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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10. 2024

얇고 유연하되 강하기

라탄과 대나무 공예


라탄과 대나무 공예


자연을 닮은 유연함
자연을 담은 미감
약함 속의 강함


얇고 유연하되 강할 수 있다는 삶의 미학을

라탄과 대나무가 다정히 속삭여줍니다.


고대 문명과 함께 태어난 라탄 생활도구들과 가구들은 주로 동남아시아 등의 열대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중세에 이르러 무역을 통해 인도와 중국, 아랍권 등 다양한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유럽의 탐험가들과 무역상들은 라탄 제품을 서구로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의 상류층 사이에서 라탄 가구와 장식품은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가벼운 특성과 함께 무엇보다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디자인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고 하죠. 특히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도 라탄 가구는 대중화되었고, 당시 정원 가구나 베란다용 가구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한동안 인기가 주춤하다가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현대에 들어서 자연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재로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인 라탄가구는 물론이고, 현대적 디자인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에서도 폭넓게 사용되는 다재다능한 소재이니까요. 주로 동남아에서 제작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서구의 매력까지 묻히고 유럽을 돌아와서 그런지 내추럴하면서도 묘하게 예쁜 매력을 품게 된 것 같습니다.




라탄은 가볍고 매우 부드러워서 여러 가지 형태로 엮거나 구부릴 수 있다는 '유연함'이 특장점이지요. 복잡한 디자인의 가구나 소품 제작에 이보다 적합할 수 없습니다. 만들기는 유연하고 완성품은 단단하니 외유내강 아니고 외강내유라 불러줄까 봐요. 가볍지만 내구성이 뛰어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가구로도 사랑받습니다. 내구성만 있게요. 내습성도 있어서 습도가 높은 환경에서도 잘 견딘답니다. 직사광선에 장기간 노출되어 색이 바래는 것과 습한 곳에 환기 없이 방치되어 곰팡이가 생기는 것에만 주의한다면 아주 오랜 시간 보존 가능한 소재입니다.


라탄 거울을 만들기 위한 프레임들입니다


그런데 라탄과 대나무가 다른 건가요?

라탄과 대나무는 비슷하게 쓰임을 받고 있고 천연 소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구나 공예품 제작에 비슷한 용도로 사용되면서 무척 닮아 보이지만 두 소재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식물적 차이로는 라탄(Rattan)은 야자과에 속하는 덩굴성 식물입니다. 라탄은 주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열대 지역에서 자라며, 덩굴 형태로 길게 자라기 때문에 가늘고 유연한 특징이 있습니다. 빨리 자라고 재생 가능성이 높아 환경에 부담이 적은 친환경 소재로 평가되고 있어요. 내부가 속이 꽉 차 있는 구조로 되어 있지만 표면이 부드러워 엮었을 때 자연스러운 곡선과 패턴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에 비해 다소 약한 편이라 강한 외부 압력에 의해 손상될 수 있는 단점이 조금 있기는 하죠. 색상은 주로 연한 베이지에서 갈색까지 다양한 톤을 띠며, 표면이 미세하게 결이 있습니다.


대나무(Bamboo)는 벼과에 속하는 식물로, 나무처럼 곧고 단단하게 자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서 자라며, 수직으로 자라나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구조를 가집니다. 마디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는 중공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대나무는 라탄보다 훨씬 강하고 단단하지만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때문에, 직선적이거나 고정된 구조의 제품에 많이 사용됩니다. 주로 튼튼한 외부 구조물이나 장식, 공예품 등에 쓰이기도 하고 바구니나 소형 소품을 엮을 때도 사용됩니다. 대나무의 색상은 노란빛이 도는 연한 녹색에서 짙은 갈색까지 있으며, 뚜렷한 마디의 포인트가 외관에 고유의 질감과 특성을 부여합니다.


함께 사랑받는 비슷한 재료가 두 가지가 더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워터 히야신스(Water Hyacinth)입니다. 주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수역에서 자라는 수생 식물입니다. 물 위에 떠다니며 번식하는 식물로, 가공 후 건조하면 가볍고 단단한 섬유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볏짚 같기도 한 히야신스는 라탄과 닮은 듯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갖지요.


다른 하나는 라피아(Raffia)로 주로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서 자라는 라피아 야자나무의 잎에서 채취한 섬유입니다. 이 섬유도 역시 다양한 공예품, 가방, 모자, 가구 및 인테리어 소품에 널리 사용됩니다.


비슷한 재료이지만 크게 보면 원산지와 출처에 따라 명칭을 구분한다. 느낌과 쓰임새는 같지만 구조와 강도면에서도 질감에서도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에 가공 및 용도가 살짝살짝 달라진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유연함 속에서도 강함을 지켜내는 방법, 강함 속에서도 유연함을 지켜내는 방법을 서로에게 알려주며 상생하는 멋진 사이가 아닐까요.


