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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Oct 03. 2024

라커의 아뜰리에

나의 하노이 참새 방앗간


감각적으로 신나는 색채는
세련된 방식으로 삶의 기쁨을 더합니다.


어떤 아름답고 예쁜 물건이 집 안에 놓여 있을 때

강력한 색감적 자극으로, 혹은 은은한 조형미의 균형으로, 때로는 왜곡된 비율과 이미지로 멋진 '기쁨' 포인트를 만들어 냅니다. 게다가 그 물건에 고전의 아름다움이 녹아들어있다거나 예술적 터치와 사유의 베이스까지 내재되어 있다면 그것은 기쁨을 넘어선 감동과 힐링이 되지요.


라커 예술에는 그동안 소개해 드린 라커 회화도 있고 라커 스태츄 (조각상) 그리고 라커웨어가 있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제가 하노이의 일상에서 만나는 수공예 예술품 중 개인적 애정이 심히 편중되었다 할 수 있는 라커웨어(Lacquerware, 옻칠 공예품)들을 만나러 가보려 합니다. 한 번씩 새로운 녀석들이 얼마나 생겨났나 확인을 해야만 맘이 놓이는 그런 곳들 있잖아요. 꼭 손에 뭘 들고 들어오지 않아도 두 눈 가득 담고 오면 밥 두 그릇 먹은 것마냥 두둑해지는 그런 곳이요. 저의 하노이 참새 방앗간들 중 오늘은 그 두 곳을 소개해 드릴게요.





하노이의 유토피아

Hanoia


라커웨어는 전통 칠기 공예의 보물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저 먼 옛날 실크로드를 따라 전통 옻칠 기술이 베트남에 전파되었습니다. 베트남은 그들만의 감각을 더하며 멋스러운 옻칠 공예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하노이 여행 중 국자감 문묘인 반묘(Văn Miếu) 코스를 즐겨보신 분이라면 마지막 출구를 나서기 전 눈에 들어온 하노이아 라는 전통 아이템 샵을 기억하실지도 몰라요. 반묘 안에도 하노이 올드쿼터 시내 안에도 있는 라커웨어 상점 브랜드입니다. 옻칠 기법으로 만든 디자이너의 섬세한 작품들이라 다양한 홈 액세서리들이 고가인 편이긴 합니다.


반묘 하노이아의 낮과 밤
올드쿼터 메트로폴 레전드 호텔의 하노이아

Hanoia는 깊은 도수의 옻칠 향이 첫인상을 매력적으로 챙겨가는 곳입니다.


가게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 라커웨어의 옻칠 냄새가 콧 속으로 후욱 들어옵니다.

유치원생땐 크레파스 냄새가 좋아 크레파스 뚜껑을 열고 통 속에 코를 박고 있곤 했어요. 초등학생이 되어선 달달한 꽃향기 같기도 한 학습지 종이 냄새가 너무 좋아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시간이 문제를 푸는 시간보다 길었더랬죠. 중학생이 되어선 모나미 고무지우개 냄새로 갈아타서는 괜히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옻칠냄새에 빠졌답니다.

향이 짙게 나는 화장품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페이셜쿠션등의 베이스에 깔려서 은은하게 나는 향은 또 무척 까다롭게 선택하는 걸 보면 베이스가 가진 향에 무척 민감해서인 것 같아요. 베이스는 베이스고 또 자본주의의 향 사러 가자고 말하곤 하는 비싼 향수도 좋아하는 알 수 없는 저랍니다.


저는 왠지 평면의 회화보다 입체적인 조형에 매력을 더 느끼는 것 같아요. 지금도 패키지 디자인을 가끔 하곤 하는데 유니버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나중엔 이런 걸 만들어 봐야겠다 혼자 이런저런 공상하기를 즐깁니다. 용접기와 온갖 뭉탁한 도구들이 러프하게 걸려 있고 구석에는 낡은 난로 위에 작업하다 간식으로 먹을 고구마도 달콤 따스하게 익고 있는 그런 작업실을 꼭 가져보고 싶습니다.

이제 사십 중반인 저에게 "넌 꿈이 뭐야?" 누군가 묻는다면 " 난 풀타임 디자이너 되는 거"라고 크게 말해줄게요. 꿈을 이루려면 은퇴가 필요하고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웃픈 현실이 있지만요. 제가 생각해도 웃긴 저를 주저리주저리 한 번 써보았습니다.



컬러풀한 라커웨어들의 배치!

그것만 바라보고 있어도 오늘 쇼핑은 완벽합니다. 시각적 힐링이 감각을 깨우고 아직 꿈을

못 이루었다는 우울함 따위는 걷어가니까요.



투명함과 불투명함이 만들어 내는 색의 향연

따듯함 품은 레드와 차가움 품은 파랑의 강한 대비 속에서

무광이 예쁘다가

유광이 예쁘다가

결정장애에다 원색 러버이기까지 한 저는 입술을 톡톡 두드리는 손가락만 괜히 바쁘게 만드네요. 뭘 고를까 하는 고민만큼 크고 사악한 가격이라는 장애물이 있어요. 포기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어서 찾아내야 하죠.

이게 이게 한 개만 있으면 안 되고

다 같이 있어야 이 느낌이 나는 거니까

지금 하나만 딸랑 사가면 안되는 거라고!

은유적으로 서로서로 손잡고 있는 녀석들을 어떻게 떨어뜨려서 혼자만 데리고 가냐구!

그게 더 사악한 거야.


대신 아름다운 것들의 집합과 배열이 만들어 내는 평행선이 주는 감각적 여유는 두둑이 챙겨서 나옵니다. 이 정도면 가성비 참새 방앗간 나들이 아닌가요?


