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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Dec 01. 2020

괴벨스만 쏙 빠진 코리안 나치즘

파쇼의 절정 앞에서 인내를 버리다

중학생 때 공부한 영어 단어가 내가 공부해 알게 된 영단어의 7할이 넘을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 후 지금까지 영어를 따로 공부한답시고 시간을 내 준 적이 없다.


지금이야 세련된 교재와 컨텐츠로 쓸데없는 문어체 영어나 실생활과 거리가 먼 학술용어를 영단어랍시고 외울 일이 없겠지만, 그때는 모든 게 어설프고 경계가 희미했다.


VOCA22000에서 기억나는 단어. 하지만 미국 애들에게 썼다가 현학적이라 경외받던 단어가 떠오른다.


PROPAGANDA




프로파간다의 대명사는 파울 괴벨스다. 나치 히틀러의 12제자의 수장이자 히틀러의 입이며 나치즘의 십자가다. 모든 국민이 민족주의에 기반한 국가사회주의에 몰입되도록 총화 단결된 무지와 무뇌를 양산한 독일인을 위한 십자가다.


영화ㆍ포스터ㆍ음악ㆍ방송ㆍ올림픽은 물론 코코 샤넬까지 동원한 선전국의 지휘자였다. 괴벨스 없이는 나치는 냉철하고 똑똑한 독일인들에게 재미없는 군소정당으로 다시 쪼그라들었을 것이고, 히틀러는 아리안 비스무리한 오스트리아 잡종으로 찌그러졌을 것이다.  


화무십일홍




로마 황제, 기원전 5세기 이전 전제적 군주시대에 12명의 환관이 황제를 둘러쌌다. 하나같이 나뭇가지를 엮어 모아 도끼날을 드세웠다. 12개의 도끼날이 황제의 입술처럼 공기를 가로 자른다.


황제의 명을 거역하거나, 반기를 들거나, 심지어 기분을 나쁘게 해도 환관의 12 도끼날이 황제의 심기를 건드린 주둥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Facio를 든 12 환관


고대 라틴어의 도끼(facio)를 든 황제 중심적 정치행태를 20세기부터 파쇼 정치, 파시즘이라 불렀다. 물론 무솔리니를 두고 한 말이다. 재미있는 건 프로파간다와 파쇼의 상징, 히틀러와 나치는 무솔리니를 동경해 연설의 달인이 되었다는 것.


2020년 대한민국 파시즘은 나치 소년단이나 근위대를 대신해 문빠가 군중을 에워싸선 선동과 협박과 회유를 반복한다.


민족주의가 팽배해져 파쇼의 강점을 살리기 최상이 되었다. 파쇼는 민주주의와 투표 없이는 그 기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의 대한민국은 완숙된 민주투표주의가 민족사회주의적 코리안 파시즘을 양육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괴벨스의 부재다.

괴벨스 같은 역할을 SNS로 해보려던 코리안 나치들은 정작 히틀러가 자살한 날까지 그 곁을 지키던 괴벨스처럼 영리하지 못했다.

쫓겨나거나 재판받느라 지들의 코가 석자다.
괴벨스가 되고파 설치는 주둥이는 함양미달에 수준미달이다. 떠들 때마다 조롱거리가 된다.

정작 괴벨스 깜냥이 될 인재를 내쳐버렸기 때문에, 프로파간다가 안된다. 돌들만 쌓아올려서 답답하다.


괴벨스 없는 코리안 파쇼는 곧 사라지고 흩어져, 역사의 수치로 남아 스스로 자신의 흔적을 햝고 문질러 그 마지막 때 국물까지 지워버릴 것이다.


파쇼는 국가와 국민이 아닌 정치인과 권력자를 사랑할 때, 이방인의 페스트처럼 우리 주변의 어둠 속에서 덩치를 키워간다.


그리고 민주투표주의를 주권재민의 헌법적 상식에서 떼어낼 때, 육신을 탈피한 영혼처럼 무소불위의 철인적 파시스트를 대량생산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앙하고 받들던 존재가 황제가 아니라 환관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파쇼의 뿌리는 우리의 미래를 갈아먹어 상실의 늪으로 빠져넣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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