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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Dec 20. 2020

1. 그놈의 눈알을 터뜨려 죽였습니다.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남자

팽팽하게 둥근 표면의 장력이 거세게 느껴진다. 터뜨리려 엄지손가락을 깊숙이 누르지만 정말 터질까봐 머뭇거렸다. 하지만 10의 나노 초만큼 짧은 시간이 흐르자, 표면장력을 줄이는 정중앙의 스트레인으로 두 개의 엄지손가락이 중심점을 잡았다.


조금만 더 누르면 터질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뜨끈한 뒤덮임에 가득 담겼다.

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세 마디가 놈의 입술에서 터지자, 내 두 눈의 초점이 놈의 미간을 향했다. 빠르게 얼굴을 흝고돌아 놈의 미간에 내 두 눈의 공명 초점이 일시에 멈춰 섰다. 그러자 놈의 붉고 묽게 고름 같은 진액이 두 눈을 흘러나와 놈의 미간 아래에 서로의 머리를 섞었다. 이미 부러진 놈의 두 팔은 어깨에서 떨어져 거죽만 연결되었을 뿐이다. 두 눈의 진액이 미간 아래로 하나의 스트림을 그려갔다. 그럴수록 놈의 두 팔은 더더욱 어깨의 흐느낌에 춤만 출 뿐이다.


119, 119, 제발 119!


놈이 사는 주상복합의 너른 부엌 공간이 눈에 들었다. 그리고 독일칼 세트가 들었다. 9월. 차갑게 따스한 태양의 자외선이 내 살을 살균시키려 큰 강화유리벽을 통과하였다. 나는 살균되어 순수의 영혼으로 거듭났다. 최소한 그 순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독일산 쌍둥이 칼 세트가 현대미술의 르네 그림처럼 허공에 두둥 떠올랐다. 그리고 르네의 모자 쓴 정장 맨들이 비를 타고 내리듯 세트케이스의 독일 칼들이 한꺼번에 금속 빛을 반사했다. 그중 적당히 길고 충분히 두꺼운 한 놈을 잡았다.


나는 왼손잡이다.


놈의 두뇌를 보고 싶었다.  정수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뇌는 보이지 않고 왼팔꿈치의 찌릿한 진동만 오랜 초시간 나를 괴롭혔다. 오른눈이 통증을 숨기려는 본능의 눈물에 순간 삼켰다. 힘겹게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왼팔을 몸통에 바짝 붙이고, 엄지가 검지에서 갈라지는 경계에 칼자루의 중심을 맞추었다. 내 손과 독일 칼이 서로의 바이어스를 일체화시키자, 성능 좋은 독일차의 피스톤처럼 놈의 두개골에 독일 칼이 위아래로 가격했다.


뻑, 퍽, 뻑, 풉.


이십여 번이나 되었을까. 흰 바둑돌보다 하얀 놈의 두개골 사이로 희고 붉은 푸딩 같은 놈의 뇌가 보였다. 실수로 독일 칼을 멈추지 못해 놈의 붉은 푸딩이 갈라졌다.


이대로 떠나라.


놈이 지난 60년 기억을 담아 놓았던 단백질 덩어리, 그놈의 시냅스 20조 개를 모두 절단 내고 싶었다. 뉴런 하나 남김없도록 내 오른손이 놈의 푸딩 같은 뇌질을 다섯 손가락으로 퍼 날랐다. 다름 아닌 내 입 속으로 열심히 쉴 새 없이 퍼 날랐다.  깨끗이 놈의 두개골 속 푸딩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긴 회한, 역겨운 배부름, 더 이상 분노할 이유가 없어진 해탈이 급습했다. 나의 육신은 물론 나의 두 눈꺼풀을 무겁게 눌렀다. 잠깐 두 눈을 감고 놈을 없앤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혹여나 잠재할 나의 죄책감을 몸 밖으로 남김없이 흘려보냈다. 기쁨만이 공허함과 단짝이 되어 조용히 나의 영혼을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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