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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들 Jan 08. 2024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땅에서의 삶 : 금본위제는 현대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체제이다.

1. 금본위제와 관리통화제도


현재 우리는 고금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반드시 하나의 주장이 고개를 드는데, 바로 금본위제로의 복귀입니다. 금본위제란 무엇인가요? 금본위제와 반대되는 제도가 관리통화제도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바로 관리통화제도입니다. 관리통화제도를 알면 금본위제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관리통화제도를 이해하는 건 매우 쉽습니다. 관리통화제도는 한마디로 화폐량을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화폐량을 중앙은행이 ‘관리’하는 것이죠. 코로나 시기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중앙은행은 셀 수 없이 많은 화폐를 새롭게 발행했습니다. 그럼 왜 경제가 어려울 때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량을 늘릴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단지 여기서는 이렇게 알고 있도록 하죠. 화폐 발행량이 늘어나면 통화량 및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의 양 – 화폐와 통화는 다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 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많아지면 통화량은 저절로 증가합니다. 한마디로 시중에 자금이 많아지는 것이죠. 시중에 자금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그 자금의 일부는 소비에, 일부는 은행 예금에, 일부는 채권 시장에, 그리고 나머지는 주식과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시장에 투자합니다.


사진: Unsplash의 Patrick Weissenberger


시중에 자금이 없을 때를 생각해 볼까요? 기업들은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고 싶은데 시중에 자금이 없으니 돈을 빌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게 기업들은 자금을 빌리기 위해 높은 이자를 제시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시중에 자금이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돈을 빌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 기업은 시중에 자금이 없을 때보다 훨씬 적은 이자를 제시하고 돈을 빌릴 수 있게 됩니다. 즉,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량을 늘리면 시중에 자금이 많아지고 시장금리가 낮아져서 기업들이 돈을 빌려 경영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기업이 경영활동을 활발하게 하면 뭐가 좋을까요? 한마디로 GDP가 올라갑니다. 현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기업입니다. 기업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됩니다. 그 어떤 정부도 기업집단과 척질 수 없습니다. 기업집단이 가지고 있는 권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그런데 시중에 자금이 너무 많아지면 기업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경향을 보입니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 보니 삼성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고 현대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며 대우도 자동차 사업을 시작합니다. 주류를 팔던 진로는 어떨까요? 진로는 백화점 사업도 하고 제약 사업도 하고 건설 사업도 하고 금융 사업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돈을 쉽게 빌릴 수 있으면 사람이든 기업이든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경향이 있고 이렇게 경제에 ‘버블’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 ‘버블’이 터졌을 때 우리는 경제위기가 발생했다고 말합니다.


사진: Unsplash의 Giorgio Trovato


금본위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때 나타납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봐라.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인가? 결국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 아닌가? 따라서 건전한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자기 마음대로 화폐를 발행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중앙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의 양에 따라서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 즉, 중앙은행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금의 양 이상의 화폐를 발행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금 1온스에 1달러라고 하고 중앙은행이 100온스의 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때 중앙은행은 최대 100달러의 화폐만 발행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관리통화제도와는 달리 중앙은행이 마음대로 화페 발행량을 조절할 수 없는 것이죠. 금본위제를 주장하는 사람은 화폐량을 이렇게 금에 묶어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과도한 화폐 발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 물가 상승이나 경제 버블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죠.


자, 이제 여기서 멈춥시다. 우리는 지금 경제학을 깊게 이해하려는 게 아닙니다. 단지 금본위제와 관리통화제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철학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 금본위제는 현대의 세계관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금본위제로 돌아가면 물가가 안정되고 경제 버블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은 경제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금본위제로 돌아가는 건 현대의 세계관과 맞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게 더 중요합니다. 인간은 천동설 아래에서도 잘 살았습니다. 천동설의 몰락은 세계관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금본위제 아래에서도 잘 살았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금본위제로의 복귀는 마치 현대에 르네상스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의 예술가가 르네상스 양식의 그림을 그릴 수 없듯이 현대의 경제체제는 금본위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금본위제의 주장을 명료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무언가를 명료하게 보는 것, 이것이 철학의 존재 이유입니다. 금본위제는 화폐 발행량이라는 ‘실존’이 금의 양이라는 ‘본질’에 묶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금본위제는 실재론적 세계관을 가진 경제 체제입니다. 이들은 적절한 화폐 발행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그 적절한 화폐 발행량은 곧 금의 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버블’이란 곧 금의 양 이상으로 화폐가 발행되는 걸 의미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적정 화폐량이라는 ‘실존’은 금의 양이라는 ‘본질’의 종속변수인 겁니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이후 – 현대의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입니다. 즉, 현대라는 시대가 시작했을 때입니다. – 선진국은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은 금본위제로 복귀했고 그렇게 경제가 망하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심지어 금본위제로 복귀했던 일본에서는 금본위제 복귀를 주도했던 이노우에 준노스케가 암살 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들이 금본위제로 복귀했던 이유는 경제학적인 게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금본위제로 다시 복귀했던 이유는 제가 앞서 말했던 ‘인식론적 문제’, 즉 화폐 발행량이라는 실존은 금의 양이라는 본질에 묶여야 한다는 세계관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지구가 완전한 원 운동을 한다는 세계관 – 실재론적 세계관입니다 – 에 사로잡혀 코페르니쿠스 이후 천문학이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한 것과 똑같습니다.


