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울적한 날은 집에 가 글이 쓰고 싶어진다. 집으로 오는 길 나는 아름다운 것만 보려 한다. 가을 단풍, 파란 하늘 흰 구름, 작은 카페 총총 움직이는 주인장 뒷모습, 막대 사탕 입에 문 아이, 길 고양이의 우아한 등줄기. 걷는 동안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집 현관 문을 열고 들어와 비로소 안도하며, 손을 씻고 소란스럽게 커피 콩을 갈고 내가 가진 가장 큰 잔에 뜨거운 커피를 내린다. 친구 같은 우울이 찾아오지만 높은 텐션으로 주위를 정신없게 만드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중 동생과 두세 시간 예사로 전화 통화하는 날도 있다. 굶는 나, 폭식하는 나, 말랑한 나, 딱딱한 나, 움직이지 않는 나, 운동 안 가는 나, 음악만 듣는 나, 베란다 너머 음소거된 세상을 보는 나, 무언가 작정하는 나. 그러다 아무 카페 들어가 멍하니 앉는 나. 이런 나도 자주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하다. 제목에 혹했다. 골목 같은 도서관 서가 사이사이 헤매다 도서 반납대에서 집어 든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2012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백은선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과연 나만큼 싫고 좋고 이상할 것인가? 무엇이 어떻게 얼마큼 왜? 읽다 보면 제목처럼 싫고 좋고 양가적 감정이라기 보다 너무 솔직한 자기 고백이자 쓰기에 관한 글이다. "만약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털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 버릴 것이다"라고 한 미국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여러 이야기를 쓴다. 힘들고 아픈 기억에 대한 진지함은 애써 떨군 각각의 글쓰기로. 블랙 코미디에 무거운 유머 느낌이 들지만 '용기 있는 산문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다. 간단치 않은 주제와 소재의 글을 술술 읽는 게 미안할 정도다. 혼자 아이 키우며 가사 노동과 일을 하고 시를 쓰고 가르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중 시인으로서 그 안(문단과 심지어 작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혹은 마주하는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살아온 과정 마저 녹록지 않다. 어린 시절 가정(아버지)과 학교(담임선생으)로 부터 무자비한 폭력의 세계를 겪었다. 이후엔 아버지의 폭언이 어린 손자에게 날아온다. 아버지를 '그 인간'으로 표현할 만큼 악감정인데 가족관계가 유지되다니. 적나라한 불편함이다. 요즘은 한 자녀 가정도 많아졌고 조손 가정도 있다. 유치원에서 엄마 아빠 그림 그리기라든가 가족사진을 가져오라는 것이 그렇지 못한 환경의 아동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거침없고 신랄한 비판에 이의 없다. 나는 우연히 이 시인을 알게 됐으며 시보다 산문을 먼저 읽었지만 세상 앞에 당당히 맞서는 시인의 시가 궁금해진다. 그녀의 꿈은 비장한 듯 유연하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자신을 맞추지 않을 것이며 혹여 사랑하는 사람이 실망한다 해도 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여러 상황 앞에 달라지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나, 온전히 자신을 받아들이며 자유롭게 살겠다고. 말과 시, 삶, 여성 네 개의 키워드로 구성되었으며 쓰는 사람은 어려웠을 텐데 읽는 사람은 불편할지언정 술술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