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만 하면 남들처럼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길 줄 알았다. 나와 남편 모두 적당한 나이에 결혼했으며 건강한 상태였으니 때가 되면 아이는 당연하게 와주겠지 싶었다. 내가 뭐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모두가 밟는 수순대로 평범한 인생 노선을 따라갈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무래도 난 특별한 사람이었는지 당연한 과정은 그 어느 것도 없었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라도 알고 싶었다. 원인을 알면 치료를 하면 되니까. 그러나 그저 원인불명의 난임.
도대체 아무 일 없이 살던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주변에 누구도 나와 같은 경우가 없었던지라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원치 않는 임신은 언론에서 그렇게나 쉽게 보이던데, 참 세상이 얄궂고 원망스러웠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기다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던 그 시절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지치게 하던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절망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모든 감정을 가지며 시간이 흘렀었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에게는 걱정스러운 존재가 되었고, 어떤 이의 축복이 내게는 미안함이 되어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아기가 있는 공간에서는 의도치 않게 미묘하고도 어색한 기운이 나로 인해 감돌았다.
몇 년이 흘러 다행히 내게도 그 끝이 있었다. 천국과 지옥이 한 끗 차이처럼 느껴졌던 딱 그 한순간, 어느 해 8월 3일 오후 4시였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최종적으로 전화로 확인해주는 날이었다. 종일 유선전화기 앞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렇게 떨면서 전화를 받아 본 적이 있었을까. 대학 합격 발표와 그것이 비견될까.
간호사가 말하는 안정적인 수치 결과에 직접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많은 실패 뒤 한 번의 성공은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함께 옆에 있던 남편도 나도 펑펑 울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부부가 얼싸안고 운 날, 건강한 아이의 존재를 확인받은 날, 그날이 바로 8월 3일이었다.
나한테 온다면 정말 잘해줄게. 너한테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난 엄마가 될 준비가 완벽히 되어 있어.
아이를 원하고부터는 그렇게 자신했더랬다. 절실히 원했기에 더욱 그랬을 거다.
그러나 닥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아이를 갖는 것도 힘들었지만 진짜 엄마가 되는 과정도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때야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임을.
10년 넘게 아이를 키우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명제는 변함이 없다. 요즘도 가끔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예쁜 것은 잠깐이고 부모 된 막중한 책임은 끝이 없다.
그 예전 내 절절했던 바람은 다 어디 갔을까? 간절함은 왜 이제는 버거움으로 가득 차게 됐을까? 그렇게나 바랬던 가족인데.
그래서 8월 3일을 다시 기억하려 한다. 얼마나 절실했으며, 아파했으며, 절망했으며, 기뻐했는지를 다시금 기억해야 할 것 같아서. 그 따가운 여름날 뜨거운 눈물을 흘렸던 그날을 오늘 다시 기억한다.
이 아이들이 이 순간 우리 옆에 없었다면 나도 남편도 지금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제는 엄마가 될 자격이 생긴 걸까?
이제는 하늘이 나에게 아기를 허락한 것일까?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모든 것에 대한 감사와 더욱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것, 그뿐.
그날 소회를 블로그일기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아들이 지금 피아노를 친다. 체르니는 재미없지만 그래도 이 곡은 좋다고 한다. 딸은 점심은 언제 먹을 거냐며 종알종알 묻는다.
이런 일상을 달라고 매일매일 세상 모든 신에게 빌지 않았던가. 그러니 8월 3일을 달력에 생일처럼 동그랗게 동그랗게 표시하자.
어쩌면 그 날은 내게 아이들이 태어난 날보다 더 선명한 날일지 모른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때 심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날, 아이들이 내게 준 최초의 기쁜 날, 이제부터 이 날을 기억하려 한다. 나만의 기념일, 소중하고 기념하고 싶은 날, 바로 8월 3일.
첫 만남
첫 뒤집기
첫 젖니
첫 걸음마
첫 어린이집
첫 학예회
첫 두 발 자전거
첫 입학
첫 카네이션
아이와 함께 한 그 모든 순간이 스친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러나 다시 또, 나는 아이들과 전쟁이 날게 뻔하다. 그래도 당분간은 오늘의 이 기억을 꼭 붙잡아 둘 테다. 그 기억으로 이 지난한 엄마로의 길을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을 테니.