사진: Unsplash의 Adam Nir


계속 말하지만 현대는 실재론과 완전히 결별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세계관을 ‘실존주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현대는 본질에 대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적정 화폐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중앙은행은 국채금리를 비롯한 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적정 화폐량을 ‘요청’할 뿐입니다. 선험적으로 정해진 적정 화폐량이란 없습니다. 물가 상승률을 2%로 만드는 화폐량, 그것을 우리는 그냥 ‘적정 화폐량’이라고 이름 붙일 뿐입니다. 물론 여기서 적정 화폐량의 기준이 되는 물가 상승률은 2%가 아니라 3%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선험적으로 정해진 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버블이 무엇인지도 말할 수 없습니다. 버블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만약 진로가 주류 사업뿐만 아니라 현대그룹처럼 유통, 금융, 건설 사업까지 성공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진로의 투자는 버블이 아닙니다. 즉, 버블이란 투자 실패를 나타내는 ‘이름’이지 어느 정도의 투자가 버블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투자가 다 버블의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이 반도체 투자에 실패했다면 우리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도 버블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삼성의 반도체 투자를 버블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왜인가요? 그 투자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에서는 실존이 본질에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실존이 본질을 ‘요청’합니다. 금본위제에 따를 때 기업은 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없습니다. 화폐량이 제한되어 있는데 어떻게 투자를 하겠습니까? 이때 금본위제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 경제의 본질상 투자할 수 있는 정도가 딱 이 정도인 것이다. 이 이상 투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보아라. 경제의 본질인 ‘금의 양’이 딱 이 정도이지 않은가? 기업가들은 투자를 포기해라. 어차피 당신들이 하는 투자는 버블이다.”


 사진: Unsplash의 Ryan Born


이들이 이렇게 이미 ‘선험적’으로 투자의 양이 정해져 있다고 단정합니다. 플라톤주의자답죠? 그러나 현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버블인지 아닌지는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달린 겁니다. 나는 어떤 이유로 내 투자가 성공할 거라 생각하고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합니다. 그 투자가 성공하면 버블이 아니고 실패하면 버블이 되는 겁니다. 우리 그 누구도 어느 정도의 화폐량이 적정 화폐량인지 알 수 없고 한국은행도 모릅니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조차도 실시간으로 경제 지표를 관찰하여 그 경제 지표에 따라 금리를 조절하는 겁니다. 만약 적절한 금리 수준이라는 게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면 경제 지표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세계는 세계관의 반영입니다. 그리고 금본위제는 현대의 세계관과 맞지 않습니다. 실존은 본질에 묶일 수 없고 묶이지도 않습니다. 실존만이 있을 뿐입니다. 



3. 자유와 책임


실존만이 있다고 할 때 우리 삶은 상당히 위태롭습니다. 우리의 화폐경제를 보십시오. 조금만 잘못해도 은행이 파산하고 금융 위기가 찾아옵니다. 각 경제 주체들은 매 순간 경제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각 경제 지표를 따라가야 합니다. 발을 조금만 잘못 디뎌도 망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은행이 판단을 잘못 내려 잘못된 금리 정책을 내놓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한국은행이 판단을 잘못 내려 외환보유고를 잘못 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한국은행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라는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본질에 안착할 수 없습니다. 금의 양에 따라 화폐량이 조절된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복잡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서 경제는 자유를 잃습니다. 실존이 본질에 묶일 때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법이 허락하는 한 어떤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묶는 본질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의 모든 책임은 이제 우리의 것입니다. 나는 내 삶 전체를 책임져야 합니다. 이것이 실존주의고 현대의 세계관입니다.


누가 자유를 원한다고 했나요? 많은 이들이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싶어 하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현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브런치에는 없는, 경제 경영과 관련된 저의 더 많은 글들을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https://studiocroissant.com/economy-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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