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서 해결될 일이면 사람을 사서 울어라

울지 말고 글을 써라

by 하늘 예쁨
울어서 해결될 일이면 사람을 사서 울어라


아빠가 생전에 자주 쓰던 말 중 하나가 오늘 아침 강하게 떠올랐다. 어떠한 슬프거나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울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냉정한 T형 인간의 건조한 위로처럼 들리지 않았다. 울고 있는 내가 너무 안쓰러워 차오르는 F의 감성을 최대한 누르며 울지 말라고 다독이는 말이었다.

"울지 말거라. 딸아! 울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단다. 네가 울면 나도 마음이 아프단다." 아마 이 말이 아니었을까?

한 번은 직장에서 힘들다며 투정을 부렸더니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쉬운 일이면 즈그(자기) 딸 시키지. 내 딸 시켰겄냐?" 위로를 이렇게 하시는 분이었다.

번역기를 돌려보자면 "세상 일은 쉬운 게 없단다. 힘들지만 잘 버텨내 보자. 내 딸은 그래도 잘할 거야." 이 말을 낯간지러워 못하고 투박하게 하셨을 것이다.

아빠는 유머와 해학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 재능들을 고스란히 나에게 넘겨주셨다.

아빠의 투박한 위로가 듣고 싶은 아침이다. 보고 싶기도 하고. 아이씨. 눈물 나네.


오늘 아침 왜 이 말이 떠올랐을까? 울고 싶어서일까? 울지도 몰라서일까? 그냥 조금 불안해서였을 것이다.

병원 가는 날이다. 간밤에 내린 비로 조금은 맑아진 아침이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 시련이 있어야 단단해진다는 말. 정녕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비를 맞고 시련을 견디는 건 비 오는 날 우산을 접었다 펴는 것처럼 가벼운 일은 아니다.

유방암 4년 6개월 정기검진 중 일부 몇 가지 검사와 갑상선 수술을 위한 검사를 해야 한다. 두 개의 카테고리 검사다. 하나는 유방암 수술 이후 건강하게 잘 있는지를 추적하기 위한 검사고 하나는 갑상선 수술을 할 수 있는 몸 상태인지 검사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대 환장파티다. 나나 되니까 글도 쓰고 밥도 잘 먹고 잘 지내고 있는 거라 믿는다. '나나 되니까!' 자신감을 잃어가는 나를 끌어올리는 말이다. 거만도 오만도 아닌 그저 나를 위한 '파이팅!' 같은 말이다.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는 나를 향한 응원의 말을 아빠처럼 하는 것이다. '나나 되니까 이 정도야!' 역시 아빠와 화법이 닮았다.


병원 가는 날 아침은 불안이 찾아온다. 이 놈은 멀리 도망도 안 가는지 때 되면 기가 막히게 찾아온다. 늘 잔잔한 불안과 함께 살고 있지만 이벤트가 있는 날은 너울이 훨씬 큰 불안이 들이닥친다. 한때는 불안장애가 있는거 아닌가 싶어 병원을 가봐야 하나 고민도 했었다.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경험 앞에서 무너져 봤기 때문에 혹시 또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초조하고 불안하다. 어딘가 조금만 불편해도 건강염려증 센서가 작동돼서 걱정공장이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암 경험자들은 대체로 불안이 심한 편이다. 실제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도 많다. 정신과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지금도 병원은 충분하다.


아빠말대로 세상일은 쉽지 않고 울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불에 고개 파묻고 종일 바보처럼 울지는 않기로 했다.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검증도 안된 정보들을 검색하며 불안에 떨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쓴다. 무작정 쓴다.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글을 깨운다. 걱정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아무 말이나 일단 쓴다. 지금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욕도 하고 화도 내다가 울컥하면 잠시 울기도 한다. 마구잡이로 늘어놓은 문장과 단어들을 고치고 정렬하면서 마음도 가다듬어진다. 글을 쓰는 건 감정을 쏟는 일이면서도 그 삐뚤빼뚤함을 정리하며 이성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감정을 인정하면서 한 줄 한 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의 일렁임이 잔잔해진다. 마음이 요동치거나 불안할 땐 글쓰기에 기대어 힘을 내본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과 아빠의 말처럼 걱정과 울음으로 상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면 걱정과 울음은 덜어야 한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 담대하게 맞서면 어느새 해결이 될 것이다.




아침에 갑자기 아빠가 했던 말들이 선명하게 떠오른 건 어쩌면 아빠가 잠시 찾아왔던 건지도 모르겠다.

울지 말라고. 걱정 말라고.



이미지출처 : 네이버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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