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의로운 칼레의 시민 뒤에는 이중 스파이도 있었다
[20가지 기묘한 고급 상식 열정]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백년전쟁은 두 왕국 사이의 혈연관계로 인해 벌어졌다. 사촌지간인 에드워드 3세와 필립 6세는 프랑스와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지방)의 영유권을 서로 주장하며 전쟁을 벌였다.
당시만 해도 왕은 지방 영주들의 지원으로 전쟁을 벌여야 했고 전체 왕국의 영토에서 왕이 직접 지배하는 땅은 수도 주변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영국 왕이 지배하는 프랑스 영토가 북부와 남서부에 있었다.
바이킹의 잦은 침략에 굴복해 아예 노르망디라 불리는 북부 프랑스를 내주고 영주로 임명받은 바이킹의 후손이 영국을 정벌한 정복왕 월리엄이다. 프랑스 지방 영주가 잉글랜드 국왕이 되는 애매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 왕가 사이의 혼인 정책으로 곧 잉글랜드와 프랑스 국왕이 사촌지간으로 가까워지고 이들은 프랑스 왕권의 주인이 자신이라 주장하며 전쟁을 벌인다.
당시 영주들은 국왕에게 계약적 충성을 제공하는 사이라서 프랑스 영주들 가운데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를 지지하는 것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 정규군의 지원 없이도 수개월간 잉글랜드 정규군을 상대로 버텨낸 곳이 칼레성이다.
칼레는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로 두 왕국에게는 모두 전략적 요충지였다. 수많은 희생 끝에 함락한 칼레성에 들어선 에드워드 3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칼레 시민 전체를 도륙해도 시원찮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실현될 리 없는 제안을 한다.
"칼레의 지도자급 6명을 내어준다면 칼레 시민들을 모두 살려 주겠다."
이때 칼레의 부호 생피에르 등 고위 관료와 부유층 6명이 목에 밧줄을 메고 교수형을 당하러 걸어 나왔다. 에드워드 3세는 이들을 교수형에 처하라 명령하는데 결국 실행되지 않았다. 당시 임신 중이던 왕비가 태아에게 불길한 기운이 닿을 수 있다며 극구 만류한 것이다.
이를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라 부른다. 노블레스는 닭의 벼슬을 뜻하고 오블리쥬는 계란 노른자를 뜻한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쥬란 닭의 벼슬보다 계란이라는 뜻으로 닭의 의무는 벼슬 자랑이 아니라 계란을 낳는 데 있으니 자신의 의무에 충실하란 뜻이다.
이후 로댕이 칼레의 시민이란 조각을 만들어 전 세계에 12점이 퍼졌고 지금까지 이들 6명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기리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실과는 다르다.
노블레스 오블리쥬가 아니라 잉글랜드 국왕에 대한 항복 의식이었고 에드워드 3세가 실제로 교수시켜야 할 인사들을 풀어준 것이다.
이야기의 주객이 전도된 과장된 미담이다
그리고 칼레성은 이후 프랑스의 공략 대상이 되었는데 에드워드 3세는 롬바르디안을 칼레성 망루 수비대장으로 임명했다. 아이메릭이다.
프랑스 명장 샤르니는 아이메릭을 돈으로 매수해 칼레성의 후미진 성벽을 타고 올라가 역습을 할 계획을 세웠다. 결국 아이메릭을 매수하는데 성공해 칼레성을 기습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잉글랜드 군에게 역공당해 전멸한다. 아이메릭은 이중스파이였고 샤르니가 매수한 것을 알아챈 에드워드 3세가 역스파이로 이용한 것이다.
당 시대의 승자이자 현자는 누가 봐도 에드워드 3세이다.
프랑스 칼레의 지도자들은 단순히 항복 의식을 수치스럽게 했을 뿐이고 프랑스의 명장은 적군 수비대장을 돈으로 매수하려다 전멸이니 당했다.
그런데 역사는 프랑스의 처절함과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행했다는 헛된 미담 속 칼레의 시민이 기려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