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 5일 병원으로 여행 갑니다

기념품은 못 사 옵니다

by 하늘 예쁨

1월부터 계획된 나의 패키지여행이 오늘 시작된다. 4년 전 유방투어를 다녀오고 이번엔 갑상선 투어다. 유방투어가 워낙 힘든 여정이었기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여행이었는데 오늘 또 떠난다. 갈까 말까를 내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기에 이왕 가게 된 거 조금이라도 덜 힘들기를 바랄 뿐이다. 같은 방을 쓰게 될 여행 동반자들은 어떤 사람일까? 서로 많은 교류를 하는 여행은 아니겠지만 이왕이면 밝은 사람이면 좋겠다. 이번 여행을 가이드할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 또한 전문적인 스킬로 순조롭게 이끌어주시길 기도해 본다. 병원여행은 가이드들의 표정과 말 한마디에 힘들어도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하고 여행 전체를 망치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좋은 분들을 만났으니 오늘도 기대해 본다.


잠을 많이 설친 것 빼고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아침이다. 따뜻한 봄날에 밝은 빛이 창으로 들어오는 평범한 날이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거나 목감기가 심할 경우 수술이 미뤄질 수 있다는 말에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컨디션이 좋다.


다른 여행과는 조금은 다른 단출한 짐을 싼다. 4박 5일 동안 집을 떠나 가장 맛있다는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올 건데 즐겁지가 않다. 남이 해준 밥 중에 가장 맛없는 밥이다. 심지어 수술한다고 한 끼는 굶기기도 하고 특식도 없는 여행이다. 즐겁기까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덤덤 정도만 해도 성공이다.

이틀 전 병원에서 심장내과 진료를 보고 입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심전도검사 결과가 정상은 아니라고. 또 한 번 덜컥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말고 체크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했다. 마취과에서 태클 걸면 수술이 미뤄질 수 있어서 정확하고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 설명했다. 내가 이 와중에 심장박동이 정상인게 더 이상할 일이긴 하다. 아무튼 이렇게 가슴이 철렁철렁하면서 사는 건 지양하고 싶다.


여권대신 입원약정서를, 예쁜 옷대신 가장 편한 옷을 입고 화장 따위도 필요 없다. 어차피 가자마자 그곳에서 입으라는 예쁘지 않은 단체복을 입어야 하니까 잠옷을 따로 챙길 필요도 없다. 짐은 이리도 가벼운데 마음은 어찌나 무거운지. 그 무거운 마음을 가족들이 손을 보태 함께 들어주고 있었다.


"엄마, 잘하고 오세요! 파이팅!"

아들이 큰 목소리로 나를 응원하며 꼭 안아준다. 성인이 되어도 여전히 애교 많은 우리 집 막내아들. 드라마 주인공처럼 부잣집 막내아들 시켜줘야 하는데, 아픈 집 막내아들이라니. 아니다. '잠깐' 아픈 집 막내아들. 잠깐이다. 남편도 나를 말없이 꼭 안아준다. 자칫 이상한 분위기가 감돌면 눈물이 쏟아질 수 있으니 장난을 쳐본다.

내 손을 꼭 잡아주는 아들에게 애써 밝게 파이팅을 외치고 힘을 내본다. 사실 힘이 없는 건 아니다. 조금 두렵고 떨리고 불안하고 걱정되고 뭐 그런, 약간 불편한 감정들이 잔잔하게 떠다니는 상태다. 고운 채고 싹 걷어내고 싶은 부유물 같은 것들이 둥둥 떠있긴 하지만 뭐 괜찮다. 괜찮지 않아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괜찮아야 한다.


보통의 여행은 돌아올 때보다 떠날 때가 즐겁다. 돌아오는 길은 잔뜩 밀린 빨래와 집안일이 생각나고 이것저것 해야 할 것들이 떠올라 '아~ 가기 싫다. 며칠 더 있고 싶다.'며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반대로 이번 여행은 떠날 때보다 돌아올 때가 훨씬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단 하루라도 빨리 집에 오고 싶고 일상이 간절해질 것이다. 여독을 푸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수술은 잘될 거니까. 그렇고 말고.


잘 마무리하고 정말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와 예쁜 옷 입고 할 수 있는 마음 가벼운 여행을 다시 계획하고 싶다. 평범한 일상, 제자리에서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돌아간다는 안도, 그런 것들이 주는 감사함을 느끼는 여정이 될 것이다. 살면서 떠나게 되는 이런저런 수많은 여행들, 뭐라도 얻어서 돌아오리라.


벚꽃이 진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벚꽃 지면 장미가 필테고 장미가 지면 국화가 필 것이고 무언가는 항상 피어날 것이니 서러워도 않는다. 다음엔 또 얼마나 예쁜 것이 피려나 생각하며 설레어보자.





내가 떠나는 이 짧은 여행이 혹여나 힘들지 않을지, 외롭지 않을지, 두렵지 않을지 염려하고 응원해 준 따뜻한 마음과 내밀어준 손에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기념품은 못 사 올 것 같습니다. 대신 씩씩하게 여행 잘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