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Dec 20. 2020

2. 그러게 왜 사람을 죽이셨어요?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 남자

전두엽이 큰 망치를 맞아 망가진 듯 아무런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다. 아니, 아예 뇌를 멈추는 체면을 스스로 건듯 했다. 나는 눈뜬 좀비 상태다. 눈앞의 컬러는 이미지가 아니라  밝고 어둠의 명암으로 시신경에 입력됐다. 무언가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 나의 시간에 동석한다는 느낌. 내가 자의적으로 멈춰버린 뇌가 유일하게 작동하는 방식이다.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은 공리적이지 못하다. 팬옵티콘을 정중앙에서 절반만 자른 모양이다. 잠망하는 중앙 데스크의 앞으로 유치장 방 5개가 부채꼴로 펴져있다. 첫 번째 방과 마지막 다섯 번째 방을 세 번째 방 안에서 둘러봤다. 거의 170도 부채꼴이다. 유치장 10개 방을 한 번에 관리하지 못하는 동대문경찰서는 제레미 벤담이 경멸할 레이아웃이다.


내일 오전에 다시 시작할게요.


서울지방경찰청 광수대에서 밤 10시가 넘도록 변호사 없이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점박이 달마시안처럼 비듬이 검은 머릿결 사이로 빼 백이 자리 잡은 여자 수사관이 신문했다. 아차, 달마시안의 검은 점은 그녀의 허연 비듬과 교체되었다. 달마시안 수사관은 8시부터 10시까지 놈의 주상복합에서 잠자던 나를 긴급체포한 정황만을 조서에 남기고 떠났다. 내일부터 빡센 일정이 될 거라고 말했다. 묻는 대로 답해주마, 라는 호의를 침묵으로 보여주었다.


다시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까지 묶었다. 내 인생 벌써 두 번째다. 처음이나 이번이나 수갑은 느슨했고 포승줄은 감기 위해 내 몸에 둘러진 범죄자의 표식일 뿐이었다.


참지, 왜 그러셨어요?


호송차에는 중간 좌석에 2명, 운전석에 1명의 사복 경찰이 피곤한 몸둥아리를 낡고 늘어진 시트 깊숙이 구겨 넣었다. 그리곤 운전석의 나이 든 수사관이 한숨 깊은 말을 꺼냈다.


담배를 태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더니 수갑으로 연결된 두 손 사이로 레종 담배 1대를 찔러주었다. 담배에 이어 라이터 불을 켜주는 젊은 경찰은 애써 눈동자를 창밖으로 던졌다.


후우. 띵하네요.


첫 모금의 담배연기가 터뷸런스 없이 사방으로 확산해갔다. 들이마신 연기보다 호송차 내부 공기를 넓게 가르는 연기가 더 많다. 그리고 멈춰놓은 전두엽 뒤 측두엽이 두통을 만들었다. 귀 위를 주먹으로 꾸욱 눌러보았다. 멍한 고통이 길게 갈 느낌이다.


왼쪽으로 갈라진 길 위에서 차단벽이 올라가고 있었다. 차단벽이 거의 올라가고 사라지자 호송차가 천천히 그 속으로 진입했다. 양 옆을 버텨선 두 경찰과 보폭을 맞추어 유치장으로 향했다. 운전석 나이 든 수사관은 비공리적 팬옵티콘에 미리 들어가 서류 서명을 하고 있었다. 수갑과 포승을 푼 뒤 세 번째 방으로 동대문경찰서 유치장을 지키던 제복입은 경찰이 가이드했다.


1,700원짜리 급식 도시락을 무상으로 지급받았다. 1,700원이 이해되는 변비 유발 테러 식단이었다. 탁자 같은 골판지 박스 위에 도시락을 올려 장국 물로 목구멍을 달래며 밥알을 넘겼다.


예상과 다르게 유죄를 인정하는 두 사람이 세 번째 방을 지켰는데, 어찌나 친절하게 거들며 위로하는지. 이십 대 훈련소 내무반 같은 분위기를 자았다.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똑같구나. 비 공리적 팬옵티콘에, 비 공리적 범죄자들이 인간적 친절을 흠뻑 채우는 늦은 밤이었다. 


유치장 밖 천장에 달린 TV모니터가 밤새 뉴스로 세상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두 눈을 깜빡이며 귀로 그 뉴스를 듣다가 교대를 알리는 다른 경찰관의 인수인계 대화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 놈의 뇌를 파먹은 뒤 포만감 깊은 나른함에 잠이 들 때를 다시 꿈꾸었다. 그리고 꿈 속의 꿈에서 나는 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나는 살인하지 않았다. 나는 죄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1. 그놈의 눈알을 터뜨려 죽였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