.



베트남 북부의 푸토(Phú Thọ) 성은 옻나무의 고장으로 유명합니다. 썬마이(sơn mài)라 불리는 옻칠 예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복잡한 과정입니다. 회화, 조형 모두에 접목되는 이 기술은 큰 작품이든, 젓가락처럼 작은 물건이든, 약 3개월 이상의 시간 동안 20개 이상의 수작업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 적합한 목재를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로 내구성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결을 가진 나무가 선택됩니다. 예를 들어, 자작나무, 대나무, 또는 고급 목재를 사용하지요. 옻나무의 껍질을 살짝 긁어내어 수지를 추출합니다. 옻에 옮을 수 있으니 피부에 닿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후, 채취한 수지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필요한 경우 물리적 또는 화학적 방법으로 정제하여 순수한 옻칠로 만듭니다.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먼지나 기름을 제거하여 라커 수지를 한 겹씩 도포하여 나뭇결에 깊숙이 침투시켜 나무의 경도를 높이고 흰개미로부터 보호합니다. 그리고 옻칠을 여러 겹으로 바릅니다. 각 겹이 마른 후 다음 겹을 바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일반적으로 5~10겹 이상 바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옻칠을 한 후 자연 건조하며, 이 과정에서 수지가 경화되어 내구성이 강한 표면이 형성됩니다. 이 단계만 해도 수일에서 수주까지 걸리지요. 마지막으로 표면을 다듬고, 필요에 따라 금속 분말이나 자연 염료 같은 추가적인 장식을 적용하여 최종 마감 처리를 합니다. 이러한 정성의 단계들이 옻칠의 품질과 내구성, 그리고 미적 요소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듣고 있자니 세심한 작업과정이 우리나라 자개 공예와도 아주 흡사하지요.



옛날에는 갈아내고 다듬는 작업마저 모두 수작업이었을 테죠. 역시 기계의 발명은 아주 든든해요. 기계의 힘을 입은 매끈한 곡면의 둥글 거림이 마음을 쓱 훔쳐가는 것 같아요.

겨자빛 진노랑톤의 선택은 다른 어떤 것이 제 마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단단한 여운의 경계선을 칩니다.



베트남은 주로 흰 달걀 껍데기를 사용해서 장식하는데 이것도 특이한 포인트입니다. 한국처럼 조개껍질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조개껍질을 다루는 능력은 아무래도 한국이 앞선다 할 수 있고 베트남에선 달걀껍데기의 표현력이 일품인 것 같아요.



레드 라커웨어의 영롱한 반짝임에 행복을 만끽해 봅니다. 손수 갈아내고 그림을 그리고 광택을 내어서 이런 예쁜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을 알고 보면 그냥 대충 보고 지나치기는 정말 힘들어지죠.



뭉탁한 감의 진보라와 산뜻한 오렌지, 파랑과 골드의 어울림이 시각적 흥미를 끌어 한참 바라봅니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도 훌륭하지만 배치와 배열의 미학 속에서 생생한 색감적 자극을 이끌어내는 공간 디자이너도 훌륭해지는 순간이니까요. 격식을 갖춘 그 누군가에 의해 정렬된 선의 배치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움이란 감정을 선물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문화를 조화롭게 결합한 하노이아의 라커웨어는 베트남 문화의 동시대성을 잘 나타내 줍니다. 옻칠 장인의 인내와 집중,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엄격한 수작업 단계를 거쳐 탄생한 작품들이 풍부한 색상 팔레트와 독특한 기술로 베트남 칠기의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아뜰리에 파스칼

Atelier Pascale



롱비엔 철교를 건너 골목골목 들어가면 판자로 된 라커웨어 간이 공장과 쇼룸이 나옵니다. 아뜰리에 파스칼이라는 곳이에요. 하노이 시내 외곽이라 쉽게 나가기가 수월하지는 않은 곳에 있어요. 하지만 맘먹고 다녀오면 오래오래 그 향의 잔상이 남는 곳입니다.

테이블 웨어
플레이스 플레이트와 냅킨 홀더가 골드 커트러리와 잘 어우러 집니다
무광 오리여도 빛나는 군요
영롱하게 반짝이는 언더 플레이트의 강렬한 레드에 눈이 부셔요


반짝이는 라커 상자 위에 매트한 실버 질감으로 처리된 새와 물고기 손잡이 매치가 아주 감각적입니다. 생동감 있는 배치의 아이디어를 끄집어내어 미의 조합을 완성하고 구매욕구를 증폭시키는 제품 디자이너들의 능력에 역동적인 엄지를 치켜세워 줄게요.





즐거운 웃음소리가 가득한 아뜰리에 파스칼의 작은 공장은 오늘도 성실히 돌아갑니다. 공장의 노동자들의 손놀림도 활기차고 예술 작업에 보태지는 보람 때문인지 일에 찌들어 보이는 얼굴이 없어요. 가끔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라커 목걸이 만들기 등을 진행한다고 해요. 주인 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국 정상들을 위한 선물용 혹은 각 공관들의 제작 오더가 많이 들어온다며 자부심을 듬뿍 느끼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 얼굴로 일한다는 건 축복이죠. 라커웨어는 베트남의 품격을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노이 거리를 걷다가 라커기법을 접목해서 만들거나 옻칠로 리폼한 의자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이런 날은 꽤나 매력적인 즐거움이 몰려오죠.


당장 푸토성 옻나무를 꺾으러 출발하고 싶은 그런 날입니다.





https://hanoia.com/

https://www.facebook.com/TraditionalLacquer/?locale=k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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