라탄과 대나무와 워터히야신스 그리고 라피아 제품들


여느 수공예처럼 라탄과 대나무 바구니를 엮는 전통적인 방법은 섬세한 기술과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입니다. 지역에 따라 다양한 패턴과 기술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인 과정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전통적인 방법의 수공예법이 숙련된 기술자들을 통해 수세기 동안 계승되어 오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되겠지만 글 속에서 상상해 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잘라낸 대나무를 얇고 길게 가릅니다. 주로 뼈대용 대나무와 엮는 대나무를 따로 준비하는데, 엮는 대나무는 얇고 유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른 대나무를 엮기 좋도록 매끄럽게 다듬고 칼이나 대패를 사용하여 표면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대나무 바구니의 바닥부터 시작합니다. 긴 대나무 줄기를 가로와 세로로 교차하여 그물을 형성하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한 얇은 대나무 줄기를 이용해 뼈대를 엮고 가로와 세로로 대나무 줄기를 교차하며 엮어 나갑니다. 이때 줄기의 방향을 번갈아가며 위아래로 교차시키는 ‘직조’ 방식으로 엮는 것이 기본입니다. 바닥에서 뼈대를 세운 후 완성되면 바구니의 측면을 원통형 또는 사각형으로 엮기 시작합니다. 대나무 끝을 바구니의 내부로 접거나, 바깥으로 돌려서 단단하게 고정합니다. 손잡이가 필요한 경우에는 별도의 대나무 줄기를 사용해 튼튼한 손잡이를 만들어 부착하기도 하고요. 완성된 바구니의 거친 부분을 다시 다듬고, 필요에 따라 광택제를 바르거나 불에 살짝 그슬려 바구니의 내구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말로 하면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이것이 말의 특장점 아닐까요.





디자인도 다양하고 쓰임새도 참 다양해요. 가볍고 이동이 쉬워 실내외에서 모두 사용하기 효율적이면서도 예쁜 가구가 인기입니다. 그뿐인가요. 멋스러운 모자나 핸드백 소품으로도 인기 만점인 소재이지요. 라탄을 엮어 만든 바구니, 조명, 거울 프레임, 잡지꽂이 등의 소품들은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주기에 실내 인테리어 및 패션 소품의 단골 소재가 됩니다. 이런 매력 때문에 명품 브랜드에서도 내추럴룩 컨셉과 썸머 시즌엔 결코 손을 놓지 않는 거겠지요.




빼놓고 지나가면 섭섭할 베트남 라탄 공예 마을도 잠시 둘러보고 갈게요.


베트남 라탄 공예는 17세기부터 르우트엉(Lưu Thượng) 마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라탄 공예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으며, 푸뚝(Phú Túc) 지역과 인근 지역 푸빙(Phú Vinh), 땅띠엔(Tăng Tiến ), 응옥 동(Ngọc Đồng) 마을들로 영향을 주며 발전하였습니다


푸빙(Phú Vinh)은 17세기에 처음 등장한 가장 오래된 베트남 라탄 무역 마을 중 하나입니다. 이 마을은 다양한 디자인의 아름답고 섬세한 대나무와 라탄 제품으로 베트남 수공예 제조마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지이기도 하고요. 숙련된 장인들과 함께 라탄 공예 제품은 전통적인 패턴과 현대적인 패턴을 고유한 특성과 결합했습니다. 일상용품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아이템들을 만드는 것에서도 재능을 보여주고 있지요.


탕 띠엔(Tăng Tiến) 대나무와 등나무 공예 마을로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쿠션, 베개, 핸드백 등과 같은 고품질 공예품으로 유명합니다.


응옥 동(Ngọc Đồng) 마을은 라탄과 재스민 나무로 제품을 만드는 베트남의 꽤 오래된 공예 마을입니다. 내구성 있는 라탄으로 숙련된 장인들이 다양한 모양과 유형의 라탄 의자, 항아리, 접시, 그릇 등의 제품을 만들어 냅니다. 이곳은 라탄을 비스듬히 엮는 기법이 유명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스민 꽃향도 은은하게 날 것만 같은 재스민 나무 공예품이 과연 어떤 걸까 솔깃하게 다가오는데 주로 장식품을 만드는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재스민 나무 줄기를 넓적하게 다듬어 깍아 재탄생한 우드 재스민 플라워의 자태에 심쿵하네요.






평생을 한국 문화 원형 연구에 힘썼던 이어령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책

[우리 문화 박물지]에서 이야기하고 계시는 바구니의 미학이 너무 맘에 들어 그 내용도 잠시 나누어 드릴게요.


옛날 우리의 누이들이 밖에 나올 때 손에 들려 있던 것은 크리스티앙 디오르나 이브 생로랑 같은 핸드백이 아니었다. 마치 기구처럼 배가 부풀어 있는 둥근 바구니였다. 그리고 그 바구니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몸치장하는 화장품이나 사치품을 사는 지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텅 비어있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을 간직해 두거나 소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구니는 무엇인가를 가득 채우기 위해 있는 것이다...


저녁 늦게 밖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 딸들의 핸드백은 늘 비어 있었다. 차표 몇 장과 몇 개의 동전이 피곤한 기억처럼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 누이들은 빈 바구니를 향기로운 나물과 풋사랑의 비밀로 하나 가득 채우고 돌아오곤 했다. 옛날 옛적 맨발의 채집민들처럼 동굴 안을 기웃거리며 돌아왔다.




