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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스페인은 중세 이슬람의 요충지였다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전]

by 아메바 라이팅

소아시아를 포함해 중동이라 불리는 지역은 터키계, 페르시아계, 아랍계, 이집트 셈계가 공존한다. 8세기 이후 이슬람교로 문화적 통일을 이루기 전에도 종교, 신화, 정치, 문화적으로 공존했다.

지금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분리하지만 이슬람교가 창시되기 전까지 동일한 신화와 종교를 가진 동일 아랍계로 여겼다. 단지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으로 다른 아랍 민족을 아브라함의 비정통적 자손으로 멸시했을 뿐이다.

중동은 초승달 모양의 곡창지대가 해안가를 따라 발달해서 인구가 많고 해상교역이 발달했다. 그래서 페니키아 인이라 불리는 아랍계가 지중해와 대서양까지 식민지를 개척했다. 그중 유명한 곳이 로마와 한판 승부를 벌인 한니발의 카르타고이기도 하다.

기원전 8세기경 페니키아의 거상 멜카르트가 세비야를 세우고 스페인의 타르테소스 왕국과 교역했는데, 멜카르트가 훗날 헤라클레스로 고대 그리스에서 대치되면서 세비야를 헤라클레스의 도시로 불렀고 지브롤터 두 섬을 헤라클레스의 기둥이라 여겼다.

이때부터 아랍계의 식민지가 된 스페인은 기원전 5세기 타르테소스 왕국까지 망하면서 카르타고를 비롯한 수많은 아랍계 국가들의 식민지가 개척됐다.


1차 포에니 전쟁에서 진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스가 스페인에 카르타고 노바(뉴 카르타고)를 세우고 은광을 개발해 막대한 자금으로 카르타고를 재건한다.
이후 바르카스의 아들 한니발이 카르타고 노바를 통치하면서 알프스를 넘는 대장정으로 로마를 침공한다. 2차 포에니 전쟁이다

결과적으로 카르타고는 스페인 식민지를 잃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까지 초토화되는데, 이때 스페인 땅에 로마가 이탈리카라는 군사도시를 세우며 지배권을 확대하다가 아예 히스패니아라고 속주 이름까지 붙인다. 오늘날 스페인계를 히스패닉이라 부르는 어원이다.

이후 로마, 반달족, 서고트족이 번갈아 영유하며 지배하다가 서기 711년 역사적인 이슬람 침공으로 스페인은 또다시 아랍계의 지배를 받는다.


711년 우마이야 왕조에 의해 정복된 후 1492년까지 781년간 이슬람의 주요 거점이 된다

당시 동유럽에서 서아프리카까지 막대한 영토를 가졌던 이슬람 제국은 크게 중동, 북아프리카, 스페인의 3지역에서 반란과 독립 제국이 난립했다. 하지만 모두 이슬람교에 충실한 무슬림의 제국으로 함께 경쟁하고 교류했다.

특히 997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섭정 재상이던 알만조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공략해 백인계를 스페인의 최북단 산악지대로 몰아내어버린다. 더욱이 대성당의 종을 수탈해 코르도바 모스크의 초등으로 녹여 사용해 백인 카톨릭 군소국가들의 스페인 수복 의지를 산산조각 냈다.

1492년 아랍계가 스페인에서 아라곤ㆍ카스티야 등 가톨릭 국가연합에 의해 쫓겨날 때까지 유럽으로 신문물을 전수하는 문화의 최고 선진국이었다.

서유럽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스페인의 후우마이야 왕국을 통해 이슬람의 앞선 의학, 천문학, 수리학, 철학, 음악, 의류, 항해술, 예절 예법 등을 배웠다.

1031년 후우마이야 왕조가 대가 끊긴 후 1492년까지 아랍계는 타이파라는 도시국가들로 난립했는데 서로 간의 경쟁으로 인해 북방의 가톨릭 국가들에게도 용병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때 용병을 보낸 가톨릭은 돈만 밝혀서 타이파 중에 가톨릭 국가와 전쟁을 벌이는 이슬람 타이파에게도 용병을 보내 다른 가톨릭 국가를 공격하기도 했다. 이런 용병 경비를 파리아스라 불렀는데 나중에는 용병이 출정하지 않아도 상시 지급하는 보호비로 변질됐다.

결국 마지막까지 견디던 나사리 왕국이 항복하고 이사벨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로 진주해 스페인은 백인 카톨릭계에게 현재까지 접수되었다.


역사적으로 아랍계가 개척한 스페인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까지 6백 년과
711년에서 1492년까지 약 8백 년을 합쳐,

약 1,400여 년 동안 아랍계의 전략적 요충지로 지배받은 중동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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