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조선의 14대 왕이다. 14세에 즉위해서 55세에 졸해서 41년간 임금의 자리에 있었다. 선조가 세운 ‘최초’의 기록은 아주 많다.
1) 조선 최초의 후궁 출신 어머니를 둔 왕. (중종의 후궁 창빈 안 씨, 大君이 아닌 최초의 君 출신의 왕)
2) 조선 최초의 대원군 배출, 아버지가 조선 최초의 대원군이 된 망나니 덕흥군.
3) 조선 최초로 전 국토 유린당한 임진왜란 발발.
4) 조선 최초의 몽진(압록강 변 의주).
5) 조선 최초로 당파 싸움 일으킴.
죄상
1) 임진왜란 7년, 백성의 2/3를 잃고, 국토의 3/4을 황폐하게 함, 몽고의 침략 때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았음.
2) 왜란 때 백성을 팽개치고 의주로 도망, 명나라에 목숨을 구걸함.
3) 전란 후에는 목숨 걸고 싸운 위인들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함께 도망간 아첨꾼 같은 인사들을 이른바‘호종공신’이라 칭하며 더 우대함.
4) 전쟁 영웅을 시기 질투하여 죽거나, 숨거나, 다치게 해서 이후 벌어진 정묘, 병자호란 때, 의병이 일어나지 않게 함. (고경명은 죽임을 당하고, 곽재우는 숨고, 이순신은 자살설에 휩싸이는 데, 누가 의병을 일으키랴.)
5)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기축옥사’를 일으킴. 정여립 등 억울한 죽음, 이건 살육이라는 표현마저도 부족하다. (1589년에서 1592년까지 약 3년간 1000여 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왕이 서인의 편을 들어서 동인을 학살한 무자비한 살육이었다.)
6) 당쟁, 당파 싸움을 시작함, 그 원인과 이유를 보면 치사, 졸렬한 내용인데 왕이라는 인사가 말리기는커녕, 부추기고 이용했음, 결국 조선이 망한 단초를 제공함.
7) 다음 왕을 도와주기는커녕, 위기에 빠뜨리고 어렵게 해서 제대로 왕 노릇을 못하게 함. 그나마 55세에 죽어서 그 정도이지 더 살았다면 더 큰 일이 났을 것. 광해군이 폐주가 된 근본 원인 제공.
결론
이 정도 혼군이라면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정권이 바뀌어야 했는데 기이하게도 선조는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조선을 크게 둘로 나누면 임진왜란 전과 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정도 실정이라면 당연히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순리다. 이런 실정 속에서도 왕조를 유지한 경우는 중국사나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다. 500년 조선왕조는 결코 자랑이 아니다. 조선은 300년이었어야 했다.
조선이 없어지고 다른 왕조가 들어섰더라면 나중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나라를 뺏기는 수모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당시 백성들이 권력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 점은 매우 안타깝다. 물론 민주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시는 이런 권력자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민주 사회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민이 선조 같이 우둔하고 이기적이라면 이런 일이 또다시 안 일어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선조의 리더십 실패는 단순히 한 시대의 문제가 아니며, 현대에도 잘못된 리더십이 어떻게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경고이기도 하다.
400년이 지난 후에도 미운 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