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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Aug 02. 2020

무서운 이야기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

업무상 주로 해외에서 택배를 많이 받아서 확인하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역시 언제나처럼 배달된 상자들을 가득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주섬주섬 박스들을 열어 내용물들을 확인하고 또 전달하기도 하고, 특이한 일이라고는 1도 없이 그런 업무 선상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이후에 어떤 일이 눈 앞에 닥치게 될지를.


하나 둘 박스를 열어보고 있던 중 문득 어떤 박스를 칼로 열어보는데 평소와는 다른, 매우 섬뜩한 움직임이 눈에 포착되었다.

"스스슥~"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짧은 순간의 움직임, 시야에서 짧은 형채만을 남긴 채 사라진 그 무언가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고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100% 생명체다!'

온몸에 소름이 올라오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열었던 박스를 다시 그대로 닫고 잠시 멈춰 생각에 잠겼다.

'이걸 열어야 하나... 그대로 버려야 하나...'

후다닥 박스를 들고 복도로 나와 바닥에 내려놓고 생각했다. 분명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확인해서 전달하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걸 다시 열어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랴, 월급 받고 있는 회사에서 일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 일단 그대로 박스를 열어 바닥에 쏟아부었다.

'촤르르~' 소리를 내며 안에 내용물들은 바닥에 쏟아져 나왔다. 다행인지 아닌지 쏟아지는 내용물들 사이에서 움직이던 그 무언가는 모습을 함께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분명 짧은 순간에 본 것은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물건 더미 속에 어딘가 그것의 존재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 둘 조금씩 툭툭 건들며 바닥에 쌓인 물건들을 들어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설마 다시 나오려나... 잘못 봤나??? 분명히 봤는데...'

온갖 생각들로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렇게 조금씩 바닥의 물건들이 줄어들고 있던 어느 순간

"샤샤샤샥~"

성인 엄지손가락 크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크기의 바퀴벌레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고 정신은 아득한 곳으로 날아가버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바퀴벌레라니... 그것도 크기가 5cm는 넘어 보이는데...'

식은땀이 등줄기에 흘러 내림과 동시에 머리는 쭈뼛쭈뼛 서는 듯한 느낌에 뭔가 잡아야 한다는 생각 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애당초에 그렇게 큰 바퀴벌레를 직접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그렇게 그냥 멍하게 집어 올리지 못하고 바닥에 남겨진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참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살아있는 생명체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나, 이렇게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이었는데.

살다 보면 스스로가 의도치 않았던 일들을 참 많이 겪게 된다. 의도치 않은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병을 얻을 수도 있고, 몇 년을 반복하던 일 가운데에서도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평소에 아무렇지 않았던 택배 박스를 열어보는 일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은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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