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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Sep 12. 2024

극동의 꿈

외국인 화가들이 그린 100년 전 베트남

"Mộng Viễn Đông"(극동의 꿈)


어느덧 20화에 이르렀네요. 환기도 할 겸 시선을 바꾸어 보았어요. 이번 화에서는 베트남 아티스트가 아닌 외국인 화가들의 눈에 비추이고 그들의 손 끝을 통해 표현된 베트남을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Sotheby’s (소더비스)가 주최한 유럽 유명 화가들이 100년 전 베트남을 그린 ‘극동의 꿈’ 전시회가 작년 8월 호찌민에서 열렸습니다. 유럽인의 시선으로는 저 멀리 끝에 떨어져 보이는 동아시아를 극동(Far East)이라 부르곤 하지요.

 

전시회에는 빅터 타르디외(Victor Tardieu), 장 루이 파그노(Jean-Louis Paguenaud), 앙드레 메어(André Maire)등의 작품 50여 점이 소개되었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유럽의 유명한 화가들이 먼 동쪽나라 베트남에 들어와 미술 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는 등 인도차이나 서양 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베트남 미술사의 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Adolf Obst (1869-1945) 아돌프 옵스트의

"Ngược dòng kênh Tàu Hũ từ cầu Malabars, Chợ Lớn"  말라바 다리에서 본 따우 후 운하 상류


옵스트가 독일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독일 문화부의 장학금을 받아 동남아시아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20세기 초에 베트남을 여행하며 완성한 작품입니다. 유럽 화가의 터치 때문인지 베트남이라기보다 유럽의 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태풍 야기를 겪고 나니 휘어진 고목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지만 베트남 강가와 호숫가의 나무들은 마치 물과 사랑에 빠진 듯 허리를 구부려 물에 가까이 닿고 있는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호안끼엠 호숫가 나무들의 그런 모습이 인상적인데 저 옛날에도 그랬었나 봅니다.


평화롭습니다. 잔잔한 강가에 정박한 배들과 흙길을 걷고 있는 엄마와 아기의 모습은 따뜻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조화로운 가을 색조 담은 부드러운 붓질이 따스한 햇빛을 표현하고요. 전체적으로 고요하면서도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지는데 배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의 모습에서 비롯되는 느낌이 아닐까요.




Jean Louis Paguenaud (1876-1952) 장 루이 파그노의

"Vịnh Hạ Long (1934)" 빈 하롱


코발트블루빛과 톤 다운된 와인 빛 열대 식물의 색감이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는 하롱베이의 경관입니다.

잔잔한 바다에 떠있는 하롱베이 섬들의 고요함과 깊은 여유를 선물 받습니다.


 Louis-Jules Dumoulin (1860-1924), 루이 쥘 뒤무랭의  

"Vịnh Hạ Long" (vẽ năm 1888-1889) 하롱베이


유럽의 유명 화가였던 Louis-Jules Dumoulin(1860-1924) 루이 쥘 뒤무랭이 그린 "하롱베이"(1888-1889년)입니다. 그는 한때 "해군 화가"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그림에 대한 공헌으로 Đại Nam Long Tinh (프랑스 식민시대에 Nguyen 응우옌 왕조와 프랑스인들을 위한 보상 메커니즘) 및 Bắc Đẩu Bội tinh (프랑스의 가장 높은 메달)을 받았습니다. 1910년 인도차이나상을 창설했고, 유럽 예술가들을 이곳으로 오도록 후원했으며, 인도차이나 회화 운동에 기여한 작가입니다.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같은 하롱베이인데 위의 장 루이 파그노가 바라본 하롱베이는 쿨톤이고 뒤무랭의 하롱베이는 웜톤입니다. 같은 장소 다른 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석양의 오렌지 빛이 하늘을 물들이며, 그 아래 바다의 푸른 색조에 은은히 반사되어 따사로운 느낌이 출렁입니다. 하롱 바다 위에 떠 있는 삼천 개의 섬들의 웅장함 중 한 컷이 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Jacques Rousseau (1861-1911) 장 자크 루소의