기회를 봐서 베트남 소수 민족학 박물관과 여성 박물관을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우선 오늘의 소재와 맞닿아 있는 대나무 바구니들을 먼저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바구니의 미학을 음미하며 함께 구경해 보실까요?


바구니의 형태 구조 패턴 색감...

눈을 떼기 힘들도록 정교합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엮어 낸

저 옛날의 바구니 디자이너와 제작자 대체 누구일까요...

모던한 블랙 화이트의 소수 민족의상에 색이 다른 두 개의 대나무 바구니.

그날의 기분 따라 매치하는 산골 패션 감각

너무 멋지죠?

꾸안꾸 배치가 사실은 꾸꾸꾸 배치일지 몰라요

옛날의 샐러드 믹싱볼이에요.

시저 샐러드 한 그릇 해드릴까요?

통풍을 위해 바구니 다리가 있는 걸 보니 양파나 감자 보관 바구니 아니었을까요

대나무로 엮은 새장도 너무 멋진걸요. 몸이 쪼꼼한 아기새가 태어나면 푸른 하늘로 탈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소수민족학 박물관 소장

소수민족학 박물관 초입에서 마주치는 라탄 가득 실은 자전거입니다. 꽃 자전거와 함께 베트남의 상징 아이콘 같습니다.




하노이 여성 박물관 생활 도구 전시층에 있는 바구니 셀렉션도 함께 구경해 보세요.

그냥 바구니면 될 것을 모양도 형태도 제각각입니다.

다 알 수 없는 지혜로운 쓰임새가 디테일하게 있었겠지요.

고동색 라탄 쟁반 패턴과 색감, 오밀조밀한 사이즈의 주방 도구들... 집에 가져가고 싶어요 정말

하노이 여성 박물관 소장


센스쟁이 디자이너들도 넘쳐나고 기술력마저 좋은 현대보다 투박했던 손기술이 만들어 낸 고전의 색감과 정교함의 수준이 왜 더 높아 보이는 걸까요? 저 옛날의 바구니들은 조용히 입을 다물게 합니다. 어느 나라이던 선조들의 감각과 능력은 정말 경이롭지 않나요.





Rattan lacquer box

라탄과 라커가 결합하면 컬러풀한 예술품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아트계의 콤비네이션은 무궁무진하지요. 약과를 입에 넣어 드렸다가 갑자기 새콤달콤을 쏙 넣어 드리는 느낌이죠? 원래 청국장 먹다가 까르보나라로 마무리하면 또 재밌게 맛있고 그런 느낌있잖아요.(순서가 반대여야 할까요? ㅎㅎ) 기호에따라 다채롭게 즐겨보세요.



Lacquered Rattan


아시아 문화권에서 서로 통하는 라탄의 역사

손 때가 묻을수록 더 빨려 들어가는 라탄홀 종착지로 마음은 이미 타임머신을 타고 떠났습니다.


Mid 20th-Century Petite Lacquered Chinese Bamboo & Rattan Two-Tier Wedding Basket

20세기 중국의 라탄 제품입니다. 웨딩 바스켓이라면 함일까요?

Vintage tea tray 1960s China handicrafts Zhejiang bamboo and rattan hand-woven, lacquered

1960년대 중국의 빈티지 티 트레이래요. 중첩된 다이아몬드 패턴의 디테일에 또 마음 빼앗겨 버리고요.

Thai 19th Century Rustic Hand-Woven Rattan Rice Basket with Red Rim

이건 19세기 태국의 러스틱 쌀바구니입니다.

정사각 베이스에 원형 입구를 매치하여 엮어 낸 감각적 형태이네요. 때 타고 낡은 질감이 감각 플러스 원 모어!


타임머신 탄길에 살짝 아마존 이베이로도 넘어가 볼까요?

히야신스로 만든 스탠드 조명도 너무 예쁘지요.

밤에 노란 백열등이 켜지면은…

상상만 해도 따듯하고 아늑해집니다.


Scalloped Ottoman Table Handwoven rattan/Wicker

발리 브랜드 Scalloped Ottoman에서 라탄으로 식탁보 물결을 표현한 것 보세요. 콘솔 위에 쿠션을 얹은 감각도 너무 훌륭합니다.



베트남뿐 아니라 서구를 돌고 돌아온 라탄이기에 나라별 시대별로 골고루 보여드리려 애써보았어요. 끝도없이 나오는 예쁜 아이템들에 눈이 데굴데굴거리지만 이만 멈출게요.



라탄과 대나무의 유연한 매력에 사로잡히면 흔들리는 마음을 곧게 다잡아야만 해요.

외유내강도 아름답지만

오늘은 외강내유로

알고보면 마음은 여린 쎈언니의 하루이고 싶습니다.








https://www.simpledecor.vn/top-3-well-known-vietnamese-rattan-trade-villages/

https://vnexpress.net/lang-nghe-dan-co-te-o-luu-thuong-30534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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