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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틸다 하나씨 Sep 26. 2024

서정이 깃든 거리에는

하노이 거리질감

하노이의 어느 집 앞, 작자미상


하노이 거리에는

오랜 세월이 뿌리내린 진갈색의 온기와

마치 어느 옛날부터 가슴을 파고드는 추억이 있었던 곳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서정의 질감이 깃들어 있습니다.


벗겨지고 이끼가 끼고 곰팡이가 슬어 오르는 진노랑 벽에 파랑 빨강 진녹색으로 스텐실 된 광고 전화번호들이 나를 봐달라며 외치고 있어요.

분명 음습하고 지저분한 인상을 줄 법한데,

희한하게도 따스하고

그 벽들이 감싸고 있는 낡은 거리에는

습한 공기마저 흙바닥에 그림자 진 낙엽처럼 바삭하게 깔려 있습니다.




Phạm Bình Chương(팜 빙 츠엉)의

심오하고 매력적인 하노이


낯선 듯하면서도 친숙하고,
잊고 싶으면서도 깊이 간직하고 싶은 도시


작가는 '길을 따라 내려가며' 만나는 하노이의 옛 모습이 심오한 매력을 품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을 숨기고 싶은 듯하면서도 동시에 조용히 외치고 싶어 하는 느낌을 준다고요. 그는 하노이의 오래된 거리의 모퉁이마다 숨 쉬고 있는 생명, 그것에서 살아있는 삶의 흔적을 마주쳤습니다. 길을 걷다 길모퉁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마다 '거리의 형태'를 매번 다르게 표현했고 그때마다 'Phạm Bình Chương의 하노이'를 표현했습니다.

그의 하노이를 감상해 보실게요.



낡은 서점의 외관, 브라운 가디건을 걸친 주인아저씨, 자전거를 세워두고 책에 심취한 빨간 윗옷의 학생, 건물을 쓰다듬는 듯한 초록 나무, 울퉁불퉁 깨지고 이끼 낀 인도 위의 회색 돌 타일마저 그 모든 것이 따스합니다. 다크블루 나무 창을 가진 벽의 진노랑과 색을 맞춘 간판에 [cho thuê sách](도서 대여점)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니 도서관 역할을 하는 중고 서점인가 봅니다. 낡은 벽과 낡은 나무 창살 그리고 낡은 책 속에서 새로운 가치관이 태어나는 역설의 공간이군요.



백 년을 담은 유럽풍 건축 스타일, 덩굴 식물 모양의 유선형 라인 철제 디테일이 돋보이는 테라스 난간,

진초록 굵은 나무살이 켜켜이 층진 이중 나무창을 열면 거리의 가로수가 보이는 하노이의 흔한 주택 풍경입니다. 자연과의 조화를 가장 중요시하게 여겨 백 살이 넘은 집들을 날 것 그대로 두어 개조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도시의 길이 대부분 집과 함께 자라 온 가로수로 끝없이 이어져 있어요. 마지막 잎새를 지켜보기에 이리 괜찮은 창가가 있을까 싶어 집니다. 따듯하고 향긋한 찻잔에 연기마저 피어오른다면 이보다 완벽한 가을 끝은 없겠지요.



오랜 우정의 감정.  

그렇게 함께 다정한 인생의 길을 걸어와 할머니가 된 두 친구의 모습입니다.

한 손에 초록 봉지를 들고 서로 팔짱을 끼고 길을 건너려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에서 서로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우정의 맥박이 쿵쾅쿵쾅 뛰는 작품입니다. 길 모퉁이의 샛 노란 황톳빛의 삼각 지붕 모양 건물과 옆 면 한 면은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시멘트 벽 그대로 노출시킨 오랜 집 벽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에서도 깊은 우정이 느껴집니다.



어슴푸레 해가 지고, 음식은 동이 나고 사람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이제 어머니도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의 저녁을 챙길 시간인가 봅니다.

꾸깃꾸깃 접힌 파란 천막 밑의 파란 앉은뱅이 의자들. 우연히 맞추어진 색의 질서는 삶의 질서를 맞추기도 합니다.



낡은 골목을 지나면 나타나는 오래된 집 앞. 노모를 기다린 나이 든 아들은 문 앞에 앉아 무심한 듯 어머니를 마중하고 있습니다. 낡고 빛바랜 목조 문의 고동색 패턴들이 멋스럽게 느껴집니다.





하노이 철교의 모습이네요. 거리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차가운 질감으로 잠시 눈을 정화해 보세요.

뒤에 이어질 서정적인 온기의 거리를 좀 더 담아 보시라고 드리는 중간 브레이크입니다.

철교 옆 비가 고인 모습을 참 사실적으로 잘도 표현해 내었네요. 붉은 갈색 빛으로 녹슨 철교의 디테일도 훌륭합니다.

따듯한 거리의 감성만 잘 표현해 내는 줄 알았던 팜 빙 츠엉 작가의 실력을 또 다른 매력으로 증명해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Under the Bridge, 2007, Oil on Canvas, 41 x 31.5 in.

