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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의 일기

나는 외톨이의 엄마다.

by 엄기언 Jan 30. 2025

"엄마, 나랑 놀아줘!"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

아이가 놀아주라는 그 말.


애를 하나 더 낳을 걸 그랬나 싶을 정도로 아이가 놀아달라는 말은 미친 돌덩어리를 맞은 것처럼 갑작스럽고 어이없고 짜증나는 말이다.

나는 내가 소중한 나니까.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고, 아이가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잘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다.

똥을 싸면 기저귀를 갈아주면 되었고 보채면 재워버리거나 젖을 물리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15살이라는 형벌같은 나이에 걸려버린 아이에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내몸뚱아리 하나뿐이다.


아이는 이제 학교에 잘 안간다.

기분이 좋고 용기가 나면 간다.

씨발노무 학교가 그래도 된단다.

우리때처럼 개근이 큰 포상인 그런 학교가 아니다.

아이는 13시간씩 쳐잔다.

아이가 자는 시간이 내게는 유일한 자유시간이 되어버린 현실, 신생아도 아니고.


친구가 없는 아이다.

친구가 없을 수 없는데 담임이 얘기하는 걸, 동급생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그럴만도 하다.

아이는 허세를 부릴줄도 알며, 아이들이 가볍게 거는 장난에 다큐로 받아들이며 부정적인 제스쳐를 취한다.

그러니 친구가 생길리가 없다.

사회성이 없는 아이로 자라버렸다.

왜냐하면 불안성이 극도인 나와 남편때문에.


나는 불안증과 우울증을 겪는 정신병을 안고 사는, 아이에게는 최악의 엄마이다.

미어캣처럼 아이가 다칠까봐, 아이가 이상한 애랑 어울릴까봐 늘 쳐다보고 감시하는 그런 엄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날 조차도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어 

"총알같이 다녀올께!"

라며 미친듯이 겉옷을 여미며 대충대충 재활용 분류를 하며 버리고 들어오면 아이는 

"정말 총알같이 갔다왔네!"

라고 했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봐 온갖 상상을 다하며 미친 재활용버리기를 하고 온 불안장애의 애미인 것일 뿐이다.


술을 먹기 시작했다.

술을 먹으면 정신이 노릇노릇해지며 세상이 긍정적이 된다.

다만 남들과 마시진 않는다.

나는 지극히 사회적이므로 남들에게 술먹고 눈과 혀가 풀린 상태를 들키기 싫어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가끔 그럴때가 있는데 그러면 잠시 동안 잠수를 타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마시는 게 커피가 아닌 달큰한 소주나 와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주된 변화이다.

나는 그렇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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