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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앤 Feb 06. 2020

퇴사한 주부의 일상

남에 손에 아이 맡기기는 싫고, 막상 노는 주부는 적성에 안 맞네

직장을 그만둔 지 벌써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여름과 겨울, 부담스러웠던 아이들의 방학도 수월하게 지나갔다. 시간이 참 빠르다. 그동안 뭐 했지.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부업도 하고, 교회 봉사도 다시 시작하고... 작년 이맘때와 다른 삶을 살고 있음에 새삼 감사하다. 해가 바뀌어 내 나이 앞 자릿수가 바뀌는 바람에 급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주부로 돌아온 삶에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예정이다.


출근하던 나와 집에 있는 나는 뭐가 달라졌을까. 


유로운 시간 

방학이면 도시락 싸고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출퇴근 길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좋다. 그리고 아이들도 좋아한다.(적어도 내 생각으로는...)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좋아?" 하고 물으니 둘째 딸은 엄마가 간식 줘서 좋단다. (엄만 네가 단순해서 좋다. 그리고 아직 포동포동한 볼도...) 시크한 첫째는 애매한 답을 줬다. 뭐 좋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나.

조금씩 자주 먹고 간식에 환장하는 아이들이라 늘 먹을거리를 챙겨줘야 하는데, 퇴근 후 집에 올 무렵이면 아이들은 늘 배고파했다. 나름대로 먹을걸 쟁여놔도 금세 떨어지고 배고프다고 징징. 어릴때 바쁜 엄마 밑에서 자란 내 어린시절이 너무 애틋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귀하게 곱게 키웠는데 발등을 찍힌 기분이 들 때도 많다. 


퇴사하기 전에는 퇴근 후 씻지도 못한 채 저녁부터 차리고 치우고 집안이라도 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서글펐다. 

주부가 과로사 한다고 집에 있으면 있는 데로 또 분주하다. 하지만, 마음만은 여유롭다. 그래, 마음만은. 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어느정도 포기해야 하고, 때때로 아이들의 유모나 가정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대는 아니어도 나도 4년재 대학 나온 여자인데. 

세상 바쁜 남편을 둔 덕에 맞벌이하면서도 육아는 오로지 내 몫인게 너무 버거웠지만, 그만두길 원할 때 흔쾌히 오케이를 해준 점은 참 고맙다. 


아이들의 자유

초등 고학년이 됐지만 여전히 놀지 못해서 한 맺힌 우리 집 아이들. 뒹굴뒹굴 방학이면 하루 종일 만화책 보고 영화 보고 공기놀이하고 보드게임하고 쉴 새 없이 논다. 그렇게 놀면서도 심심하다고 하고, 엄마가 안 놀아준다며 투덜댄다. 그럴 때면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 뺑뺑이 안 시키는 게 어디냐며 괜찮은 엄마인 척 하지만, 내 맘은 늘 애닳았다. 남들처럼 학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놀아주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두 살 터울의 자매라 둘이 노는 시간이 많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조금 예민한 딸을 키우는 엄마라면 알 거다. 말데꾸 해주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정신적인 체력이 너덜너덜해진다. 입만 나불대면 되는 게 결코 아니라서. 대충 대꾸했다간, 서운해하거나 삐지기도 부지기수다. 아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적인 여유는 많아졌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오히려 더 자주 아이들과 싸웠다. 엄마인 내가 원하는 것(공부)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놀기)이 다르다 보니. 종종 잔소리 폭탄과 말데꾸로 전쟁 아닌 전쟁이 치러졌다. 싸우는 것도 이제 지쳤는지 휴전을 하기로 했다. 내 맘을 내려놓고 나도 내 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해 주니 평화가 찾아왔다. 아이들과 협상을 했다. 싫어하는 영어 수학 학원은 안 다니지만 집에서 정한 분량을 군말 없이 하기로. 양은 아이들과 합의해서 영어 30분, 수학 30분 정도 분량으로 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중간 기말 시험이 없다. 가끔  단원평가를 보기도 하지만 점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큰 아이 친구 중 한 명이 시험을 잘 못 봤다고 엄마에게 맞았다고 하는데 마음이 쓰렸다. 나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처럼 실컷 놀면서도 그 정도면 잘하는 거라고.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가끔 이거밖에 못해? 하는 마음의 소리가 툭 튀어나올 때면 아이가 먼저 알아채고 "엄마 나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잘한 거야" 라며 칭찬을 당당히 요구하기도 한다.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있구나, 한편으론 안심이 된다. 그래 잘했다 칭찬해줬더니 신기하게도 가끔 100점을 맞아오더라. 그래도 공부는 결국 노력이기에, 솔직히 완벽한 내려놓음은 안 되지만 어쩌랴. 엄마가 공부를 하라고 시켜서 될 것도 아니고,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도 스스로 잘하고 싶어 할 미래의 언젠가 기초가 부족해서 너무 힘들어하지 않게 매일 조금씩은 하자고 끌어가고 있다. 가늘고 길게 꾸준히. 하지만 기다려주기란 좀 힘드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있을까. 믿고 기다릴 수밖에.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로막는 것이 성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현재를 기쁘게 보내는 것. 이 시간을 그리워할 날도 오겠지 하고 생각하니 조금 애틋해진다.  


