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의 자존감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미국, 소련, 중국은 물론 서양 백인들도 존중하는 일본을 두고 새발의 때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경멸한다. 그래서 실제 일본의 국력, 역사, 문화, 군사력 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옛날엔 우리나라에게 문화를 전수받은 야만스런 섬나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의 자존감과 달리 일본은 16세기부터 세계 최강국이었다.
아마 16세기나 17세기까지는 일본이 영국이나 프랑스와 한판 전쟁을 벌였다면 일본이 압도적으로 이겼을 것이다. 도시화, 군사력, 조총 보유수 등과 군사작전 훈련 수준을 감안하면 서유럽 국가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메이지유신 후 일본의 근대화가 빠르고 서구 열강을 뛰어넘은데도 이미 근대화의 기반을 완성해서이다.
일본의 봉건영주 번 제도, 극도로 발달한 상공업, 해로를 통한 빠르고 거대한 수송능력, 종교나 특정 학문에 종박되지 않는 문화가 기독교 암흑기에서 벗어난 서유럽의 근대화 트렌드와 동일하다.
일본은 전국시대 말기 즉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조총만 공식적으로 50만정을 보유했고 그 성능은 유럽의 아퀴버스나 머스켓을 능가했다. 일본은 구니라 부르는 각 지방 영지마다 다이묘가 경쟁하면 전쟁을 상시적으로 벌였기에 조총 보유가 만연했고 성능이 원조 유럽산보다 계속해서 발전했다. 당시 조총 보유수와 군사력을 비교하면 프랑스, 영국을 합쳐도 40만정이 되지 않았다는 기록에서 일본의 군사력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살상력과 피해방지력은 유럽보다 뛰어났다.
맨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군사는 따로 총병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군사들이 조총을 보유할 정도였다. 유럽은 총병이 갑옷을 입지 않지만 근접전이 잦았던 일본군은 칼싸움까지 염두를 둬서 갑옷을 입었는데 현대적으로 말하면 총검술로 무장된 터미네이터였다. 그래서 상대 조총에 맞아도 피해가 적었지만 총없이 근접전으로 칼싸움에도 능했다. 또한 사진처럼 일본군은 조총 개머리판을 어깨에 대는 방식이 아니라 총기를 뺨에 붙여 사격했다. 조준력이 향상될 수 밖에 없었다.
"17세기 에도(현재 도쿄)는, 인구 200만명의 압도적 대도시였다."
파리와 런던이 40만명이고 빈이 17만 정도였으니 에도를 방문한 서양인들은 웅장한 대도시에 압도되었다. 게다가 에도는 대화재 후 가정마다 부엌에 불을 지피거나 보유하지 못하게 해서 식당, 주점, 사창가 등이 발달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공업과 해안수송업이 발전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식민지 하나없었던 일본이 오로지 내수 시장으로만 이처럼 대도시들을 운영할 수 있었다. 도쿄 외에 오사카 등의 5대 도시의 각 인구가 30만명에서 120만명이었다고하니 파리나 런던을 압도한다. 일본 에도의 요시와라같은 사창가를 보고 야만스런 섹스문화라고 얕잡아보는게 바보다. 그 정도로 거대한 사창가가 유지되려면 수많은 식당, 여관, 인구, 출판업, 공연문화, 사치향락품 등이 원활히 공급되어야 한다. 국제적 대도시가 아니고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