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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홀 - 골프가 왜 좋아?

이유를 알려줄게

by 뭐 어때
골프를 왜 그렇게 좋아해?





주변에서 자주 물어본다. 날을 새고 골프를 친 이력을 듣거나 하루종일 골프방송을 틀어놓고 있는 나를 보면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도 있다. 등산을 하는 사람도 낚시를 하는 사람도 다들 제각각 그들만의 애정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남한테 피해 주면서 미친 거 아니니까 뭐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 사실 적당히 미쳐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지나친 열정을 남이 바라보면 가끔 그렇게 보이기도 하니까 남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좋아하는 걸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골프를 해야 한다고. 그러면 본인을 미워하게 될 거라고 가수 성시경이 얘기했었다. 그만큼 뜻대로 안돼서 그럴 것이다. 방송인 서장훈은 본인이 골프를 안 하는 이유를 연습한 대로 안 되면서 경기시간이 지루하게 길어서 싫다고 했다. 스피디한 운동을 했던 사람이 느끼기에는 늘어지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아마 시간이 지난 후에 서장훈도 골프에 빠지게 될 거라 감히 예측해 본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이 잘 치기 시작하면 무서운 실력을 갖게 된다.

이렇듯 골프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있고 싫어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골프를 싫어하는 사람도 공감할만한 내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다.


1. 희망을 주는 운동이다.

골프는 18번의 희망을 품게 한다. 난 그게 좋다. 다른 스포츠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을 한다면 골프는 홀마다 개별 게임을 하는 느낌이 든다.

첫 홀에 못 치면 두 번째 홀에 잘 치면 된다. 무슨 자신감인지 꼭 이번에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긴다. 라운드를 떠나는 차 안에서, 첫 홀 티박스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들은 모두가 오늘은 라베(라이프 베스트 스코어)를 할 것 같은 자세들이다. 이 얼마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운동인가.

그렇게 매홀마다 기대감이 생기고 다시 리셋이 되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좋다. 비록 매번 홀을 지나치면서 계속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럼 또 다음 라운드를 기약하면 된다. 다음번엔 잘 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으니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다. 잘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슴에 계속 품고 약간은 들뜬 기분이 드는 이 운동을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2. 신랑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다.

신랑은 운동신경이 좋다. 공부도 나보다 잘했다. 사실 내가 이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말싸움정도. 그것도 시끄러우니 져주는 것일 테고 가끔이라도 한번 이겨서 으스댈 수 있는 유일한 분야가 골프다. 우리 부부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오랜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좋다. 선의의 경쟁을 한다지만 지고 나면 가끔 성질도 부린다.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필드에 나가는 상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우리 부부가 나이 먹고 아이들이 모두 성인이 되면 각자 바빠질 테고 우리와 놀아주겠는가. 취미도 다르고 체력도 다를 터인데. 골프는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을 이길 수도 있고 나이 불문하고 함께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이 아닌가 싶다.

가족이 함께 골프를 치면 사위, 며느리와도 더욱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며느리가 싫어할라나. 아직 먼 이야기지만 아무튼 나이의 허들이 없는,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좋다.


3. 라운드 하는 동안 걱정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라운드가 있는 하루는 걱정근심을 멀리 던져버릴 수 있다. 푸른 잔디와 맑은 하늘,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 물가에 떠있는 오리. 이것들을 바라보며 인상 찌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경기시간이 길어서 싫다는 운동이지만 난 그게 좋다. 온전히 하루를 힐링할 수 있어서 좋다. 가끔은 18홀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오가는 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들과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 골프장 근처 맛집들, 그런 상황 속에 놓이면 걱정이 사라져서 좋다. 난 좀 걱정인형이다. 인형까지는 아니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 잠시도 머리가 쉬지 못하고 이런저런 생각, 오만생각을 한다.

그 오만생각이 떨어져 나가서 단 몇 가지 생각만 할 수 있는 시간이 골프를 치는 동안이다. 그래서 좋다.


4. 남들이 나의 근황에 집중하지 않아서 좋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지고 빠진 머리카락이 이제 조금씩 자라나긴 했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얼굴 보자는 사람들을 피하면서 써놨던 일기를 첨부한다.

그 일기에 골프의 좋은 점이 들어있을 줄이야. 화가 단단히 나서 쓴 것 같은데 사람 만나는 건 싫어도 골프는 치고 싶었나 보다.


23년 4월 6일 짧은 넋두리.
난 아직 예전 나를 알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 그나마 만난다면 골프장에서...
거기서는 나를 안 보고 공을 보거든. 대화주제가 내 건강과 근황이 아니고 골프 얘기니까 마음이 편해. 상대도 나도 무슨 말을 할까 서로 어색해하면서 쿨한 척하고 정치해야 하는 게 진짜 싫어.
그런데 내가 아니니까 나처럼 암환자는 안 해봤으니까 그 맘을 이해하기가 어려운가 봐. 뭐 어떠냐고. 짧은 머리 여자도 많고, 술대신 음료수 마시면 되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피하냐고. 그렇게 쉽게 얘기하지 마.
맞지 맞아. 나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한 게 있어 피하는 게 아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픈 게 억울하고 화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싫은 거야.



수술하고 나서 골프 칠 수 있냐고 의사 선생님께 몇 번이고 물어봤고 지금 다시 내가 필드에 나갈 수 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한다. 배우 이경진 님이 유방암에 걸리고 본인을 살린 건 골프였다고 할 만큼 열심히 하면서 힘든 걸 극복했다던데 무척 공감한다. 아무 활동도 하지 못하고 아무도 만나기 싫을 때 희망을 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야외 나들이 나갈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주었다. 나의 우울함을 날리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해주고 비타민 D섭취에도 큰 일조를 해 주었다. 항상 칼슘과 비타민 D영양제를 처방해 주셨는데 이제는 비타민 D는 빼도 될 만큼 수치가 좋아졌다.

이렇게 좋아할 이유가 명확하니 안 좋아할 수가 없다.




p.s 골프얘기는 모르겠다고 다른 이야기 원하는 독자님들!!! 조금 기다려주세요. 없는 독자지만 의견수렴 합니다. 세상사는 평범한 듯 특별한 이야기도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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