다시 하는 공부

직장에 다닐 땐 돈 쓸 시간이 없지만, 돈 쓸 시간이 많은데 돈이 없다. 그래서 신은 공평한 것인가. 

어쨌든 시간이 돈이지 않은가. 시간을 돈으로 만들고자 돈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건 책, 살림, 육아, 재테크다. 영어공부는 무기한 연장. 미뤄뒀다. 다 잘하려니 뭐가 제대로 되는 게 없어 힘들다. 

살림은 재밌다. 정리 정돈하고 후다닥 청소하고, 집안 구조를 바꾸거나 뒤집어엎는 살림살이가 솔직히 즐겁다. 

육아는 아이들 어릴 적부터 책 읽고 강의 들으러 다니기를 해왔다.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적용해보자 하고 따라 했는데, 아이마다 다르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래서 요즘은 개인의 육아 후기 같은 책보다는 정신과 의사, 심리학 박사 또는 수백 명의 아이들을 가르쳐 본 선생님이 쓴 책에 손이 간다. 전보다 횟수는 줄었지만 꾸준히 육아서를 읽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10대다 보니 사춘기나 대화법, 감정코칭 등의 책이 도움이 많이 됐다. 책을 읽을수록 결론은 사실 한 가지다. 아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되 부모로서 권위를 잃지 말 것.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고쳐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리고 내 아이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엄마라는 것. 

육아란 정답이 없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까. 알면서도 잘 안되고 쉽게 잊어버린다. 책을 끊는 순간 약발이 떨어지기에 정신 무장용 혹은 재충전용으로 책을 읽는다. 

재테크는 참 어렵다. 나에게 그동안의 재테크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운에 가까웠다. 운 좋게도 주식으로도 돈을 벌어봤고, 현재 살고 있는 집 값도 조금이나마 올랐다.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남아있는 주택담보대출과 상대적인 박탈감 때문이리라. 단순한 욕심이라기보다는,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와 남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돈 공부라서 시작해보기로 했다. 돈이 꿈을 방해하지 않도록, 오랫동안 혼자 가장으로 일해온 남편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다. 돈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결코 전부 여서도 안되지만, 가족을 지키는 힘이 되고 싶다. 공부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40부터 시작하는 돈 공부, 기대하시라. 하하. 


p.s.

개인 블로그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왠지 눈치 보느라 글쓰기가 참 신경 쓰여 언젠가부터 글을 쓰기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브런치를 알게 돼서 너무나 기쁩니다.

잠시나마 글을 쓰는 일도 해왔지만 여전히 글 쓰는 것이 부끄러워 쉽게 발행 버튼을 못 누르는 소심한 전직 날라리 기자, 현재는 백수 주부, 가끔 프리랜서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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