"Chùa Láng, Hà Nội" 하노이 랑 파고다


"하노이 랑 파고다", 캔버스에 유채, 예술가 장 자크 루소(1861-1911)가 1902-1904년에 그린 작품입니다. 그는 1903년 Legion of Honor 메달을 받았으며 프랑스 식민지 화가 협회의 부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작가의 가슴에 들어온 하노이 파고다의 한 장면이 한적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왼쪽에 있는 나무와 그늘은 따뜻한 석양의 빛과 잘 어우러져, 사색에 잠긴 소년을 비추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통 건축물의 지붕선이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고 있네요. 전통과 역사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Géo Michel (1883-1985) 지오 미셸의

"Trước miếu, Hoàng thành Huế" 후에(Hue) 왕궁 성채 앞


1930년대에 Géo Michel(1883-1985)이 종이에 유성 페인트로 그린 그림입니다.

후에(Hue) 왕궁 건축물과 그 주변 경관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색상과 세밀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으며, 주홍 기와로 덮인 지붕을 가진 왕궁입니다.

배경에는 푸른 나무와 붉은 단풍이 어우러져 있어 계절감을 느끼게 하네요. 남성 아오자이를 갖춰 입은 한 사람이 건물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며,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빠진 유럽 화가의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외국인으로서 베트남 전통 건축물을 마주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에 이입되어 봅니다.





Maurice Ménardeau (1897-1977) 모리스 메나르도의

"Phong cách đồng ruộng" "필드 스타일"


1930년대 인도차이나를 여행한 "해군 화가" 모리스 메나르도(1897-1977)가 캔버스에 그린 유화입니다.


넓은 초록 논과 구름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한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흐릿한 분위기 속에서 유달리 논은 생명력 넘치는 초록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가운데 작은 물웅덩이가 옅은 햇빛에 반사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하늘에는 다양한 형태의 구름이 떠 있어, 날씨의 변화를 암시하며 드라마틱한 느낌을 주고 있네요. 몇 그루의 나무와 야자수가 베트남의 열대 여름의 특성을 잘 나타내어 주는 전형적인 농촌의 풍경입니다.



Évariste Jonchère(1892-1956) 에바리스트 존셰르

"Phong cảnh Việt Nam" (vẽ năm 1932-1933) 베트남 풍경


Évariste Jonchère(1892-1956) 에바리스트 존셰르의 유화 작품입니다. 그는 1936년 Victor Tardieu 빅토르 타르디유가 세상을 떠난 후 미술 학교 교장을 계승하기 위하여 1932년 베트남에 왔습니다.


잔잔한 물가의 전통 배 위에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담아내었습니다. 배 뒤에는 푸른 산과 언덕이 펼쳐져 있고, 다양한 나무들이 자생하고 있네요. 하늘은 맑고 푸르며, 물은 고요하게 반사되고, 하나둘 구름도 떠 있어 따스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Joseph Inguimberty(1896-1971)

"Rặng Ba Vì nhìn từ ruộng Sơn Tây" (khoảng năm 1932-1938, chất liệu sơn dầu trên toan) 썬떠이(Son Tay) 들판에서 본 바비 산맥


인도차이나 미술 학교 교수인 Joseph Inguimberty(1896-1971) 조셉 잉귀베리의 작품입니다. Victor Tardieu에 비해 그의 교육 스타일은 덜 학문적이었습니다. 인상파의 영향을 받은 그는, 종종 야외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직접 관찰하여 그리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그의 그림은 그 당시 주로 녹색을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넓은 논밭에서 작물을 심는 농민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푸른 산이 있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습니다. 다양한 색조의 초록색과 갈색으로 표현된 논밭과, 물이 고인 웅덩이가 잠시 눈을 쉬어가게 합니다. 소를 끌고 가는 삼각형 모양의 땅이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는 느낌이 듭니다. 베트남 농촌의 일상적인 시골 풍경과 산과 논밭의 아름다움이 널찍한 원근법 속에 야무진 구조를 타고 잘 담기어 있습니다.



