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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홀 - 중국 골프

광저우 우이팜 골프클럽

by 뭐 어때

이번엔 중국이다. 일행도 8명이나 함께 출발한다. 둘이 가다 넷이 가고 결국 8명까지 모았다. 여행사도 아닌 내가 동네사람들로만 8명을 구성해서 중국으로 떠난다. 국내 골프도 8명이 시간을 맞춰 라운드 하기가 어려운데 해외 골프를 8명이 함께 가다니. 이쯤 되면 골프 여행사를 하나 차릴까도 생각해 봐야겠다.

세 번째 해외 골프로 정한 곳은 광저우에 있는 우이팜 골프클럽이다. 11월 중순 이후에 떠날 여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가장 날씨가 좋은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곳이다.

야외에서 5시간 정도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춥거나 더운 날은 경기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최적의 날씨에도 잘 안 맞는 게 골프라는 운동인데 날씨까지 좋지 않으면 18홀 내내 날씨 핑계를 대면서 투덜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가 추워지면 동남아시아로 골프여행을 많이 떠나지만 11월의 동남아시아는 우기인 경우가 많고 여전히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우기 때 쏟아진 비로 페어웨이도 많이 물러진 상태라 경기하기에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물론 날씨 좋은 때는 가격이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골프는 어쩔 수 없이 돈으로 날씨를 사야 한다. 싸고 좋은 것은 없다는 말이 딱 맞다.

광저우는 중국이지만 비행시간이 거의 4시간 가까이 소요될 만큼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 덕에 우리나라 11월에 가면 20도 전후의 쾌적한 기온과 쾌청한 날씨로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광저우는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경제적으로도 많이 발전되어 있는 곳이라 호텔도 매우 훌륭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특이점이라 하면 하이난을 제외한 중국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발급자체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지만 별도의 비용이 든다는 점(인당 3~5만 원)과 비자를 여권만큼 잘 보관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비자를 잃어버리면 좀 과장해서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받은 단체비자는 앞장에 붉은 도장과 함께 대표 한 명의 이름이 쓰여있고 뒷장에는 나머지 7명의 여권번호와 인적사항이 기재되어 있었다.

입국심사를 받을 때도 유치원 아이들처럼 그 순서대로 줄을 서서 들어가야 했다.


우이팜 골프장은 광저우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주변에 고층아파트와 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우리나라 도심에 있는 회원제 골프장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이질감이 없는 곳이었다. 또 하나의 장점을 얘기하자면 골프장이 잘 관리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음식이 훌륭하다는 점이다. 여행의 반은 날씨, 반은 음식이다. 골프여행이라 해서 다르지는 않다. 호텔의 석식뷔페에서 먹었던 양갈비와 회, 마지막 날 로컬 맛집의 딤섬은 다시 한번 광저우를 가고 싶게 만들 정도로 훌륭했다.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이제 마지막 라운드 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라운드를 마치고 골프장 로비 앉아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 위한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걱정 없이 좋았다.






"비자 챙기세요, 앞, 뒷장 모두 있는지 확인 꼭 하세요!"가이드가 큰 소리로 외친다.

"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비자를 담당해서 가지고 있던 친구에서 달라고 했다. 친구는 서류봉투째 나에게 넘겨주었고 아무 걱정이나 의심 없이 봉투 속 비자를 꺼냈다.

"어? 어? 뭐야? 붙었나? 왜 앞장밖에 없어?" 난 당황해서 빈 봉투를 흔들고 또다시 안을 몇 번이고 들여다봐도 한 장뿐이었다.

"어제 호텔 프런트에서 확인하고 받자마자 열어보지도 않고 금고에 넣어놨었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는 그저 비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난처한 상황이 되어 해명을 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때부터 모두 멍해졌다.

"비자 뒷장이 없어요." 가이드에게 다급하게 얘기했다.

"네? 다시 천천히 확인해 보세요. 없으면 오늘 한국에 못 가요. 최소한 2-3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못 갈 수도 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8명이 함께 와서 좋았는데 무언가 틀어지는 순간 우리 8명과 그 소속된 식구들까지 4*8=32명의 일상이 꼬이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더 넓게는 직장까지.

