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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홀 - 치앙마이 골프

깽짱러이!!!

by 뭐 어때

'너만 가냐!' '나도 간다!'

벼르고 별렀던 첫 해외골프를 드디어 간다. 가려고 어렵게 맘을 먹었을 즈음 코로나가 터졌고 또 그 이후에는 나에게 사건이 터졌고(내 글 '2021 크리스마스'를 읽으신 분은 큰 사건이 터진 걸 알고 계실 거라 설명은 넘기기로 한다.) 이래저래 무슨 계획만 잡으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도 모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억울하게 말이다. 그래서 그 이후 조금 바뀐 건 맘먹었을 때 바로 실행하는 것이다.


한동안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있었기 때문에 모이는 것도 어려웠던 시국에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해외골프를 못 나가다 보니 국내 골프장으로 사람들이 몰렸고 국내 골프장은 코로나 기간 동안 가지고 있던 채무를 모두 갚았다고 할 정도로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집합금지가 해제되고 코로나도 서서히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그간의 답답함을 보상받기라도 하는 듯 해외여행에 몰려들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었던 첫 해외골프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골프를 치기 전과 후의 여행은 확연하게 달라진 양상을 보인다. 골프를 치기 전의 여행은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패키지여행이거나 뭔가 주도적으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스스로 발권을 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유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여행의 중심에는 항상 유명한 관광지가 포함되어 있었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여행이었다. 골프를 접한 이후의 여행은 골프를 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시내중심보다는 한적한 시골마을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알려진 관광지보다 훨씬 여유롭고 한적하다.

골프 없는 여행은 이제 약간 밋밋한 여행처럼 느껴진달까? 연재의 제목처럼 난 골프에 진심이니까.

물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일 경우는 수영장 딸린 리조트나 아름다운 관광지를 찾기도 하지만 신랑과 둘이 가는 여행은 무조건 골프다. 둘 다 좋아하는 운동이 골프라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둘 중 한 명만 좋아했었더라면 싸우기도 엄청 싸웠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부부가 함께 지내다 보면 취미가 같다는 건 다른 어떤 궁합보다 중요한 것 같다.


첫 해외골프인만큼 어디로 갈지 여기저기 찾아보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기도 하면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태국 치앙마이로 결정했다. 태국은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방콕을 다녀온 이후로 이십 년이 넘어서 다시 가보는 나라다. 치앙마이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날씨였다. 1월의 치앙마이는 우리나라 초가을정도의 날씨로 아침저녁으로는 바람막이가 필요하고 점심은 반팔을 입는 정도의 골프 치기 최적의 날씨다. 은퇴한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힐 만큼 평온한 곳이라는 것도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3월 이후로는 더워서 매우 힘들 수 있으니 꼭 1~2월에 가보시길 추천한다.


치앙마이 공항 도착!!! 얼마 만에 다른 나라 공항인가!!!

짐 찾는 곳에서는 수많은 골프백이 갖가지 색깔의 항공커버를 입고 주인을 찾으며 돌아 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더운 공기와 섞인 동남아 특유의 향을 맡으니 해외골프여행 온 것이 실감 났다.

숙소로 가서 짧은 잠을 자고 일어나 낯선 환경의 첫 라운드를 준비한다. 보통 낯설다는 것은 두려움일 경우가 많다면, 골프장에서의 그것은 설렘에 더 가깝다. 나에게는 그렇다.

첫 경기는 낯선 환경만큼 스코어도 낯설었다. 핑계를 대자면 한국과 잔디가 많이 다르고 그린이 대체로 포대그린이라 정확한 어프러치가 안되면 짧거나 길면 뒤로 흘러내린다. 골프는 늘 그렇긴 하지만 특히 치앙마이골프장은 정확한 어프러치가 필요한 구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행히 조금씩 적응해 갔다.



한국과 치앙마이 골프의 가장 큰 차이는 캐디와 카트의 페어웨이 진입여부인 것 같다. 한국의 4인 1 캐디와는 다르게 나만을 전담하는 캐디가 있는 1인 1 캐디다. 파란 옷을 입은 자그마한 어린 여자친구가 나의 전담 캐디로 배정되었다.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우산을 씌워주고 그린 위 마크도 직접 해준다. 한국 골프에 익숙한 나는 그런 대접이 미안하고 어색해서 내가 하겠다고 몇 번을 말했다. 이것도 습관이 되니 3,4일째 되니까 자연스러워지긴 했다. 한국인들이 많이 와서인지 약간의 한국말을 어설픈 발음으로 애쓰며 하려고 하는 모습이 예뻐 보였다. 그린에서 라이를 봐주면서 '오른쪽 많이' '똑바로'등을 말해준다. 나의 샷에 큰 소리로 '깽짱러이!!!'를 외쳐준다. 굿샷! 최고! 의 의미를 가진 태국말이다. 지금도 태국말은 코쿤캅, 사와디캅 이외에 깽짱러이만 기억날 정도로 라운드 중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하늘의 구름과 큰 야자수와 초록의 잔디는 걱정을 모두 잊게 할 만큼 훌륭했고 음식도 너무나 맛있었다. 사실 난 대체로 잘 먹는 편이긴 하다.

또 우리나라와 크게 다른 점은 카트가 페어웨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점이다. 티샷을 하면 카트를 타고 내 공 앞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체력적인 부담을 절반 이하로 줄여주니 동남아골프는 무제한 골프나 매일 36홀 골프가 가능한 것 같다. 나는 필드에서 가능하면 걸어 다니려고 한다. 운동삼아 걷기도 하고 잔디를 밟는 느낌도 좋아서 많이 걸어 다니는데 이렇게 공 앞까지 실어다 주는 것도 체력안배 차원에서는 괜찮았다.


치앙마이의 좋은 점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물가가 아주 저렴하다. 시내중심에 있는 번화가가 아닌 곳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음식값이 저렴하고 그에 비해 맛은 훌륭하다. 가성비 측면에서는 최고가 아닌가 싶다. 물론 비싼 곳도 있지만 우리는 저렴한 로컬식당을 찾아다녔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 아니냐며. 아침 일찍 눈을 떠 동네를 산책하면서 탁발하는 스님들을 보고 시장으로 가서 아침샐러드를 사고 쌀국수 한 그릇을 포장마차 같이 생긴 곳에서 먹고 나와 예쁜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서두를 필요 없이 골프 칠 준비를 하고 골프장으로 가서 라운드를 하고 저녁에는 무조건 마사지샵으로 갔다. 큰 관광단지가 아닌 로컬마사지샵으로 다니니 한 시간에 우리나라돈 7000원이면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너무나 여유로운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쌀국수 먹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오후에 라운드 하고 저녁에 마사지받고 호텔에 돌아오면 침대시트가 가지런히 새로 정리되어 있고, 다시 생각하며 적다 보니 공주님이 따로 없다.

공주 하기에는 나이가 좀 걸리니 사모님으로 해야겠다.

놀 때는 시곗바늘이 3배속으로 도는 건지 5박 6일 일정이 벌써 지나가 사모님 놀이가 끝나간다.

'~ 집에 가기 싫다. 아니다. 애들 보러 가야지.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보니 인천공항이다. 춥다. 맡긴 외투를 찾아와 입으니 이제 집에 가서 빨래와 밥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현실이 있으니 여행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겠지만 그냥 늘 여행온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첫 해외골프로 다녀온 치앙마이는 한마디로 '깽짱러이!!!'

언젠간 정말 한 달쯤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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