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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연 Feb 11. 2020

돈키호테를 찾아서 6

처음


태양의 광장에서 맛보는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이 

궁상맞기 그지없는 어떤 작가에게 가한 영향은 어떠한가?



외국의 호텔 조식에 대해 다들 아시지 않는가? 바게트, 크루아상 등 여러 종류의 빵이 있고 그것과 같이 먹을 햄과 치즈와 계란, 잼과 버터 조합. 시리얼과 샐러드 과일이 또 한쪽에 자리하고 마지막으로 커피와 차와 우유 주스 등이 음료로 제공된다. 이곳 레지던스 식당에는 이 같은 호텔 조식 기본형에 음식 쪽에서는 계란과 감자로 만든 스페인 식 오믈렛인 '또르띠아'가, 음료 쪽에는 두유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리고 빵에 발라먹는 갈은 토마토가 ‘이곳은 토마토 스프로 해장을 하며 토마토로 사람 머리를 맞추는 축제가 있는 스페인이고 그러니 너 역시 토마토로 발라주겠어’라고 외치듯 커다란 볼에 담겨 있었다.


조식 뷔페 차림이 어떠한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스페인에서의 매우 늦은 첫 끼를 정신없이 먹어댔다. 홀로 조식을 만찬 먹듯 먹어대다가 한숨 돌리고 식당을 돌아보니 어제 나를 마중 나온 대학생 그룹과 이곳을 호텔 삼아 1박하는 외지인들이 전부인 듯했다. 보통 컨퍼런스나 행사가 있을 때 과학자 그룹들이 와서 묵는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 시즌이 아닌 듯했다. 고로 나는 대학생 그룹 대여섯 명과 외지인 그룹 두세 명 사이에 마치 섬처럼 홀로 앉아 조식을 해결하는 중이었다. 허기가 준 용기가 아니었으면 이러한 혼밥이 꽤나 부담될 분위기였으나, 산초 판사의 식탐을 기억하며 꿋꿋이 열심히 먹고 마셨다. 오렌지 주스에 이어 복숭아 주스도 마셨다. 커피를 마신 뒤 캐모마일 차도 마셨다. 우유를 마신 뒤 두유도 따라 마셨다. 다행히 술은 없었다.


레지던스에서의 첫 식사, 소박한 아침상 같지만 이렇게 네 번 가져다 먹음.

 


조식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노트북 메일함을 열었다. 안토니오와 베르나르도. 두 사람은 각각 지난해와 지지난 해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로 토지문화관에서 3개월을 보낸 스페인 작가다. 토지문화관의 학예사님은 한국 작가와 스페인 작가 간의 아름다운 연대를 위해(혹은 내가 마드리드에서 외로울까봐) 이 두 사람의 이메일을 알려주었다. 둘 다 마드리드에 사니 연락을 하고 기회가 되면 만나보라는 제안에 나는 기꺼이 응했다. 물론 당시에는 마드리드에서 지내다 시간 나면 한번 연락해보지, 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받은 이메일 주소를 마치 퀴즈게임 1단계에서 성급하게 찬스를 쓰듯 지금 바로 쓸 줄은 몰랐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 연대도 좋고 현지 친구와의 만남도 좋다. 벌써부터 외로움이 엄습해오니 토지문화관의 추억이라도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런 내용의 메일을 적어 두 명의 스페인 작가에게 보냈다.


안녕. 나는 한국에서 온 소설가이자 시나리오작가 김호연이야. 나는 네가 지난 해 원주 토지문화관에 왔던 것처럼 교환작가로 이번에 마드리드 레지덴시아 데 에스튜디안테스에 오게 됐어. 이제 이틀 됐지만 마드리드 짱 좋다. 토지의 학예사님이 네 이메일을 알려주고 한번 교류해보라고 해서 이렇게 연락하네. 네가 괜찮다면 우리 마드리드 어디서든 만나 커피 한 잔 하며(술도 나는 좋아) 좋은 대화를 한 번 나눴으면 좋겠다. 어때? 빠른 답장 기다릴게. 안녕.


