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글) 수술 중입니다

좀 이따 만나요

by 하늘 예쁨

지금 아마 계획대로라면 수술실에 누워있을 거예요. 예약글은 한 번도 안 써봤는데 그런 기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도전해 봐요. 제가 수술받는 동안 누군가 혹시 기도를 해주거나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입원한 병실에서 글을 쓰고 있어요. 브런치를 하면서 여행 갈 때마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는데 병원까지 싸들고 왔지 뭐예요. 내일은 좀 피곤해서 글을 못쓸 것 같아서 미리 좀 적어놓으려고요. 대단한 작가님 납시셨지요?


오후에 수속하고 입원실로 올라왔어요. 유방암 수술할 때 왔었던 같은 층으로 왔네요. 그때 그날의 온도와 분위기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어 좀 그렇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죠. 트라우마는 피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래요. 맞서고 부딪혀서 극복하는 거래요. 낯선 곳보다 익숙한 게 나을 수도 있죠 뭐.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이것저것 호구조사 후 양쪽팔에 팔찌도 채워줬어요. 왼손에는 채혈, 혈압측정을 금한다는 arm save 표식을 채우고 오른손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는 환자식별 팔찌를 둘러줬어요.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이나 클럽팔찌 같은 거 있잖아요. 조금 쉬고 있는데 수술할 때 필요한 라인을 잡으려고 주삿바늘을 꽂으러 왔어요. 유방암 수술을 한 환자는 수술한 쪽 팔을 아껴야 해요. 림프부종 때문에 그쪽으로는 채혈이나 혈압을 재면 안되거든요. 병원에서는 한쪽팔만 쓸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그런 이유로 왼팔은 쓸 수 없고 오른쪽 팔에 링거를 꽂으면 수술 시 걸리적거려 안된대요. 그래서 오른쪽 종아리에 주삿바늘을 꽂았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아팠을 텐데 잘 참는다고 칭찬해 줬어요. 혈관을 한참 동안 힘들게 찾아서 종아리에 꽂아 놓고 보니 느낌이 이상했어요. 팔보다 아픈 것도 짜증 났지만 거기에 또 속상함 한 방울이 보태졌어요. 왼팔에 주사도 못 맞는 환자로 만들어놓고 또 이게 무슨 일이냐고 생각하니 맘이 아프더라고요. 근데 괜찮아요. 다시 생각해 보니 팔이 자유로워 글 쓰는 게 편해서 좋아요. 세상 모든 일이 다 나쁘지만은 않네요.


남편은 저녁 먹는 것까지 보고 집으로 갔어요. 아들도 챙겨야 하고 오늘 밤은 사실 딱히 할 게 없거든요. 게다가 전 지금 아주 쌩쌩하거든요. 긴장해서 밥맛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한 그릇 다 먹었어요. 병원밥을 이리 잘 먹을 일이냐고요. 다행히 이 수술은 금식이 좀 짧은 것 같아요. 밤 12시부터 금식이래요. 저녁 먹고 좋아하는 아이스라테도 야무지게 한잔 했어요. 어차피 오늘 밤은 잠이 안 오겠지만 그래도 디카페인으로 주문했어요.

남편은 혼자 있을 수 있냐고 50살인 나에게 자꾸 물어봐요. 둘이 긴장을 나누면서 같이 쩔쩔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남편이 위로한답시고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얘기에 주책없이 눈물이 나서 별로예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 있고 싶다고 강하게 얘기해서 집으로 보냈어요.

남편을 보내놓고 병실밖으로 나와 구름다리라 불리는 복도를 왔다 갔다 했어요. 유방암 수술하고 항암을 하게 된다는 걸 알고 이 복도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그날이 선명하게 생각나더라고요. 남편이 혼자 구름다리 가서 울고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갔거든요.

멍하니 어두워진 밖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울지 않았어요.

약속 지켰어요.


그나저나 저 촌스럽게 울면서 수술방 끌려간 건 아니겠죠? 남편과 눈을 맞추고 손을 한번 꽉 잡았을 거예요. 남편은 아마 '잘될 거야. 파이팅!'정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남편은 '수술 중입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테고 병실과 병원 어딘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기도하고 있겠죠?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잘 되고 있을 거예요. 전에도 생각했던 건데 병실에서부터 마취를 시켰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도 했었어요. 베드에 누워 덜컹거리며 끌려다니는 거 안 하고 싶거든요. 수술실 앞까지 걸어가도 되는데 왜 꼭 베드에 눕혀서 병원 복도 천장 형광등을 바라보게 하는 걸까요? 다 이유가 있겠죠. 저는 모르는 큰 뜻이 있겠죠. 수술실로 내려가는 동안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리며 뛰었을지 예상이 돼요. 귀 밝은 사람에게는 들렸을지도 몰라요.

전 그렇게 차가운 수술방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어요. 곧 끝날 거예요.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변수 없이 말이죠.


"상태 좋은데, 수술 간단하겠어."

"깔끔하게 잘 됐네. 수고했어, 다들." 의료진들 사이에서 오간 말들이 이랬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하루를 잘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사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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