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국민빵의 감성
화가는 호치민 미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호치민 미술협회가 공동 주최한 '수채화 초상화'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2021년에는 코로나 19 팬데믹 중 인류애를 주제로 한 일련의 그림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23년 3월 호치민에서 열린 바잉미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오일컬러, 목탄, 파스텔을 이용하여 그린 3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하였는데 그의 작품으로 베트남 국민 빵, 바잉미(Bánh mì)의 감성을 공유해 볼게요.
아침 바잉미
따끈한 바게트 샌드위치 한 입 와앙 깨어물면 겉바속촉 빵 안에서 터지는 바베큐 육즙과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당근 파파야 샐러드, 그 위에 살포시 얹어진 고수의 향긋함과 베트남식 칠리소스가 어우러진 Bánh mì (바잉미)는 한국에선 '반미'라 불리는 베트남의 국민 빵입니다.
따끈한 쌀국수 한 그릇에 이 바잉미 원조 맛이 궁금해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시진 않나요?
끝까지 보시다 보면 티켓팅창을 열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쌀국수와 함께 바잉미는 대표적인 베트남의 아침식사입니다. 간편한데 탄단지 고루 갖추어 든든하기까지 한 훌륭한 아침식사 대용이지요. 바잉미장수가 길 위에 바구니를 펼치면 출근길 오토바이들이 차례로 멈춰서 바잉미 봉지를 싣고 가는 흔한 베트남의 아침 풍경입니다.
지난 코로나 시절 다낭에 온 한국인 관광객들이 베트남 정부 방침에 의해 갑작스럽게 격리당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격리 후 베트남의 대표 아침 식사인 바잉미가 배식되었는데 밥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이 베트남에 격리된 것도 억울한데 식사로 빵쪼가리나 줬다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며 베트남을 비난하자 문화적 차이에서 온 오해와 편견이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웃픈 해프닝도 있었더랬죠. 이 사건으로 인해 베트남의 정부 방침과 정성껏 준비한 아침식사 바잉미가 무시당했다 느낀 베트남 시민들이 잠시 반한 감정을 갖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베트남의 바잉미는 그들에게는 국밥 같은 존재니까요. 새벽 세시에 일을 끝낸 노동자들도 하나 먹고 집으로 돌아가고 이른 새벽에 일을 시작하는 환경미화원들도 아침으로 먹고 일을 시작하러 가는 그런 음식입니다. 돈이 없는 대학생도 먹여 살리는 바잉미이며, 심지어 젊은 친구들이 클럽 갔다가 해장하러 마지막에 들리는 곳도 바잉미 집입니다. 부유하던 가난하던 정말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빵. 그것이 바로 바잉미이지요.
당시 매우 힘들었던 한국인의 입장도 충분 이해가 되었던 그 빵조가리 바잉미는 CNN과 세계 음식 매체인 테이스트 아틀라스(Taste Atlas)에서 세계 최고의 샌드위치로 선정되었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당시 어렵고 고단했던 시기가 만든 해프닝이지만 빵쪼가리 바잉미는 참 맛있는 샌드위치입니다.
고소하고 바삭한 바잉미 샌드위치 하나에 달달한 베트남식 연유커피 노우다(Nâu đá) 한 잔이면
퍼펙트한 아침이 되어버리죠.
펜데믹의 바잉미
어둑어둑한 밤거리
그 옛날 자전거 종소리를 울리며 "찹싸알떡~~"하고 지나가던 한국의 그 감성이 베트남 거리에도 번져나갑니다. 파랑과 보라톤이 오묘하게 결합된 초저녁 하늘 아래로 샛노란 불빛이 강한 대조를 일으키며 빛나고 있습니다. 꿈결 같은 그 노랑은 강제적으로 고요해진 골목을 더 슬프게 빛내고 있는 듯합니다.
Lê Sa Long(레 싸롱) 화가는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모습을 그림으로 많이 남겨 주목받은 화가입니다.
온 세계가 아픔을 겪었던 그 시간 동안 베트남에도 일어난 많은 이야기들은 슬픈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그 슬픈 추억을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2021년 6월 초의 비 오는 저녁, 그는 빈탄 구역의 부 후이 탄 거리의 친구 집에 있었습니다. 조용한 골목에서 "사이공의 특별하고 맛있는 빵, 한 개에 3천 동"이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빵 장수에게 돈 대신 쌀을 주고 10개의 빵을 사서 친구들과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팬데믹 이후, 화가는 우연히 그 빵장수의 아들을 만나게 되었고, 아버지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골목에서 바잉미를 팔고 있는 모습에 감동받은 화가는 그 때 그의 모습을 작품으로 남기게 됩니다.
