경하는 등 일부 수정이 있었지만, 기본 디자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장을 이미 한 번 바꾼(또 바꾸진 않을까 염려되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최초의 디자인을 고수하고 지키는 베트남이 이럴 때 참 부러워집니다. 현대적 디자인력을 더하고 새로운 도약과 통합의 발전을 이루는 데에는 의미가 있겠지만, 세계에 나라의 아이덴티티를 인식하게 하는 국장은 보수적이고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국기와 함께 국가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구)국장은 다섯 개의 무궁화 꽃잎에 태극기가 둘러싸인 형상입니다. 국장은 대표적으로 여권 앞면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갈 때마다 온 국민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전달하는 상징체입니다. 여권뿐 아니라 외국으로 전달되는 공문서나 국가 주요 문서와 시설 물자에 사용되는 국가의 로고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자주 바뀌면 안 되는지 바로 이해가 되시죠? 미국은 흰머리 독수리가 화살을 쥐고 있는 모습, 영국은 영국 왕실의 상징체, 러시아는 국기가 바뀔 때에도 러시아의 상징체인 쌍독수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박근혜 정부 시절 국장을 변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여권 위의 문장과 정부 전 부처 산하기관의 문장이 두 가지로 나뉘어 쓰이고 있습니다. 한국 여백의 미를 담은 태극 디자인을 도약과 통합이라는 이름하에 변경하였다지만 그간 유지해 온 정체성과 맞바꿔야 했었을까 질문하게 됩니다. 각 부처가 신설될 때마다 로고의 디자인이 바뀌고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획일한 된 정부 상징 로고로 통합되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잘했다 칭찬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국장을 또다시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발생한다면 적극 지양하고 반대해야 합니다. 어떤 다른 의미가 보태지지 않고 국장이 국장일 수 있도록 이제 더 이상 국장 변경에 대한 시도는 꿈도꾸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이 짱 추옥의 베트남 문장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공식 상징입니다.
베트남 국가와 국민의 단합을 완전하고 간결한 상징으로 압축해 내었습니다.
베트남 나라문장
국장 스케치 원본
국장의 이미지는 금을 입거나 자수를 입고 비로소 태어납니다
그가 작품을 만들 때 사용한 도구들입니다.
부과 권력은 안중에도 없던 청렴하고 순수했던 예술가로 칭송받는 그는
얼마나 곧고 정교한 심성을 가진 분이셨을지 나무 도구만 보아도 그 촉에서 아우라가 발산되는 것 같습니다.
베트남 거리이름은 주로 유명한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마다 역사적 위인을 만나는 재미가 있지요.
그가 태어난 하노이 서호의 마을 길 이름에 그의 이름이 채택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라 했는데 정말 그는 그것을 이루었네요.
서호(west lake, Tây Hồ)는 관광 지역이니 혹시 이 거리를 걷게 되신다면 그를 기억해 주세요.
https://tuoitre.vn/chien-thang-dien-bien-phu-qua-nhung-bo-tem-day-hoai-niem-20240505222936822.htm
https://baochinhphu.vn/khai-mac-trien-lam-phac-thao-mau-quoc-huy-viet-nam-hoa-si-bui-trang-chuoc-1022780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