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첫 번째 목표로 삼는 것이 소위말해 '깨백'이라는 것이다. 스코어 백개를 깨고 90대로 진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조차도 왜 이리 어려운 것인지, 도무지 세 자릿수 스코어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 '골프는 나랑 안 맞아. 때려치워야겠어.'라는 생각을 수없이 한다. 그러면서 혹시나 오늘은 될까? 혹시나 내일은? 하면서 또 라운드를 간다. 그렇게 라운드를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 두 자릿수 스코어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 물론 연습을 함께 하면서 다녀야 그 기간이 단축되기는 한다. 깨백에서 안정적인 보기플레이어가 되면 80대로의 진입을 꿈꾸고 최종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 싱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다. 물론 더 큰 목표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싱글을 해보는 것이 최종목표였다. 그리고 운 좋은 날 홀인원을 한번 하는 것도 아직 남아있는 목표 중에 하나이다. 18홀 모두를 파로 마무리하는 것을 이븐이라고 하고 그 이상은 오버파라 하는데 그 오버 숫자가 한 자릿수 일 경우를 싱글이라고 부르게 된다. 9 오버까지 싱글로 인정하는 곳도 있는데 보통 70대 타수를 기록해야 온전한 싱글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그걸 해보고 싶었다. 70대 진입!!!
아마추어가 싱글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쉬운 일이었다면 골퍼들이 싱글을 목표로 삼고 동반자들이 싱글패를 만들고 기념라운드까지 가는 수고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어려운 걸 해냈다는 축하의 의미를 담는 것이다.
언젠간 싱글!!!
골프에 빠져서 백개를 깨고 90대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80대 스코어로 진입하면서 욕심이 생겼다. '싱글 한번 해보자!' 하는 간절함을 담아 카카오톡 프로필 상태메시지에 '언젠간 싱글'이라고 써놓았다. 독서실 책상 앞에 포스트잇으로 목표 적어놓고 자주 보면 왠지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처럼 언젠간 꼭 싱글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카카오톡 프로필에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간과한 게 있었다. 골프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싱글은 더블 내지는 커플의 반대말 이외에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어느 날 친구와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데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어본다.
"신랑이랑 싸웠어?"
"엥? 갑자기 뭔 소리야?" 친구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아하다는 듯 답을 했다.
"카톡 프로필에 싱글 되고 싶다고 써놔서... 그냥 물어본 거야. 별일 아니면 됐고."
"아~미쳐 미쳐. 그게 말이야~" 그때부터 주절주절 골프에 대해서 설명해줘야 했다.
그 친구는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문외한이었다. 그런 친구 입장에서는 내가 떡하니 카톡 프로필에 언젠간 싱글이 되겠다고 써놨으니 걱정스러워서 물었던 모양이다.
그걸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아는 만큼 보이고 모든 것이 본인의 관심분야로 해석이 된다는 걸 친구의 말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골프에 관심 없는 이들이 보기에는 이혼을 꿈꾸며 싱글을 갈망하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간절하면 프로필을 저렇게 써놨을까' '신랑 보라고 쓴 건가?', '용기가 대단하군.'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난 그 당시 골프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결연한 의지와 바람으로 그렇게 써놨는데 그게 그렇게 해석되고 있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황당하고 웃음이 난다. 친한 친구니까 묻기라도 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뭐 그냥 이혼을 꿈꾸며 당당하게 프로필에 써놓는 조금은 특이한 여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염원한 싱글은 그냥 골프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인데 단단히 오해를 만들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라운드 간다는 설렘이 있었고 6월이어서 골프 치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완벽하니 샷만 좋으면 된다고. 그날이 그랬다. 드라이버는 평상시와 비슷한 거리와 궤적으로 날아다녔는데 아이언샷이 핀 근처에 너무 예쁘게 안착되는 것이다.
"그분이 오셨네, 잘하며 싱글 하겠는데" 친구들은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야야! 설레발치지 마, 다 조용히 해" 너스레를 떨기도 하면서 마음속으로 '진짜 이러다 싱글 하는 거 아냐'와 '설마 되겠어?'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중간에 더블을 한번 하고 '그럼 그렇지' 하며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그 이후 연속 파를 하면서 또다시 희망을 품고 마지막 홀에 들어섰다.
현재 7 오버. 79타를 하려면 이번 마지막 홀에 파를 해야 한다.
일단 세컨드샷이 그린에 올라는 갔는데 핀 하고 거리가 제법 있다. 넣기는 어려운 거리였기에 잘 붙여서 컨시드를 받아서 파를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힘조절에 실패했다. 꼭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들어가 홀컵을 지나쳐간다.
"오케이!"
동반자들은 싱글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처럼 오케이를 외쳤지만 누가 봐도 오케이 거리는 아니었다.
"아냐, 넣을 수 있어."
찝찝하게 싱글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자신 있게 일단 말은 했지만 심장이 두근두근거리고 실수할까 봐 걱정부터 되었다. 싱글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마지막 퍼트.
두둥!!! 홀컵으로 쏙!!!
"와~~~~!!! 나이스 파!!!"
싱글을 해버렸다. 동반자들도 같이 기뻐해주었고 얼떨떨했지만 기분 좋게 첫 싱글을 이루었다. 열심히 연습하고 자주 다니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었고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뿌듯했다.
아무튼 이혼은 하지 않았고 '언젠가 싱글'은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