비 오는 저녁을 그려내는 붓의 질감,
어두운 배경을 뒤로하고 세 인물이 마스크를 쓰고 빵 봉지를 주고받는 모습에 비도 내리고 눈물도 내리는 힘겨웠던 시기가 반영되어 있네요.
팬데믹 기간 동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빵을 전달하던 자원봉사 차량들이 거리에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 청년들이 음식을 나누기 위해 나섰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빵'이라 팻말을 단 유리 상자가 길 가 곳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참 아프고 힘들었지만 서로를 위하고 도울 수 있었던 귀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추억속의 바잉미
화가는 그의 어린 시절의 바잉미 추억도 담아냅니다.
팝아트 스타일로 그려진 이 그림은 50년의 역사를 가진 사이공의 바잉미 원조 맛집 (Hòa Mã, 호아 마)의 바잉미입니다. 뜨거운 팬에 지글거리는 고기와 계란을 따로 서빙해 주어 유명해진 집이라고 합니다.
그 시절 작가가 먹던 바잉미, 당장 하나 주문하고 싶어 지네요.
1975년 이전까지 바잉미 원조집으로 꼽히던 곳은 사이공의 중앙 우체국 앞에 있던 Hương Lan(흐엉 란) 빵집이었습니다. 맛집 앞에 서는 줄은 예나 지금이나 길어요. 아늑하고 따뜻한 질감이 느껴지면서도 호치민 사람들의 생동감이 다양한 색조 안에 조화를 이룹니다. 나무와 우체국 건물의 디테일이 좋아 왠지 여행하는 느낌도 느껴지죠. 약간 거칠어 보이는 바닥의 질감 위로 햇빛이 비추어 그림에 생명력을 더해줍니다. 도시의 일상적인 풍경이 따뜻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이 그림 역시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을 바탕으로 그려졌습니다. 아이들을 매우 사랑한 70세가 넘은 Sáu (사우)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매번 사이공에 사는 아들을 방문할 때면, 두 다스의 큰 바잉미를 사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곤 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바잉미와 함께 만다린 꽃다발을 들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모습은 오랫동안 그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정체성의 바잉미
바잉미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미스 베트남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블루 색조 브러시 스트로크로 채워진 배경 질감이 활기찬 대회상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짜 바잉미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었다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이 사진까지 보니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오늘은 바잉미 원조 맛집으로 가봐야겠어요. 베트남 사람들에게 원조 바잉미 맛집이라 하면 칠리 등의 소스맛을 최소화 한 집을 최고의 집으로 쳐줍니다. 그저 바게트 빵의 질감으로 승부하고 재료 본연의 맛으로 승부해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꿀발라 구운 바게트 빵만 먹어도 눈이 동그래집니다. 재료의 옵션에 따라 바잉미의 가격이 달라지는데 계란만 달랑 넣고 먹으면 만동(한국 돈 500원 정도)에도 먹을 수 있고, 다이어트를 원하는 여성들은 야채 절임만 넣어서 먹기도 합니다. 고기나 빠떼등 다양한 옵션을 추가할수록 럭셔리 바잉미가 되기도 하지요. 바잉미를 길거리 음식이라 우습게 보지만 재료 하나라도 신선하지 않으면 바로 들통이 나버리는 아주 솔직한 샌드위치랍니다. 그래서 치즈 범벅 소스 범벅으로 만들어지는 다른 샌드위치보다 우위에 두는 베트남의 자부심을 듬뿍 담은 빵이지요.
바잉미(Bánh mì)는 베트남인에게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영향을 받아 바게트에 다양한 재료가 결합된 형태로 발전한 대표적인 음식으로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어요. 바잉미는 사람들과의 소통을 담당해 왔고 각 지역마다의 특색을 담으며 발전했고 길거리 음식으로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일상적인 식사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베트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음식이자,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바잉미 컬렉션 어떠셨나요?
배고픔만 남겨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맛집으로 출발하겠습니다.
https://vnexpress.net/hoa-si-ve-tranh-ton-vinh-banh-mi-458609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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