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 문득 든 생각
"거짓말하면 안 돼. 거짓말하면 맴매할 거야. 경찰아저씨가 잡으러 온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수없이 들으면서 자랐다. 지금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데 '맴매가 웬 말이냐.' 하겠지만 그땐 그랬다. 사랑의 매가 허용되던 시절이었으니까.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진다는 비현실적인 동화로 아이들에게 겁을 줘가며 거짓말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쳤다. 정말 코가 길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차려 소용없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부모님께 가장 크게 혼난 기억도 거짓말을 했다가 들켰을 때였다. 나 또한 아이들을 크게 나무랐던 것도 거짓말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이 소소한 것이었을 텐데도 엄하게 훈육해야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지나치게 혼냈던 기억이 있다.
양심은 세모모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음 안에 뾰족한 세모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한 바퀴씩 돌아간다. 그 뾰족함이 마음을 찔러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벌게지는 것도 뾰족한 양심이 돌면서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결국 양심이 뭉툭해져 마음속에서 수십 바퀴를 돌아도 아프지 않게 된다.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물론 근거는 없는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럴싸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거짓말을 적당히 잘하는 것이 관계에 있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나친 솔직함은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 경계를 잘 유지하면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괜찮아요.", "좋습니다." 탐탁지 않아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상 알게 된다. 살다 보니, 때로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걸 예쁘게 포장해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부른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으로써의 거짓말은 눈감아주는 것이다. 선의라는 것을 누가 증명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기는 한다.
거짓말이 없는 세상, 정말 천국일까? 모두가 진실만을 말하는 세상, 행복할까? 믿었던 인간관계는 틀어지고 서로를 미워하며 수도 없이 실망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렸을 때 분명히 거짓말하지 말라고 배웠는데 우리가 나름 평화롭게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는 건 적당히 거짓말을 하며 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상대의 눈에 들기 위해,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거짓말을 한다. 남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인 척하며 본인을 위한 거짓도 서슴지 않는다.
법에 저촉이 되면 사기가 되는 것이고 그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저냥 서로 암묵적으로 용인하며 살아간다.
"솔직히 말해. 솔직히 말하면 다 용서해 줄게."
거짓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용서할 수 없다. 끝까지 거짓말을 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불륜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대사 같지만 일반적인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거짓말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났어."
기적처럼 믿기지 않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 같다고.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끔찍한 상황이 펼쳐졌을 때 이렇게 믿고 싶어 한다. 거짓말일 거라고.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인간은 수용의 단계로 가기 전 일단 부정의 단계부터 시작한다. '아니야, 아니야, 거짓말일 거야.' 아이러니하게도 거짓말이길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 '뻥이야!. 지금까지 거짓말이었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건들도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고스란히 현실이 되었지만 난 거짓말이기를 기다리고 있던 셈이다.
살면서 몇 번의 거짓말을 듣고 또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거짓말은 이랬으면 좋겠다.
평온을 위한 하얀 거짓말까지만 하기를.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거짓말이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할 일이 없기를.
거짓말 같은 기적이 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