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면서 안 기쁜 날

유방암센터 그리고 갑상선암센터

by 하늘 예쁨

오늘은 바쁘고 중요한 날이다. 일명 D-day! 유방암 4년 6개월 정기검진과 갑상선 수술을 위한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비가 내린다. 가는 길마다 연분홍 벚꽃과 샛노란 개나리가 절정이다. 요즘 내가 꽂혀있는 '로이킴'의 노래까지 더하니 기가 막힌 드라이브 길이 연출되었다. 그 기가 막힌 길을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갑상선암 센터에 들러 수술 전 검사결과와 수술 관련 이야기를 듣고 유방암 센터에서 추적관찰 검사결과를 확인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해 제일 먼저 기록지 출력하는 곳으로 간다. 곧 교수님을 만나 결과를 듣게 되겠지만 기록지를 떼서 먼저 읽어보고 들어간다. 교수님은 늘 바쁘고 큰 틀에서의 설명만 하기 때문에 세부적인 건 내가 준비해서 질문해야 한다. AI의 힘을 빌리면 판독이 어렵지는 않다. 출력물을 받아 들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심장이 터질 듯 요동을 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미리 공부한 덕분에 꼼꼼한 우등생 환자가 될 수 있다.


1. 갑상선암 센터

"CT상 특이사항은 없네요. 예정대로 수술하면 될 것 같아요." 수술한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특이사항 없다는 건 좋은 소식이었다. '수술 안 해도 되겠네요.'를 기대하고 들어간 건 아니었으니까. 특이사항이 없다는 말은 환자로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애모할 때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주치의 앞에서 난 늘 작아진다.

멍청한 질문들을 꽤나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으로 하고 있다.

"암일 확률이 몇 % 나 될까요?"

"여포암일 가능성은요?"

"유두암일 수도 있나요?"

"혈관침범으로 반대쪽 재수술을 하게 될 가능성은요?"

점집에 왔나. 무슨 가능성만 계속 물어보고 앉아있다. 교수님도 답답했을 테지만 그래도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친절한 설명의 결론은 '수술해 봐야 압니다.'였지만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다독여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면서 수술 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하여 한 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고지의무가 있으니 당연한 거라는 걸 알면서도 거기 쓰여있는 주의사항은 무서운 말 뿐이다. 그래도 덤덤했다.

이런저런 질문들을 할 때까지만 해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술동의서 받을게요. 이름 써주세요." 서명판에 정자로 또박또박 내 이름을 꾹꾹 눌러쓰면서 초롱초롱이 그렁그렁으로 바뀌었다. 이름 세 글자 쓰는 일이 이리 슬픈 일이었나.

처량했고 처연했다. 유방암 수술하고 그렇게 힘든 시간 버티며 지내왔는데, 이제 좀 살만해졌는데, 또 이렇게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다.

그래도 경력자라 그런지 많이 울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에서 보태진 이야기는 없었으니 다행이기도 했다. 입원약정서 받고 입원,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갑상선암센터 오늘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이제 유방암 센터로 갈 차례다.


2. 유방암센터

두 시간 지연이다. 늘 있는 일이라 이 정도쯤은 괜찮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많은 환자들을 보면서 투정은 가당치 않다. 병원을 갈 때마다 생각한다. '왜 이리 아픈 사람들은 많은 걸까?, 저 어르신은 혼자 어떻게 오신 걸까?, 좀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오늘 누군가는 진단을 받았겠구나.' 눈이 벌게져 암 통합 상담실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나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가 걸어온 길을 걷겠구나.'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생각도 많아지고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엿듣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주제넘게 부디 이들이 모두 잘 회복되기를 기도하기도 한다.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들은 내 이름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흩어진다. 진실의 방도 아닌데 진료실에 들어가는 건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교수님의 표정, 손짓, 미간의 움직임 등 모든 것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모니터를 이것저것 클릭하며 훑어보시고는 짧고 유쾌하게 얘기하신다.

"초음파, 엑스레이 괜찮고, 뼈스캔도 좋고, 시티상 이상 없고. 합격!"

가슴 졸이며 길고 복잡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결과는 간결하다. 합격했다. 4년 6개월 검사 무사히 통과했다.

야호!!! 평소 같으면 '야호'를 외치며 신나게 퇴장해야 할 텐데 교수님이 갑상선관련해서 묻는다. 같은 병원에서 수술하기 때문에 차트가 공유되는 것 같다.

"갑상선 OOO교수한테 보고 있는 거죠?"

"저, 다음 주에 수술해요."

"암이라고 나온 거예요?"

"진단적 수술..." 말끝을 흐리는데 교수님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금세 알아챈다.

"초음파상은 안 좋은데 조직검사가 비정형 나왔네요."

"유방암도 지금 예후 좋으니까 갑상선은 더 좋을 거예요."

"수술 잘 받고 파이팅 해요!" 의례적인 말이었을 수도 있고 정말 안타까웠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 파이팅 소리에 괜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교수님과 눈을 마주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꾸벅하고 방을 나왔다.

그래 파이팅 하자! 그리고 일단 오늘 파티를 하자! 유방암 정기검진 통과한 나를 축하해 주자!


1월 중순에 갑상선 암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듣고 몇 개월 동안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안 그런 척한다고는 했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유방암 정기검진만 다가와도 예민해져서 걱정을 짊어매고 사는데 이번엔 갑상선까지 신경을 쓰느라 걱정과 불안이 사방을 덮쳐 숨 막히는 시간을 보냈다. 호중구와 백혈구수치가 많이 떨어졌고 이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유방암 검진에 악영향을 줄까 봐 노심초사했다. 스트레스받지 말라했는데. 그게 모든 병의 주범이라는데, 스트레스는 내가 핸들링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난 통과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이번 시험에 합격통지를 받았다. 시험범위도 모르겠고 내가 뭘 어떻게 공부해야 잘 볼 수 있는 시험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답답한 시험이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잘했다. 수고했다.


기쁘면서 안 기쁜 날이다. 검진 통과는 풍악을 울리고 어깨춤을 출 일이지만 아직 갑상선 수술이 남아있고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또 맘 졸여야 하니까 조금 덜 기쁘다. 사실 안 기쁘다. 마음의 정리가 잘 안 되고 어수선하다. 에라 모르겠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오늘은 검진통과 기념으로 고기나 먹자. 그것도 한우 등심!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압(앞)으로!'라 했던가.

고기 앞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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