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무안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라남도 어딘가 저쪽 끝자락에 있는 조용한 도시다. 낙지와 양파의 도시쯤으로 알려져 있는 도시 무안. 이십 년도 더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무안으로 내려가던 버스에서 바라보던 그 풍경과 지금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 커다란 발전 없이 여전히 평온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시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푸근함이 있는 곳. 언제 내려가도 한결같이 평온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공기마저 평화로운 곳이다.
그 도시로 골프 여행을 떠난다.
무안 CC
국내 골프패키지 상품은 각 지역별로 너무나 많이 나와있다. 수도권에서 가깝거나 이름이 제법 알려진 명문 구장은 비싼 가격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그래도 서로 가겠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으니 굳이 가격을 낮출 필요도 없다. 조금만 시간의 여유를 가져보자. 그러면 훨씬 좋은 구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골프를 즐길 수 있다. 물론 운전을 조금 오래 해야 하는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 놀며 쉬며 간다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다. 미국은 10시간씩 고속도로를 운전해 다른 주로 가기로 하는데 우리나라 정도야 할만하지 않을까? 물론 난 대부분 신랑이 운전을 하고 가서 이런 말을 편하게 하는 걸 지도. 분명 그 수고로움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큼 만족스러울 것이다. 한번 믿어보시길.
무안 CC 2박 3일 골프를 강력 추천한다. 비행시간 긴 해외여행은 오래 머물고 오는 것이 가성비 측면에서 좋은 것처럼 수도권에서 내려가면 4시간 정도를 가야 하니 2박 3일 정도는 머무르는 것을 추천한다.
접근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가격이 보상해 준다. 2박 3일 일정이 카트피 포함해서 수도권 1박 2일 금액보다 저렴하고 프로 골프 대회도 열리는 곳으로 골프장 컨디션도 매우 훌륭하다. 게다가 54홀을 가지고 있어 지루할 틈 없이 매일 다른 코스에서 경기를 해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점이다.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음식 때문이다. 전라도는 지나가다 아무 식당에 들어가도 평타는 친다고 할 만큼 음식이 맛있다. 그중 무안 낙지골목 코스요리는 갖가지 해산물에 훌륭한 식사를 보장한다.
2박 3일 일정에 참고하기를 바라며 광고도 아니고 지역색도 없이 그냥 내가 좋아 남도 좋을까 싶어 소개한다.
*무안 골프여행 - 예약방법, 먹거리*
무안 CC는 매달 1일 다음 달 패키지 예약을 유선으로 받는다. 1일 열심히 전화를 걸어본다. 처음에 연결이 안 돼도 계속한다. 언젠간 된다. 수도권 골프장들 보다는 훨씬 성공 확률이 높다.
골프텔을 포함한 패키지로 예약하는 방법과 골프만 따로 예약하는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따로 골프만 예약하는 걸 추천한다. 무안 CC에서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숙소는 어디? 터미널 근처옆, 낙지골목이 도보로 가능한 모텔을 예약하면 된다. 새로 지어서 깨끗하면서도 저렴한 모텔들이 많다. 골프텔 이용 시 낙지골목까지 나가서 술이라도 한잔 하게 되면 대리해서 들어와야 하니 번거롭다. 물론 나는 술을 못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술을 사랑하니까 걸어갈 수 있는 곳으로 숙소를 잡는 걸 추천한다.
첫째 날은 내려가는 시간이 있으니 오후티를, 나머지 이틀은 오전티를 잡는다. 54홀을 모두 쳐볼 수 있도록 남, 동, 서 코스를 3일에 걸쳐 예약하면 매일 다른 곳을 쳐볼 수 있다.
첫날 오후 골프를 치고 숙소 와서 짐을 풀고 슬리퍼 신고 현지인처럼 낙지골목 시장에 들어간다.
낙지 코스요리를 먹고 그 앞 나름 번화가 길을 걸으며 커피 한잔을 한다. 반짝반짝 거리가 예쁘다.
다음날 아침 해장국으로 애호박찌개를 추천한다. 별거 안 들어있는데 신기하게 맛있는 전라도에서 유명한 음식이다.
둘째 날 골프 친 이후 점심에는 운저리 회무침을 먹는다. 망둥어를 전라도 사투리로 운저리라고 부른다. 밴댕이 회무침과 비슷한 양념에 무치는 요리인데 전라도의 특색음식이니 먹어보시라. 무조건 맛있다.
저녁에는 오리탕!!! 수도권에서는 주로 오리백숙이나 주물럭으로 먹는다면 전라도는 들깨가루를 많이 넣고 탕으로 해 먹는다. 약간 생소할 수도 있으나 들깨를 한가득 넣고 초장에 비벼서 데친 미나리와 오리를 함께 찍어먹으면 아주 별미다. 맛있어서 집에 돌아와 택배로 주문해서 한번 더 먹었다. 가끔 생각나는 맛이다.
마지막날 점심은 전라도 백반집을 검색해서 찾아간다. 시골밥상이나 백반집을 찾아서 가면 반찬이 스무 가지 넘게 나오는 식당에서 거한 식사를 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한정식 느낌은 아니지만 투박한 매력 속 정이 있는 식당을 만나게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무화과를 몇 박스 사서 주변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는 센스까지 발휘한다면 멋과 맛이 있는 완벽한 여행이 될 것이다. 지금이야 무화과가 마트에도 다 팔지만 내가 어릴 때 무화과는 할머니가 시골에 다녀오면서 보따리에 몇 개씩 눌린 채 싸가지고 왔던 간식이었다. 유통과 저장의 문제로 도시에서는 건무화과만 먹을 때 할머니 덕분에 난 생무화과를 먹을 수 있었다. 무화과는 할머니와의 추억 한 페이지이기도 하다.
골프 여행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맛집 기행이 된 듯하지만 골프장도 먹거리도 훌륭해서 너무너무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그렇다면 나와 무안의 인연은 무엇이길래 이리도 잘 아는 것일까? 게다가 자주 가는 것일까?
넓은 평야에 황토 흙들이 뒤덮여 있고 갯벌과 바다를 볼 수 있는 평화로운 도시 무안은 나에게는 특별하다.
무안은 아빠 고향이자 산소가 있는 곳이다.
아빠는 오랫동안 그 고향을 떠나 치열한 도시의 가장으로 살다가 평온한 도시 무안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계신다.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 무안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저 너무 먼 깡촌정도의 시골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무안에 있는 선산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너무 멀어서 자식들이 찾아가기 힘들다고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차마 아빠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사실 크게 노력하지도 않았다. 돌아가시는 그때는 일 년에 몇 번이고 아빠를 보러 내려갈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 이런저런 이유와 가끔은 핑계를 동원해서 내려가는 게 소홀해졌다. 이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내려가는 연례행사가 되어 버렸다. 그때마다 가게 된 곳이 무안 CC였다. 아빠를 보러 가는 길이 숙제가 아닌 여행이고 싶었다. 아빠 산소에 소주 한 병 뿌리고 슬프지 않게 돌아서는 연습을 한다. 갈 때마다 눈물이 나긴 한다. 아무튼 난 아빠 덕분에 좋은 골프장과 맛집을 많이 알게 되었다. 더 쓰면 구구절절 사연 늘어지니까 이쯤에서 인사로 마무리를 해야겠다.
아빠, 고마워요!
무안 CC 2박 3일 여행 도전해 보시길. 골프를 안쳐도 좋다. 내 입장에서는 치면 더 재미나지만 안쳐도 갯벌체험과 맛집 탐방만으로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