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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홀 - 일본 골프

신혼부부 흉내내기

by 뭐 어때

두 번째 해외골프는 일본 이바라키현에 있는 마나골프골럽으로 정했다.

스물두 번째 결혼기념일이 다가오기도 했고 뭘 하면 특별하게 보낼까를 고민하다가 이견없이 골프 여행에 둘의 마음이 통했다. 암만 생각해도 놀 때 마음이 통하는 게 제일 신나는 일이다. 나이 들어감에 신혼 초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무언가 가성비 떨어지는 이벤트를 하는 것보다는 점점 실속을 차리는 결혼기념일을 보내는 것 같다. 나이를 먹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마 신랑도 고민을 덜해도 되는 이런 형태의 결혼기념일 행사가 훨씬 심적부담이 적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해 본 일본 골프의 장점은 이렇다. 장점은 크게 보고 단점은 작게 보려고 한다.

첫째, 비행시간이 짧아서 오랜 시간 비행기에 쭈그린 채 몸을 구겨 넣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 덕에 시차도 없으니 우리나라와 연락하는데 무리가 없어서 좋기도 하다.

두 번째, 골프장 관리가 잘되어 있으면서 상대적으로 그린피가 저렴하다. 점심 포함해서 우리나라 그린피의 절반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골프장 개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데 반해 골프 인구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질렀다는 기사가 난 것으로 봐서 수요가 적으니 자연스럽게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린피가 좀 내려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세 번째, 일본 골프장은 대부분 노캐디로 진행되어 편안한 라운드가 가능하다. 물론 캐디가 있어서 불편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사실 비용면에서 절감이 되는 부분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직접 카트를 운전하고 클럽도 스스로 챙겨야 하다 보니 처음에는 우왕좌왕 댈 수 있지만 익숙해지면 불편함 없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생각보다 금방 적응되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단, 가끔 그린 주변에 클럽을 놓고 오는 경우가 있어서 뒷팀이 챙겨 오거나 나인홀 끝나고 프런트에 얘기해서 찾아오기도 하니 그것만 주의하면 될 것 같다.


이번에는 치앙마이랑 다르게 골프텔 한 곳에 머물면서 매일 27홀씩 골프를 치고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하는 패키지 골프 여행으로 계획했다. 항공, 골프부킹, 숙소를 따로 선택해서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아서 편하게 선택한 방법이 골프 패키지였다.

고기, 회를 비롯하여 돈가스, 메밀등 다양한 음식이 나오는데 굳이 어느 나라 음식인지 밝히지 않아도 '나 일본음식이야!'라고 쓰여있는 것 같았다. 정갈하고 맛은 있었지만 양이 적은 게 흠이었다. 무엇이든 잘 먹고 모인 사람 보다 일 인분 정도는 더 시켜야 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적은 양이 아쉬웠다. 고등어구이라 하면 한 마리가 통으로 배가 갈린 채 누워있어야 하는데 손바닥 삼분의 일만 한 생선이 반찬으로 나오고 명란젓도 엄치 손톱만큼 준다. 물론 추가요금을 내고 더 시켜 먹긴 했지만 기본으로 제공된 1인분의 양이 적었다. 한국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늘 1인분은 1인분이 아니고 프리사이즈는 프리하지 않다. 아무튼 소식하는 일본인들에게 대식하는 우리 부부의 투덜거림이다.

이번 여행은 시골 골프텔에 들어가 내리 3박 4일을 있는 일정이라 외부에 나갔다 오기도 만만치 않았는데 들어오기 전 편의점을 들른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일본 편의점은 어설픈 식당보다 먹을 게 많은 곳이고 우리는 그곳을 한껏 이용해서 장을 봐온 덕에 매일밤 야식파티를 할 수 있었다.

여행 와서 찐 살은 며칠 지나면 빠지는 거 아닌가? 그렇게 속으면서도 아직까지 믿고 있다.




정갈 but 적음


도쿄 근처에 있는 마나 골프클럽은 새벽 4시 30분만 되면 해가 쨍하고 떠올라 밝은 기운이 창으로 들어오고 커다란 창문 앞에는 골프장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아침 새소리와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싸인 초록의 앞마당은 고즈넉한 산사의 느낌을 주어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느낌마저 들었다. 우리나라 골프장처럼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않아서 더 그런 느낌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초록색 앞마당


이번 골프여행의 콘셉트는 아무튼 결혼기념일이다. 난 작은 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어서 미리 현수막을 주문했다. 카트에 매달고 현수막 휘날리며 달려보리라 생각하고 준비한 나름의 아이디어였다. 남이 보거나 말거나 내 취지대로 진행했고 일부는 부러운 시선을 보내는 것도 같았다. '저 유난은 뭐지'하고 쳐다본걸 나 편한 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느꼈다.

"이걸 어떻게 달고 다녀"

신랑도 처음에는 어색해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니 테이프 붙일 때는 적극적으로 좌우대칭까지 잡아주며 좋아하는 듯 보였다. 같이 간 동반자들도 현수막을 들고 사진도 찍고 다음에 빌려달라는 렌트 예약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모두가 즐거워했으니 이만하면 결혼기념일 이벤트는 성공적이었다.


신혼이 뭐 별 건가. 결혼한 지 22년 밖에 안 되었으면 신혼이지 뭐.


웨딩카 못지 않은 기념일카트


우리의 신혼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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