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러시아는 스웨덴 바이킹을 왕으로 수입했다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전]
앞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100년 전쟁의 원인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에 진출한 바이킹 후손 정복왕 윌리엄이 단초일 것이다.
유럽 전역에서 800년 때부터 1050년대까지 250여 년간 침탈, 교역, 조공 등을 받다가 사라졌는데, 기독교화되고 진출한 유럽 각지에서 정착하면서 활동이 사라졌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시칠리아, 이탈리아 남부, 코르시카 등은 물론이고 서북부 아프리카와 그린란드까지 진출해 정착했다.
또한 십자군 전쟁 때도 이슬람군에 맞서 제대로 된 승전을 해보인 것도 바이킹 출신 군주와 영주들이었다. 이들은 현지 이슬람 혹은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 진출했던 이슬람인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면서 독특한 혼합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노르웨이계 바이킹은 영국 등지의 인적이 드문 곳을 개척해 강탈했고, 덴마크계는 반대로 인구가 많은 도시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큰 성과를 거뒀다.
반면에 스웨덴계는 발트해, 볼가강, 흑해 등지의 동방으로 진출해 교역을 중점적으로 했다.
스웨덴 바이킹 족장 루리크는 동유럽의 슬라브족들과 교역하며 성군으로 존경받았다. 슬라브족들은 당시 동방의 고트족, 훈족, 중앙아시아 기마민족들과 동로마제국 및 이슬람 제국 사이에서 늘 희생당하던 노예족이었다.
여자들은 파란 눈과 아름다운 신체조건으로 인해 어릴 때부터 성노리개로 잡혀갔고, 체격 좋은 슬라브 남자들은 농노나 노예나 갤리선 노잡이 노예로 끌려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현재 키예프 지역에 살던 슬라브족들이 희대의 결단을 내렸다.
자신들의 왕을 스웨덴 바이킹 족장 가운데서 수입하기로 했다.
키예프 슬라브족들은 스웨덴의 루리크 족장에게 자신들의 왕이 되어 자신들을 지키고 통치해 달라고 통사정했다. 그리고 루리크는 이를 수락해 스웨덴인들이 들어가 러시아를 건국하게 된다.
862년 노브고로드 공국은 루리크를 왕으로 해서 슬라브족 최초의 국가를 건설했다. 당시 루리크는 스웨덴에서도 루스인 이라 불렸다.
루스인 루리크가 다스린 슬라브 국가가 지금의 러시아가 되었다. Rus가 Russia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도 이상적으로 찬란한 러시아를 꿈꿀 때, 자신들은 루스라고 굳이 부르는 대목이 보인다.
스웨덴 바이킹 족장을 왕으로 수입한 러시아는 20세기 초까지 사사건건 스웨덴과 패권다툼을 벌인 앙숙되었다.
지금은 스웨덴과 러시아가 비교될 상대가 아니지만, 불과 천 년 전에는 자신들을 통치해달라고 왕을 수입했던 비굴의 역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