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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민 Aug 20. 2024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금정연 일기

그의 일기는 어떻게 책이 되었나?
그것이 궁금했다기보다 나는 좀 웃고 싶었다.
금정연이 하는 말에.
요 며칠 묵직한 글들로 읽는 근육이 많이 뭉쳐 잠시 내려놓고,
스트레칭하듯 그의 책을 펼쳤다.

일기 쓰기와 일기 이야기.
유명한 서평가답게 또 온통 책이야기다.
이래서 그를 믿는다.
무겁지 않으면서 웃음 나는 진지함이랄까?

다른 작가들의 일기와 그의 일기가 교차한다.
남의 일기에 딱히 관심 없지만 작가가 쓴 일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역시 금정연이고 과연 유머러스하다.
쿡쿡 웃음이 삐져 나오고 만다.
바늘에 실 가듯 서로의 책에 서로 등장하는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의
작가 정지돈이 눈에 들오고.

반가운 이름들 마르그리트 뒤라스, 수전 손택, 실비아 플라스와 버지니아 울프,
아니 에르노, 미셸 투르니에 발터 벤야민 등
일기 쓰기에 있어 기라성 같은 대가가 대거 출동한다.
그들 역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나를 위로,
카프카 당신 마저.
순수히 가볍게 웃으려고 그의 책을 펼쳤는데 나는 다시 진지해진다.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일기>는 블로그 서평한 책으로 반갑게 와닿는다.
웃기게 심각한 금정연 서평가.
작가들의 일기를 인용한 글쓰기라니,
역시 내공 깊은 독서 이력 인정한다.

산책하다 얼어 죽은 발터 벤야민의 일기는 익히 아는 바,
엄마 잃은 롤랑 바르트의 일기하며
24세의 수전 손택의 일기는 젊은이답다.
잠깐 소개하자면
<1, 자세를 곧게 하라.
2, 일주일에 세 번 엄마에게 편지하라.
3, 더 적게 먹어라.
4, 적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글을 써라.
5, 브랜다이스나 돈 문제로 공공연히 불평하지 마라.
6, 데이비드에게 읽기를 가르쳐라.>
나이 들수록 점점 자신에 대해 엄격해짐이 일기를 통해 나타난다.
<자존감의 위기. 무엇이 나에게 강한 느낌을 주나?
사랑과 일에 빠져 있기. 일을 해야만 한다.
자기 연민과 자기 경멸에 시들어 가고 있다.>

문득 나의 일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크게 다를 것 없던 서사들.
그러나 새삼 알게 된다.
읽고 쓰는 가운데 지극히 사적인 그들의 생활은
기록의 힘 실천의 힘이라는 걸.
내겐 실행이 빠졌다.

그럼에도 울프는 절망의 순간에 이렇게 쓴다.
<이 절망의 골짜기가 나를 집어삼키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고독은 거대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 옛날의 박력이다.>
그 박력을 어디 두고 강물로 걸어 들어갔을까?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일기 '안네의 일기'는 일기장을 선물로 받으며 시작한다.
<앞으로 너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 누구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해.
너를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단다.>

사춘기 때 나는 안네에 영향받아 모든 사물에 의인화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연필아, 노트야, 책가방아 너는 하는 식으로 당시 내 일기장 이름은 캔디.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겠다는 그 들장미 소녀 캔디 말이다.
안네 일기장의 이름은 키티로 기억한다.
아마 안네 프랑크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면 그녀의 소망대로
그녀가 생각해 놓은 제목의 책을 펴내고야 말았을 거다.
사후 출판된 일기를 통해 그녀의 꿈이기도 했던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으나
정작 본인은 모르는 일이다.

일기라는 것
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읽고 쓰는 사람답게 제목과 내용이 딱 부합한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게 하려고
나로 하여금 뭐라도 쓰게 하셨습니다.
금정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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