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역습, 어디 도와줄 사람 없나요?

: 디지털 문맹자

by 윌버와 샬롯

어릴 적에 정말 생겼으면 하는 기계가 있었다.


형제가 많은 대가족 틈에서 서열 막내였던 난 자유롭게 TV를 볼 선택권이 없었다. 안방에 하나 있던 TV는 아버지에게는 뉴스를, 오빠에게는 야구 중계를 보여줬다. ‘언제쯤 내가 좋아하는 걸 볼 수 있으려나’하며 하릴없이 지루하게 채널이 돌려지기를 기다리는 날이 다반사였다.


그 시절 극장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은 언감생심이었고 그나마 볼 수 있던 창구는 TV에서 하던 ‘주말의 영화’가 유일했다. 그렇게 꼭 보고 싶은 영화 프로그램은 언제나 밤늦게 했는데, 부모님이 주무시는 늦은 시간에 TV 보는 것도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형제들과 같이 쓰던 공부방에서 그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 딴생각을 하곤 했다. 머릿속은 '지금 이 시간에 보고 싶은 거 하는 시간인데'라는 생각만 하면서 말이다. 어김없이 그럴 땐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항상 손목에 있는 이 시계에서 TV가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 눈치도 안 보고 내가 보고 싶을 때 아무 데서나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


TV 좋아하던 그때 꼬마는 한 손에 꼭 들어갈 미래의 스마트폰을 그렇게 소망하고 있었더랬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폰이 나왔을 때 ‘이 사람도 어릴 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 아냐’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그저 생각만 한 사람과 진짜 구현해낸 사람의 차이는 실로 얼마나 다른지.



아이들과 함께 서점 나들이를 했다. 책을 사고 서점을 나와 가는 곳은 바로 옆에 있는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다. 가까이에 있어 서점만 오면 으레 점심을 해결하는 곳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가게는 북적였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 건지 주문하는 곳이 어쩐지 낯설었다. 무인 주문대 줄이 길다. 이전에 왔을 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점원에게 주문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리저리 눈치를 살펴도 직접 점원에게 주문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도 확실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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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전에도 대형 마트 푸드코트에서 몇 번 해본 주문 시스템이기 때문에 처음엔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는지 난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기본 세트 메뉴로 주문을 한다면 그리 어리바리하진 않았을 거다. 다행히 딸은 기본 세트 메뉴를 원했지만 아들은 탄산음료가 싫다 해서 음료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어 했다. 나 또한 음료를 커피로 바꿔 주문하고 싶었다. 이 제각각 주문을 어떤 조합의 세트로 주문해야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을지 그때부터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점원에게 직접 말해서 주문한다면 별 어려움이 없을 텐데 기계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계속 떨리는 손으로 기계 앞에서 터치만 반복했다. 기본이 아닌 다른 추가 주문 사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꽤나 진땀을 뺐다. 그 와중에 카드는 왜 또 인식을 제대로 못 하는 건지 결제마저 더디었다.


만약 뒤에 기다리고 있는 줄이 더 길게 늘어져 있었다면 아마도 난 햄버거 먹는 것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한참을 기다리던 아이들을 이끌고 다른 음식점으로 향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기계 앞에서 이리저리 주문 터치를 반복하면서도 누가 내 어설픔을 보고 있지는 않을지 마음이 두근두근 요동쳤다. '그냥 여기서 그만두고 다른 거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을 진짜로 하고 있었다.


엄마, 왜 이리 오래 걸렸어요?

아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돌아오니 이미 난 기운이 쏙 빠져 있었다. 시간은 걸렸지만 원하던 대로 주문을 완료했고 햄버거를 먹긴 했다. 일명 '키오스크로 햄버거 주문하기'라는 점심 미션에서 성공을 하긴 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햄버거를 먹는데 주문대를 우연찮게 쳐다보니 중년의 어떤 분이 점원한테 직접 주문하고 있었다. 무인만 되는 건 아니었나 보다. 괜스레 혼자서 주눅이 든 셈이다. 지레 겁먹은 내 상황을 되새겨 보니 더 나이 들어서는 정말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르신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사용법’과 같은 주민 센터 강좌처럼 나도 다가올 미래 시대에는 적응 교육이 필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이나 박물관에서도 이제는 로봇이 안내해준다. 보안과 암호화, 시시콜콜 다운로드하라는 여러 다양한 메시지에 벌써부터 지친다. 디지털 선두주자 세대였던 난 과연 앞으로의 문명에 제대로 적응이나 할 수 있을까. 오늘 같은 햄버거 주문도 벌써부터 이리 거부감이 드는 걸 보니 난 아쉽게도 4차 산업 꼰대가 됐나 보다.


그렇다면 나는 예비 디지털 문맹자인 걸까? 빠르게 바뀌는 다가올 미래가 살짝 두렵기도 하다. 겁은 조금 나지만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차세대 디지털 혁명 시대를 기대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던가.


언제 어디서고 내 손목 안에서 영상을 보길 원했던 그 꼬마는 1인 컴퓨터 X세대의 시작 세대였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음악을 배경으로 내 생애 처음의 랜선 공간인 개인 홈페이지를 혼자서 만들기도 했다. 몇 날 며칠 밤을 새우며 코딩하면서 그곳에서 나를 표출했다. 식구들 몰래 지지직 밤마다 PC 통신에 접속해 영화 ‘접속’의 전도연 한석규 부럽지 않은 로맨스도 경험했었다.


속도 차는 있겠지만 그 적응에도 감히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8282' 다양한 숫자 암호로 대화한 삐삐도 보았고, 공중전화 옆에 서성이며 하던 시티 폰도 알며, 벽돌 같던 폴더폰에서부터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실로 나는 격변의 디지털 세대가 아니던가. 취업 어렵던 IMF 때도 일을 할 수 있었고, 월드컵 4강이라는 꿈같은 신화에 빨강 옷 함께 입고 얼싸안으며 열광했으며, 인파가 가장 많이 모였다는 뜨겁던 어느 촛불 시위 현장에 나도 있었다. 내가 위치한 곳까지 앱으로 바로 택시를 부를 수도 있고 인터넷에서 더 알뜰하게 장도 본다. 다이내믹 코리아, 아니 이 정도면 나도 다이내믹한 사람 아니고 무엇인가.


오늘은 햄버거를 주문하는 데 좀 시간이 걸려 당황했지만, 다음번엔 자신 있다. 앞으로도 무엇이든 주문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러나 영화 실미도에서 설경구가 '비겁한 변명이십니다'하는 대사가 내 마음의 목소리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건 왜일까. 영화 빽투더퓨처2에서 마이클 J. 폭스가 미래로 와 어리둥절한 그 모습이 나한테 스멀스멀 투영되는 건 그냥 기분 탓일까. 기계가 역습하는 2차 산업혁명을 비꼰 찰리 채플린의 영화 한 장면이 불현듯 떠오르는 하루였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Modern Times,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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