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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나 sseona Jul 06. 2024

딱 이 정도의 온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적당한 온도는 무엇일까?

어느 칼럼을 읽다가 '사람사이의 온도'라는 글을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칼럼의 주 내용은 요즘엔 퇴근 후에도 친구들과 만남을 갖기보다는 나의 취향에 맞는

워크숍이나 모임, 동호회에 참석한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이유가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의 사람들과 딱 이 정도의 온도로 어울리고 싶어요


라는 말이었다. 사적인 내밀한 이야기들을 나누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선택적인 이야기와 취향을 공유하는 만남이라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기도 하고 좋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딱 이 정도의 온도 라는 건 어떤 걸 의미하는 걸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나는 내가 이만큼만 내보이고 싶고,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 같기도 했다.


'너무 정 없어 보이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잠깐 했을 때, 나도 어쩌면 꼰대가 되어버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고 보니 친한 친구들과 대면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게 꽤 오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이사에 둘째 돌에 가족행사들이 많았었고, 그 사이 친구들에게도 소소한 변화들이 많았다.

서로가 서로를 챙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 우리. 


그러기엔 챙겨야 할 어린 사람들과 주변가족들과 몸이 아팠거나 등등의 여러 자잘한 이유들로 다 얽혀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리라. 이런 생각 속에서도 괜히 씁쓸한 마음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순위에 들어가지 않은 쓸쓸함.

그런데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칼럼의 딱 이 정도의 온도라는 말이 어찌나 냉정해 보이던지. 


비슷한 말로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 시절에는 상황에 따라 친하게 지내다가도

그 시절이 지나면 사라지는 인연이라나 뭐라나.. 뭐 어찌 보면 낭만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 단어도

겪어보니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이쁜 시절인연이란 낭만적인 단어로 포장될

추억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정확하게 재단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딱 이 정도라는 말이 괜스레 서글펐다.


하지만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어쩌면 상처를 주었으리라. 차가운 온도를 내비치면서.


따뜻한 온도만을 바라는 이기적인 인간인건 나도 어쩔 수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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