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 매체의 부탁으로 원고를 써서 보낸 적이 있었어요. 애초에 적은 원고료였지만 부탁받은 일인지라 정성껏 글을 썼습니다. 원고료는 통장으로 보내준다고 하더군요. 믿었죠. 따로 확인도 하지 않았어요. 몇 달이나 지나 다른 은행 업무를 보다가 원고료가 지급되지 않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한두 번 문자를 남겼지만 답이 없더군요.
당시 저는 전화도 안 했고 더 이상의 문자도 보내지 않았어요. 그것으로 끝을 냈어요. 그 후에도 유사한 상황이 생길 것 같으면 제가 손해 보는 쪽을 택하고 더 이상의 미련을 두지 않는 것으로 마음 정리를 해왔습니다.
살다 보니 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때마다 깨달음이라는 별들을 가슴속에 하나 둘 심게 되는데요. '저를 하찮게 생각하는 누군가에게 저의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겠다!!!' 이런 결론을 내렸죠. 사람들은 저더러 답답하다, 바보 같다, 제 몫도 못 챙긴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조언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혼자 생각해요.
'대신 그 예의 없는 사람은 나를 잃게 됐잖아.' 제가 대단한 무엇이라서 한 말이 아닙니다. 믿어주었다면 그 믿음을 결코 배신하지 않았을 우직한 사람을 돈 몇 푼 때문에 잃게 된다면 그게 더 바보 같은 일 아닐까요?
저는 제가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지급되지 않은 원고료로 의뢰자의 인격을 알게 되었고요. 덕분에 그런 사람과 다시는 인연 맺지 않아도 되었고요. 저를 가치 있게 대해주는 다른 누군가를 찾아서 인연을 맺으며 제 진심을 다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얼마 전 읽었던 존 우든 감독의 '88연승의 비밀'에도 제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이 나와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롤모델로 알려진 존 우든 감독은 88연승과 승률 80.4%의 경이로운 기록을 가지고 있는 명실상부한 '세기의 감독'입니다. '감독들의 감독' '최고의 선수들이 극찬한 최고의 감독' 그 세기의 감독, 존 우든이 말하는 '좋은 사람 만나는 법'. 들어보실래요?
뜻밖의 호의. 누군가의 인격으로부터 우러나온 일.
존 우든 감독이 일을 막 시작했을 무렵 부수입을 벌기 위해 인디애나 주의 '카우츠키'라는 준프로 농구팀에서 주말마다 선수로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보수는 경기마다 50달러였어요. 존 우든 감독은 선수로서도 뛰어난 기량을 가졌던 분이라 당연히 경기에서 돋보였죠. 자유투를 잘해서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어느 날 연속으로 100개를 넣게 된 거예요.
100개째를 넣은 그 순간. 농구팀의 구단주가 심판에게 경기를 중단하라고 합니다. 그러더니 코트로 들어가서 자유투 100개 성공 기념으로 존 우든 감독에게 100달러짜리 새 지폐를 주겠다고 발표를 하죠. 존 우든 감독의 아내가 뛸 듯이 기뻐했답니다.
당시 존 우든 감독과 구단주인 카우츠키 씨 사이에 자유투 연속 성공 시 성공 보너스 지급과 같은 약속은 전혀 없었다고 해요.
존 우든 감독은 카우츠키 씨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건 순전히 그의 인격에서 우러나온 일이었다."
타인의 헌신을 존중하라. 그것이 바로 당신의 인격이다.
몇 년이 지난 후 존 우든 감독은 카우츠키 팀에서 나와 집 근처로 팀을 옮깁니다. 보수는 매 경기당 50달러로 같았지만 통행거리가 이전보다 짧아짐에 따라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새로 옮긴 팀에서 원정 경기를 치르던 날. 존 우든 감독은 엄청난 눈보라를 뚫고 목숨까지 걸며 간신히 경기장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몇 점 차로 뒤진 채 전반전이 끝나 있었어요. 후반전에 합류한 존 우든 감독의 활약으로 팀은 승리를 하게 됩니다. 구단주는 기뻐하며 존 우든 감독에게 보수를 지급해요. 그러나 전반전을 뛰지 못했다는 이유로 단돈 25불 만을 줍니다.
존 우든 감독은 나머지 절반인 25불과 다음날 마지막으로 남은 경기의 보수 50불을 지금 당장 지급하지 않으면 관두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구단주로부터 자신의 보수를 전부 받아내요.
마지막 경기를 우승한 후 존 우든 감독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요? 비록 거리가 멀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예전의 팀, 카우츠키 구단주가 있는 팀으로 돌아갑니다.
이유는 단 하나. 카우츠키 씨가 팀을 위해 바치는 존 우든 감독의 헌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존 우든 감독은 이때의 경험을 통해 인격이 리더십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좋은 사람을 보는 눈을 길러라.
존 우든 감독은 100세를 넉 달 남겨두고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세월 유능한 선수와 감독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인연을 맺고 헤어지는 과정을 거쳤을 겁니다. 인격과 실력 면에서 명장 중의 명장으로 통하는 존 우든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같은 가치관이나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었다. 불행히도 항상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방법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당신이 어떤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비슷한 원칙, 규범, 행동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온다.
<88연승의 비밀> 97쪽
존 우든 감독이 어리석은 구단주에게 '내 돈 빨리 돌려 달라고' 당당히 말했던 것과 같은 용기와 결단력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제 와서 그 옛날의 원고료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그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당당하게 말해서 제 보수를 받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인간관계를 매듭짓겠습니다.
제가 보여주는 정성을 가치 있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연연할 만큼 저는 어리거나 나약하지는 않아요. 그간 살아낸 세월이 있으니까요. 나머지 인생 후반전을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이유도 아직 만나지 못한 좋은 사람들을 새롭게 만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누구와도 인연 맺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가치관과 인격이 어떠한지 분명히 보여주는 일일 겁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좋은 방향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를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생을 함께 가꾸어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성장의 다른 이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