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유럽 근대화의 아버지는 쿠텐베르크이다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정]
독일 쿠텐베르크가 유럽에 활자 인쇄술을 발명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실제 이건 유럽 사관에서의 좁은 시각일 뿐이고 송나라와 고려에서는 목판에 이어 금속활자본까지 약 200년을 앞섰다.
그래서 구텐베르크를 활자인쇄술을 개발한 서양의 후발주자로 폄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쿠텐베르크가 의도하지 않았던 근대화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쿠텐베르크에 의하여,
교황은 면죄부를 발행했고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발발했다. 종교개혁으로 널리 보급된 성경과 자율 신앙 사상이 자본주의 신념을 강화했다.
부가적으로 인쇄술은 과학기술의 보급과 경쟁, 공장 사업화를 크게 일으켰다.
십자군 전쟁 실패와 흑사병 창궐로 인해 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 유럽인들에게 때마침 르네상스 문화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당과 교황의 신권이 위협받고 기부금과 유럽 전역의 영지와 세금이 줄어들었다.
또한 이러한 세태에 신권을 강화하려던 교황 레오 10세가 무너져가던 베드로 대성당과 광장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다. 비용이 턱없이 모자라자 교황 레오 10세가 면죄부를 고가에 발행했다. 그런데 면죄부는 유럽 왕가와 왕족들이 고가에 구매하는 일이 잦았다. 왕족과 귀족이 면죄부를 고가에 수없이 살만큼 무슨 죄를 지은 걸까?
왕가의 정통성 유지를 위한 근친혼, 왕권강화를 위한 정략혼으로 인해서이다
기독교에서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3가지 원칙을 강조하셨다. 일부일처제, 독점적 성생활, 결혼의 영속성이다. 그래서 혼외 성교나 간음, 4촌 이내 친인척과의 성교, 죽은 배우자의 형제ㆍ자매와 결혼해 자식을 낳는 수혼제를 부정했다.
합스부르그 왕가나 근접 경쟁국과의 불가침협약을 위한 국가혼이 성횡했고 몇 세대를 지나면서 얽히고설켜 왕족들은 거의 대부분이 친인척이 되었다. 게다가 왕권강화를 노리던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는 이혼과 자매들과 성교하는 독선을 보였다. 이때 헨리 8세도 교황의 면죄부가 계속해 필요했다.
결국 이런 면죄부 발행에 대해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종교개혁과 성경의 기능을 역설했다. 이런 추세는 인쇄물을 통해 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귀족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전파되었다.
특히나 신교는 사제의 매개 없이 성경에 의한 신자 스스로의 자율 신앙을 설파했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성경은 시대를 지나가는 영원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로 인해 성당이나 사제 없이도 신앙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금욕적 신앙정신이 전파되면서 근면ㆍ성실을 앞세워 열심히 일하고 이로 인해 번 돈은 현세에 잠시 맡아가는 하나님의 돈으로 여기게 되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와 자본주의 영향처럼,
신교들은 각종 사업에 종사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벌어들이고 쌓게 되어 근대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인쇄술과 성경의 보급으로 막대한 양의 제지가 필요해졌고 제지공장은 당대 대도시마다 성 외곽에 크게 세워질 만큼 대단위 공장화 된 산업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제지 원재료 수급, 제지 제조, 출판인쇄, 유통으로 이어지는 산업이 커지고 문학, 과학기술, 예술 등이 전 유럽으로 번지고 확대되었다.
이러한 근간에는 절대강자가 없던 유럽에서 라틴어라는 공통 언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라틴어로 출간된 서적은 민족주의 의식이 생기면서 유럽 각지의 토속 언어로 대중화되었다.
이러한 대중화로 인해
유럽 각지의 모든 계층들이 신문물과 지식을 접하게 되고 무한 경쟁 속에 빠지게 된다.
결국 쿠텐베르크의 의도와 달리 쿠텐베르크는 유럽 근대화의 아버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