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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이정이 Dec 14. 2020

겨울 냄새가 났다

눈 내리던 날의 기억들

일요일 아침, 전날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던 이유로 게다가 주말을 핑계 삼아 느지막이 자리에서 눈을 떴다.


생각보다 어두운 느낌이지만 왠지 창밖이 마냥 어둡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미적대던 몸을 일으켜 발코니로 나가보니 바깥에는 많지 않지만 지붕 위에 쌓여있는 눈들을 볼 수 있었다. 첫눈이었다.


창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이 내린 탓인지 모르지만 겨울 냄새가 가득 났다. 후각은 많은 정보를 떠올리게 해 준다고 하더니 긴 호흡으로 들이마신 겨울 냄새 덕분이었을까, 눈 내리던 시절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90년대 어느 즈음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수능 시험 때만 되면 날씨가 추워지고 왜 수능 시험에는 이렇게 날씨가 추운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과거에 수능 시험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춥게 느껴졌다. 그 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고,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 이모에게 따뜻한 물이 담긴 보온 물병을 전해주기 위해 따라간 기억이 떠올랐다.


눈은 왜 그렇게 많이 왔을까, 따라 들어간 시험장은 나무 바닥에 춥고 습한 느낌이었고 당시 어린 시절에도 뭔가 굉장히 긴장된 느낌을 받았다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은 딱 여기까지만 남아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전후에 대한 기억은 정말 까마득히 잊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저녁부터 쏟아지던 눈은 시간이 갈수록 쌓여만 가고 발이 푹푹 들어갈 만큼 쌓이고 있던 어느 늦은 밤이었다. 단순히 밤이라 부르기엔 심야가 돼버린 시간,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던 걸까 외투를 둘러 매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 학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당시 학교까지는 도보로 2~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그냥 눈을 맞으며 그렇게 걸어갔다. 학교를 지나 학교 뒤편엔 큰 운동장이 있었는데 그 앞에 넓은 공터였을 것이다. 바닥에 한가득 쌓여 있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을 (물론 가로등 등불 덕분에 새하얗진 않았다...) 있는 힘껏 밟고 다녔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야 눈 오는데 춥고 미끄러운데 무슨 생각으로 걸어 다녔을까 싶지만 당시에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한참을 그렇게 여기저기 발자취를 남기고, 눈사람이라도 하나 만들어 놔야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실컷 걷고 돌아온 밤은 심야에 눈을 옴 몸으로 즐기고 왔다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90년대에 눈이 많이 왔던 건지, 아니면 어린 시절엔 눈이 오면 직접 만지고 느꼈던 탓인지 나이를 먹고 난 후에 눈에 대한 기억이 많진 않다. 하지만 겨울 냄새가 떠올리게 해 준 그 시절의 겨울이 있었고 이제 다가온 새로운 겨울 또한 언젠가 또 다른 형태로 기억되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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