내심 쿨하게 써서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질척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무튼 둘 중 적어도 한명은 답을 주겠지. 토지문화관과 한국에서의 추억이 나쁘지 않았다면 말이야. 암. 한국에 3개월이나 가 있었다는 건 그만큼 진취적이고 글로벌한 작가이니 열려있는 마인드일거야. 우린 세계시민이고 작가동료가 아닌가. 그들의 연대의식이 무뎌져 있지 않길 바라며 나는 노트북을 접었다.    


배를 채우고 가상의 스페인 친구들에게 메일도 보내놓자 한층 기운이 났다. 마치 당장이라도 풍차와 맞짱을 뜰 수 있을 법한 의욕이 샘솟았다. 어제 이 동네는 섭렵했다(비록 식량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이제 한 발 넓혀 마드리드 시내로 간다. 가서 무엇을 하냐? 바로 돈키호테의 행적을 쫓아야 할 것이다. 돈키호테에 대해 쓰려면 돈키호테의 모든 것을 찾아 다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돈키호테를 창조한 세르반테스의 흔적도 섭렵할 것이다. 마치 다빈치 코드를 찾아 유럽 곳곳을 낯선 미녀와 함께 쏘다니는 로버트 랭던처럼, 나도 세르반테스 코드를 찾기 위해 ‘돈키호테스럽게’ 다녀야 할 것이다. 미녀도 없고 산초도 없고 로시난테도 없지만 내게는 안정된 거처(레시덴씨아 데 에스뚜디안떼스, 이 발음이 입에 익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와 삼시세끼 식사 지원 그리고 후방 지원(아내의 잔소리와 충고)이 있지 않은가. 그러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비로소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막연히 희망했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가야할 길이 발 앞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레지던스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그레고리오 마라뇽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구매하고 10 VIA(10회 이용권)를 충전하고 방향을 확인해 지하철에 올랐다. 마드리드의 지하철은 파리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었는데 적당히 칙칙하고 적당히 정감 있고 사람들은 다양하고 곳곳에서 악사들이 동전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고 있었다. 파리 지하철과 닮아서일까, 전혀 헛갈리지 않고 단숨에 정기권 구매부터 환승까지 무리 없이 통과 후 단숨에 마드리드의 중심, 솔 광장 역에 도달했다.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쏟아지는 솔 광장. 오른쪽엔 곰돌이 푸의 영업에 당해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보인다.



지하철 역을 나서자 ‘태양의 광장(=솔 광장, Puerta del SOL)’에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강렬한 햇살은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가뜩이나 직업병에 시달리는 안구에 타격이 올 듯했다.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솔 광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분수 앞 벤치에 무작정 앉았다. 수많은 관광객들, 곰돌이 푸와 조커 옷을 입은 퍼포먼서들, 지갑과 핸드폰을 노리는 집시들과 호객 행위에 힘쓰는 가게 점원들이 분주한 광장을 눈으로만 서성였다. 9월 초임에도 날씨는 덥다 못해 뜨거웠고 햇살은 한국보다 두 배는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습식 사우나가 아니라 건식 사우나란 점이다.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묘한 회한과 감회가 내 속에서 분수처럼 솟아나고 있었다.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로 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세계문학상은 이후로도 이 우수상 제도를 시행했다 중지했다 했는데, 아무튼 나는 처음으로 우수상 제도가 도입되던 해 다섯 명의 등단동기들과 함께 우수상을 받아 데뷔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세계문학상은 장편문학상 중 유일하게 1억 원의 상금을 제공하는 걸로 유명했다. 물론 우리 때도 대상은 1억이었다. 반면 새로 생긴 우수상 다섯 편에는 따로 상금이 없었다. 우수상 수상자에게는 ‘출간 기회 제공’이 주어진다고만 나와 있었고 나는 이것이 내 인생이라고 느꼈다. 혹자는 대상 수상을 못해 안타깝다고 여겼지만 사실은 우수상이라도 받아 소설가라는 직함을 얻는 행운을 누린 것이기도 했다. 전혀 놀라지 않았다. 늘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되거나 안 되거나 아예 안 되거나. 이게 내 모토와도 다름없는 시절이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도 소설을 쓸 때도 늘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망원동 브라더스>로 데뷔하고 나자 약간은 물꼬가 트였는지 이후로 좋은 작업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소설도 계속 낼 수 있었고 영화도 참여한 작품 두 편이 개봉하게 되었다.


