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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홀 - 달랏 골프

영원한 봄의 도시

by 뭐 어때

의도를 하고 연재를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10화 - 그늘집'을 쓸 때 베트남 달랏에 있었다. 한국에서의 전반연재를 마치고 베트남에서 충전을 하고 온 느낌으로 후반 연재를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 기억이 흐릿해지기 전에 베트남 달랏골프에 대해 적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예고했던 목차와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베트남은 한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인 것 같다. 일단 음식이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고 가격도 저렴하면서 현지인들도 매우 친절하다. 다낭이나 나트랑에 비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급부상되어 여행객이 많이 늘어났다. 실제로 내가 도착한 달랏공항과 골프장에는 여기가 한국인가 할 만큼 한국인들이 많았다. 비행시간은 약 5시간 정도이며 현재기준 날씨는 최저기온 17~8도에서 최고기온 28도 전후로 일교차가 큰 편이지만 여행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다. 미세먼지도 없이 연일 맑은 하늘을 보여주니 골프 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하루만 지내보면 달랏을 왜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렀는지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작은 유럽 같은 달랏


4박 6일 여행으로 팰리스 CC, AT1200, 샴 CC 세 군데를 돌아가며 치고 4일 차에 팰리스를 하루 더 치는 일정이었다. 2인 1카트,1인 1캐디로 진행되며 카트 페어웨이 진입은 안 된다.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걷는 걸 좋아하니 상관없었다. 추운 겨울인 우리나라에서 봄의 나라로 갔으니 모든 골프장이 푸르고 좋았지만 세 군데 중에서는 샴 CC가 특히 아름답고 컨디션도 훌륭했다. 우리나라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 컨디션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 세 곳 골프장 모두 레드티가 너무 길어 투 온이 가능한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 조금 힘든 점이었다. 상대적으로 화이트티는 레드티와 차이가 별로 없어 남자들에게는 짧은 편이어서 한국 관광객 대부분은 블루티에서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블루티에서 친다고 했다가는 캐디들 표정이 어두워질 것이나 여기는 블랙티를 비롯해 다양한 티를 본인이 선택해서 치는데 제약이 없다.

벙커도 아주 많고 게다가 깊다. 벙커마다 모래의 질도 달라서 공략 방법을 다르게 해야 탈출이 가능했다. 첫날에는 무슨 모래요정이 붙은 것인지 치는 족족 벙커에 빠져서 벙커연습을 원 없이 했다. 이 말은 바꿔 말하면 스코어가 몹시 별로란 얘기다. 낯선 골프장, 한국과 다른 잔디, 긴 전장등 핑곗거리는 많았으니 괜찮다.

전장이 길다고 투덜대기만 할 것이 아니라 비거리를 늘려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생각한 대로 늘어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신랑과 나, 둘만 가게 되어 모르는 사람들과 조인해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우리와 함께 여행을 떠난 사람은 총 12명이었고 달랏공항에서 만나 어색하게 인사하고 대형버스에 올라타 숙소로 이동했다.

현지 가이드와 한국 가이드가 한 팀이 되어 우리 버스에 올랐다. 한국 가이드가 전반적인 골프 일정과 내일의 세부일정,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추가 금액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식사 업그레이드 비용과 캐디피 카트비등 부대비용에 대한 것이었다. 굳이 식사 업그레이드 비용을 왜 받는지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영업이라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우리가 한국에서 받은 인보이스와는 조금 다른 일정이었지만 첫날부터 팀원 전체를 불편하게 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은 돈을 지불하고 한국 여행사와 연락을 취해보자 생각했다.

아마도 국내 여행사와 현지 사이에 착오가 있었나 보다. 우리는 단체관광 없이 4일 동안 골프를 치겠다고 했는데 관광 일정이 포함되어 있었고 옵션도 제안을 하였다.