철제 다리의 세밀한 표현 하며 그 아래 콘크리트 도로와 철교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표현. 하얀 벽돌이 누레진 벽의 질감, 다리 아래 앉아 있는 노동자의 느낌 모두가 마치 롤필름으로 캐치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선지 도시의 복잡한 구조물과 사람들의 삶을 표현한 이 작품에선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입니다.유화 속에서 극 사실주의와 극 감성주의 사이를 마법처럼 오가는 팜 빙 츠엉의 실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어집니다.





얼룩진 진노란 벽, 주홍 지붕, 아치형의 초록 나무창문 그리고 전봇대와 자전거 탄 사람. 어디를 돌아봐도 눈에 들어오는 좁고 긴 주택이 줄지어 선 평범한 하노이의 거리입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고딕 양식과 콜로니얼 스타일의 건축물이 많기에 낡은 유럽의 거리를 보는 듯도 합니다. 동양과 서양이 매치되면서도 올드한 느낌을 품은 분위기가 하노이만의 도시 매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노이의 아름다움과 이곳에 대한 나의 사랑을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여 관람자들이 건축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삶의 아름다움을 모두 느낄 때에, 그것을 하노이의 ‘냄새’로 기억하도록 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면, 작가는 건축미에도 관심을 기울였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풍부한 문화와 삶의 모습에도 깊은 관심의 중점을 두었던 듯합니다.



겨울나무 가지 사이로 볕이 속속 들어온 노란 집의 모습입니다. 바래고 낡은 벽의 질감이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올드 쿼터의 한 장면이지요. 이런 집 아래에는 항상 느낌 있는 베트남식 카페가 자리하고 있어요. 더운 여름날에도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도로를 바라보며 음미하는 카페 쓰어다 한잔이 쓰고 단 삶의 하루를 달래줍니다.

 


날 것 그대로를 담아낼 뿐인데,

하나 둘 셋 열린 창 사이로 걸린 옷가지의 느낌이 꽤나 정감 있습니다.



집집마다 나무 새장 속 알록달록 새들 구경이 쏠쏠한 하노이의 거리입니다.

새는 인간의 자유와 꿈을 상징하기 때문일까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를 담은 걸까요. 베트남 사람들은 노래하는 새를 기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새가 지저귀면 그 노랫소리에 반응해 주는 것에 무척 기뻐하고 그런 소통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을 굉장히 즐기는 눈치랍니다.


 

하노이 올드 쿼터의 성요셉 대성당 바로 옆 즈음이에요. 아직도 그대로 변함없는 모습이라 괜히 반갑습니다. 빗물이 고여 반짝이는 타일 위에 흩뿌려진 낙엽 몇 장의 표현력이 감동을 줍니다.

빛을 아주 잘 다루고, 하노이의 낡은 질감을 가장 잘 다루는 작가 맞습니다.


Buoi Som Dung Street, 2007, Oil on Canvas, 100 x 150 cm. (39.4 x 59.1 in.)


아무도 없이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을 보아하니 아주 이른 새벽인가 봅니다.

저 모퉁이 한 가게만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들이 앉아 있네요. 계속 노란 벽에 비추인 햇빛에 익숙해 있다 이 작품을 마주하니 쌀쌀한 새벽 공기가 훅 들어오는 듯 합니다. 밤새 비가 내렸던 하노이의 이른 아침의 모습도 참 사실적입니다.


In The Old Quarter, 2018, oil on canvas, 36.5 x 34.5 in. (92.7 x 87.6 cm.)


돈이 없어 오토바이를 못 사는 사람들의 자전거에는 애환과 땀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소중한 수단이 되고 이리 심혈을 기울여 그려 줄 수밖에 없는 귀한 자전거입니다.


베트남의 전통적인 거리 풍경뿐 아니라 그 안에 내재된 감성을 그대로 캔버스에 복사해 내기도 하고, 베트남의 문화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하는 아티스트 팜 빙 츠엉의 작품도 잘 감상해 보셨나요? 그의 팬들이 그를 '하노이 거리의 화가' ('Người họa sĩ của phố phường Hà Nội')라고 불러 준다는데 찰떡같은 별명 같습니다.




아쉬우니까 마지막 한 작품만 더 비교해서 보여드릴게요. 지난 화에서 소개해 드렸던 우드 버닝 화가 NGÔ VĂN SẮC (응오 번 싹)이 그린 하노이 거리입니다. 팜 빙 츠엉의 그림보다는 좀 더 거친 질감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우드 버닝 기법 때문인지 벽을 올라탄 검은곰팡이의 질감이 살아있습니다. 버닝 된 나뭇결로 사람의 얼굴과 감정을 표현한 것과는 또 다른 힙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작가들 각각의 개성으로 담아내는 하노이 거리의 질감.

같은 듯 다른 듯 오묘한 매력이 뿜어 나오네요.








https://m.anninhthudo.vn/co-mot-ha-noi-tham-tram-va-quyen-ru-trong-tranh-cua-pham-binh-chuong-post414580.antd

http://vanhoanghethuat.vn/ha-noi-tuoi-tho-toi-va-hoi-hoa-hien-thuc-cua-pham-binh-chuong.htm

https://hanoitimes.vn/painter-pham-binh-chuong-profound-memories-of-a-hanoi-324132.html

https://www.artnet.com/artists/pham-binh-chu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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