게다가 난 다른 사람보다 걱정이 하나 더 있었다. '약이 없는데 어쩌지?' 난 매일 먹어야 하는 약이 두 종류나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이렇게 생각해야 약 먹는 것이 억울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척해본다. 정기적으로 약을 드시는 분들 모두 특별한 분들이니 파이팅 하시라.) '약을 여행기간에 맞춰서 가져왔는데 만약 일주일을 억류된다면 어쩌지?' 다른 것들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약이 가장 걱정되었다. 며칠 안 먹는다고 큰일이야 나겠냐만은 그래도 루틴이 깨지는 게 두려웠다.

"핑계김에 며칠 더 놀지 뭐, 잘 되었네."우스갯소리로 긴장을 풀어주려는 아주 긍정적인 일행도 있었지만 우리 대부분은 긴장했고 머리를 맞대고 이 난관을 헤쳐나갈 궁리를 했다.

호텔에 들어갈 때 비자를 확인하고 열쇠를 줬으니 분명 그때까지는 있었다. 그럼 호텔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호텔에 연락을 해서 우리들이 묵었던 방을 샅샅이 뒤져봐 달라고 했다. 뒷장만 도난당했을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텔 CCTV 확인요청도 해놓고 호텔로 다시 돌아갔다.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다 비자 사진을 찍어놨던 게 생각이 났다. 앞장은 홀로그램이 있고 붉은 도장이 찍혀있었지만 뒷장은 일행들 인적사항만 적혀있는 흑백 종이였다. 그렇다면 내가 찍어놓은 뒷장 사진을 호텔 메일로 보내서 출력하면 될 것 같았다.

"Return~~~" 호텔로 메일을 몇 번 보냈는데 모두 반송되었다. 중국 보안상 내가 보낸 메일이 반송되는 것 같다고 설명해 줬는데 이해는 되지 않았다. 난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인데. 내가 이해가 되고 안 되고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타국에서는 그냥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다. 한국 휴대폰을 컴퓨터에 연결해서 출력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뭐 이리 안 되는 게 많아' 짜증이 났지만 우리가 을이고 그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고 어떻게든 이걸 출력해야 한다. 가이드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해서 가이드를 통해 출력을 시도하려고 했다. 이런! 가이드는 카톡을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 앱을 전 세계 사람들이 써야 하는 이유를 중국에서 찾았다.

나더러 위챗(중국의 카카오톡 같은 앱이다.)을 다운로드하라 해서 부랴부랴 깔았는데 인증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결국 실패했다. '아!!! 미치겠다. 진짜. 집에 가고 싶다!!!'

위기에 몰리면 머리가 아주 둔해지거나! 아주 영리해지거나!. 다행히 이번엔 후자였다. 갑자기 한국에 있는 여행사 직원이 생각났다. 중국을 자주 왔다 갔다 하니 위챗이 있을 것 같았고 확인해 보니 다행히 있었다.


내가 찍은 비자 뒷장 사진 -> 한국 여행사 직원에게 카톡으로 전송 -> 여행사 직원이 중국 가이드에게 위챗으로 전송 -> 중국 가이드가 다운로드한 사진을 중국호텔 메일로 전송 -> 호텔에서 출력


다이내믹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출력에 성공해서 앞장과 만나게 해 줬다.

"휴!!! 십년감수. 미칠 뻔했네. 다행이다 진짜."

"집에 못 가는 줄 알았어. 근데 뒷장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더 놀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네"

"비자 있는 나라는 이제 오지말자. 며칠 여행에 무슨 비자야."

사건이 해결되자 제각각 안도의 숨을 쉬며 한 마디씩 했다.

비자사건 덕분에 마지막 날 받기로 한 마사지가 취소되어 돈이 남았다고 좋아하면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한국 가서 고기나 실컷 먹자."

찍어놓은 사진이 있어서 다행이었고 빠르게 방법을 생각해 내서 비행기를 놓치지 않고 무사귀국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진짜 뒷장은 어디로 간 걸까? 호텔은 정말 CCTV를 돌려보긴 했을까?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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