1942년에 완성한 조셉 잉귀베리(Joseph Inguimbery)의 또 다른 작품, 아련한 붓터치를 통해 표현한 사파의 풍경과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의상과 액세서리가 각기 다른 것으로 보아 산을 타던 다른 부족의 사람들이 언덕 위에서 만나 담화를 나누는 모양입니다.





Léo Craste(1887-1970) 레오 크라스트의

 "Thuyền ở bến Sài Gòn" 사이공 부두의 보트


"사이공 부두의 보트"는 Léo Craste(1887-1970)가 1938년 실크에 수채화로 그린 작품입니다.

꾸깃 꾸깃한 실크 천의 느낌이 오랜 세월을 짐작하게 합니다.


항구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네요. 여러 대의 배가 물 위에 떠 있으며, 각기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중앙에 둥글고 큰 배가 보이는데 그 안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다정해 보이네요. 여러 선박들이 정박해 있는 사이사이 물결의 반사로 인해 수면이 부드럽게 빛나고 있습니다. 항구의 일상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그림에 "賴翁筆"(나옹필)이라고 쓰고, "나옹(레오)의 붓" 또는 "나옹이 그린 그림"이라 읽는 한자 직인을 더했습니다. 그로 인해 화풍도 이미지도 마치 동양화가의 작품인 듯 보여요. 왼쪽 하단에 작게 쓰인 영어 서명이 없었다면 깜빡 속을 뻔했네요.





Alix Aymé (1894-1989) 알릭스 아임의

"Hai thiếu nữ An Nam"  두 안남 소녀


 Alix Aymé(1894-1989) 알릭스 아임이 비단에 잉크와 수채화로 그린 "두 안남 소녀"입니다.


한 명은 흐트러진 머리를 빗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상체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누워 있는 앳된 모습의 두 소녀입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소녀들이 쉬고 있는 장면에 부드러운 느낌을 더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백 년 전의 베트남이었습니다.






옛날이 아닌 현대 베트남을 그리고 있는 화가를 한 명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일본인 화가 Eriko Hamada



8년 전쯤인가요. 어느 날 카페에 예쁜 일본 여성 손님 한 분이 테이블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예뻐서 눈에 담아 두었었는데, 말도 없이 이 그림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동스럽던지요.


에리코 하마다는 베트남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이렇게 그림을 남겨 주는 일본인 화가였습니다. 취미로 시작한듯한 그녀의 그림이 점점 하노이에서 유명세를 타게 되며 책도 출간하고 여러 모양으로 아트 콜라보를 이루어내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일본으로 돌아 간 듯한데 일본의 골목

골목을 그리며 여전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수채화로 베트남의 모습을 꼼꼼히도 표현했습니다.

그 디테일에 감동받을 때가 여러 번이었지요.

다낭의 핑크 성당도 러블리하네요.


어느 날 베트남의 라커회화 기법을 공부하고 달걀 껍데기로 표현하는 기법을 배우는 듯하더니 그녀의 화풍에 베트남의 전통 기법이 깃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라커 페인팅으로 이렇게 훌륭한 그림을 남기고 있습니다.


 

2019년의 작품이네요. 'PHỞ KIỂU CHUYÊN BỐ' 쌀국숫집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게 그려내었습니다.



따뜻한 색조와 디테일한 묘사가 어우러져, 베트남 그 자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외국인 화가,

에리코를 응원합니다.


Eriko Hamada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ericohama?igsh=djE4c2MzNmI3am42




https://www.lofficielvietnam.com/art-design/trien-lam-mong-vien-dong-lan-dau-gioi-thieu-nhung-hoa-si-phap-toi-dong-duong


https://vnexpress.net/tranh-hiem-ve-canh-sac-con-nguoi-viet-100-nam-truoc-4642156.html

https://thegioihoihoa.com/blogs/trien-lam-tranh/phong-canh-viet-nam-100-nam-truoc-0923?srsltid=AfmBOopBLeNjXllKuOd3vVhl5QhnKMmCsK7cccxYvwjABIdmsbuLIX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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