오전에 골프 치고 점심 식사 후 우리가 정한 곳으로 자유롭게 관광을 할 계획으로 왔는데 가이드를 따라서 마차를 타고 야시장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끌려다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는 걸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없는걸 하라길래 팩트체크를 하다 마음이 상해버렸다. 가이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하는 우리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추가 소득이 발생하지 않아서 속상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 숨겨지지 않는 표정이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불편함을 우리만 느낀 것이 아니어서 다른 여행자들도 하나둘씩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다. 첫날 버스에서의 어색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적이 같으면 동지가 되고 금방 친해진다 했던가.

우리는 다들 약간의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의 원래 계획대로 아무 옵션도 하지 않고 골프만 치는 일정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원안대로 진행한 것이니 문제없다고 생각하지만 가이드 입장에서는 진상 고객이었을 것이다.

물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얼굴 붉히거나 하는 일 없이 진행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건 안타깝다. 다시 계산해 보니 도착해서 걷었던 비용에서 과지불 되었던 것도 확인되어 100불을 돌려받았다. 100불이 생겨서 좋은 것보다는 말하지 않았으면 못 돌려받았을 것이고 항의해야 받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다.

가이드의 탓이라기보다는 현지 여행사와 국내 여행사의 전달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거라 믿고 싶다.




아무튼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오전에 골프를 치고 한국에서부터 찾아놨던 마사지샵에 가서 마사지를 받았다. 신랑은 오기 전부터 구글 지도로 마사지샵과 맛집 리스트를 찾아놓은 상태였다. 달랏마사지 중에 30분 동안 머리를 감겨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바디 마사지와 함께 추가해서 체험해 보기로 했다. 침대 같은 곳에 누워서 아주 편안하게 머리 지압부터 샴푸까지 해주는 약간은 생소한 마사지였다. 1시간 30분 동안 바디마사지와 머리 감기 포함에서 우리나라돈 25,000원이면 가능했으니 가격 역시 만족스러웠다. 그날부터 매일 머리를 다른 사람이 감겨주는 호사를 누렸다.

커다란 호숫가 옆 시내 중심에 숙소가 있어서 골프가 끝난 오후 시간에는 구글지도 보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쌀국수야 뭐 베트남에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음식이고 한국에서도 많이 먹어봤지만 라이스페이퍼에 빈대떡 같은 반세오를 올리고 야채와 함께 싸서 피시소스를 찍어먹는 음식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토바이 천국/ 싸 먹는 반세오(주인분이 먹는 방법 시범중)


재미를 찾는 과정 중 베트남에서 가장 무서운 건 역시 오토바이다. 도대체 왜 신호등을 안 만드는 건지.

가끔 아이들 하교 시간에만 잠시 운영되는 신호등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블록게임하는 것처럼 오토바이 사이사이로 피해 다녀야 한다는 것은 자꾸만 도로 위에서 내 몸을 긴장시켰다. '저 건너고 싶어요'라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오토바이를 바라보고 서있기만 하면 영원히 건너지 못하고 어두워질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아서 멈춰주지 않는다. 과감하게 건너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처음에는 도저히 저 수많은 오토바이를 어떻게 뚫고 건너나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요령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러니 베트남 현지인들은 이미 몸에 아주 익숙해져 불편함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수십대의 오토바이를 헤치고 들어간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의 라떼는 한국의 어느 카페라떼보다 맛있었다. 단지 호수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는 게 흠이긴 했다. 오래도록 지내다 보면 저 오토바이가 정겨운 풍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말 맛있었던 호숫가 앞 커피



즐겁게 노는 시간은 영락없이 빨리 지나간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달 정도 슬리퍼 끌고 다니며 살아보고 싶은 동네로 점찍고 아쉬움을 달래며 여행가방을 정리했다.


이제 내 머리는 내가 감아야 한다. 신랑한테 감겨달라고 해볼까 잠깐 생각했다가 정신 차리고 한국 아줌마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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