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싶어
검은 바다와의 대화
처음 강릉에서 만난 바다는 검은색이었다. 검은 바다와 검은 하늘이 만나서 마치 경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밤에 만난 검은 겨울바다는 무서웠다. 그리고 추웠다.
검은 바다를 보고 있으니 그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고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이내 머릿속이 다양한 물음표로 채워졌다.
어떻게 하면 나답게 조직을 이끌 수 있을까? (리더십에 대한 고민)
나는 누군가에게 신뢰를 주는 사람일까? (신뢰에 대한 고민)
지금 자책하는 마음은 나에게 도움이 될까? (자존감에 대한 고민)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선순위에 대한 고민)
난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싶어
“넌 정답을 알아?
아무나 정답을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바다를 향해 괜히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바다로부터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 질문으로부터 생각이 이어졌다.
우선 회사를 운영하면, 나쁜 사람이 되기가 쉽다고 생각했다. 경영자는 (다른 게 아니라) 일을 못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의사결정 하나에 누군가의 생계가 달린 것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소중한 삶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면 안 되니까. 조직에서 느끼는 어려움은 리더인 대표의 책임이기도 하니까. 이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들고 계속 사과해야 한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일로부터 얻는 달콤함이 있지만 일로부터 얻는 괴로움도 있었다. 흔히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라는 속담이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지만 지금 마음이 괴로우니, 그냥 모든 걸 뱉어내고 싶었다.
나는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 앞에서 있으니 이런 나의 고민들은 아주 작은 것에 불과했다.
불안한 마음 다스리기
숙소에 도착한 나는 깨끗하게 씻고 책상에 맥주 한 캔, 노트와 펜을 준비했다. 그리고 글을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봤다.
먼저, 나는 지금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봤다. 이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생각한 것보다 최악이 최악은 아닐 수 있겠단 생각과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따라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자,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나답게 행동하자 등 한참을 앉아 긴 일기를 썼다.)
나는 '만약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나는 어떻게 상담을 진행했을까?'를 기준으로 하나씩 문제와 직면했다.
이 글을 쓰며 바라본 창밖은 온통 검정이었다. 마치 우주 속에 있는 것처럼.
파란 바다와의 대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존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붉은 해와 드넓은 파란 바다를 보며, 나는 <니부어의 평온을 비는 기도>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둘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세요.’
이제는 외워버린 그 시를 나는 5번 정도 읊조렸다. 앞으로 모든 순간에 이 문장이 함께하길 바라며, 반복하여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