태양의 광장에서 햇살로 샤워를 한다. 뜨거움이 넘쳐난다. 이곳 마드리드까지 온 것도 재수 끝에 온 것이다. 지난 해 지원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올해 초에 지난 해 선정된 김이정 작가님을 수소문해 인사드린 뒤 지원서를 어떻게 쓰면 더 좋겠냐고 질문 드렸고, 그렇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낸 지원서로 올해 초청 작가로 선정이 되었다. 재수 끝에 되었으면 운이 좋은 것이다. 무엇보다 스페인 문화부 측과 레지던시가 초청 작가로 나를 선정해 주었다는 점을 떠올릴 때마다 내 심장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마타도르가 투우의 정수리에 칼을 꽂듯이 그들이 돌진하는 나를 낙점한 듯했다. 내가 스페인을 원했듯이 그들도 나를 원했다. 그리고 스페인이 내게 준 선물들을 떠올려보았다.


다시 2013년 9회 세계문학상 시상식, 심사위원장인 이순원 선생님이 돈키호테에 대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돈키호테는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돈키호테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알고 있지 않냐고 하시면서, 소설의 위대한 점은 우리 주변에 진짜 있을 법한 캐릭터를 만들어 그가 오랜 시간동안 시대와 인간을 대변하며 영영 살아있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하셨다. 감동적이었다. 소설의 힘과 캐릭터의 힘, 그리고 그걸 써내야 하는 우리 데뷔 작가들에게 각오와 용기를 불러 넣어 주시는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 속 모델이 돈키호테였다. 이후로 나는 늘 돈키호테에 대해 생각했다. 두 번째 소설 <연적>의 앤디 강은 사실 돈키호테형 인간이 아닌가. 죽은 전 연인의 납골함을 훔치는 것부터 이후의 행적 모두 우격다짐에 대책이 없지만 그 행동과 진심이 바로 돈키호테적이다. 소설 뿐 아니라 나의 시나리오에도 돈키호테형 인간이 꽤나 등장한다. 프로듀서들은 많이 싫어했지만 나는 그들이 그렇게 구는 게 좋았다. 결국 나의 돈키호테들은 영화에서 컷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늘 소중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2015년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프랑스에서 열흘, 스페인에서 열흘 보냈다. 당시는 안달루시아 지방(세비아, 그라나다)과 바르셀로나에 집중했다. 마드리드는 패스. 왜? 그쪽은 조만간 다시 가야지, 했다. 마드리드, 톨레도, 세고비아, 알칼라 데 에나레스... 그리고 결국 4년이 지난 지금 부메랑이 궤도를 돌아 제 자리에 오듯 나는 이곳에 와 있다. 스페인의 중심 카스티야 지방, 카스티야 지방의 중심 마드리드, 마드리드의 중심 솔 광장. 이곳에서 소설가로서의 나와 스페인의 인연 그리고 돈키호테에 대해 자못 심각하게 생각한다.


늘 닥치는 대로 글을 써 이야기란 무기를 뽑아내고 그것을 이곳저곳에 찔러 결과를 내왔다. 전업 작가로 살아온 지도 내년이면 20년, 한없이 돈키호테스러웠던 나의 작가 이력도 1권을 마치고 2권에서 다시 스스로를 복기하고 파훼하며 나아가야 할 때였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라면 그 2권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집시 아재 하나가 다가와 “아구아, 아구아”하며 내게 물을 달란다. 나도 물이 마시고 싶다. 집시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만의 물을 찾아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까운 곳 어디라도 가서 나는 마시기로 한다. 나만의 뜨거운 물, 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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